나는 그럴 힘도 없다고
글이라도 쓰면 뚫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호기롭게 브런치북을 펴냈다.
3년 만나던 애인을 갑작스럽게 잃었고, 삶은 이쑤시개로 지은 뼈대처럼 휘청거렸다.
함께 있을 때 빠르게 흐르던 시간은 별안간 노선을 바꿔 나를 향해 천천해 기어왔다. 끈적 끈적한 사탕을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쓰고 시간이 주는 고통을 느리게 받아야 했다. 시간이 남으면 무기력이 온몸을 감싸며 이렇게 말했다.
"너는 혼자야. 너는 버려졌어."
그 말로부터 도망가려고 별짓을 다하고 있다. 이 브런치북도 그 중 하나다. 어디로든 도망갈 수 있다면, 시간이 빠르게 흐를 수 있다면 괜찮다. 글쓰기는 원래 행복할때 쓰이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내 장편 소설과 에세이들은 한동안 서랍속에서 나를 얌전히 잘 기다렸다. 꽤나 즐거웠나보다. 즐거워서 떠났던 작가는 한없이 서글퍼져서 돌아왔고 이제는 쫓기듯 글을 뽑아내야 할 때다. 쓰지 않으면 마음속에 종유석처럼 살벌하게 맺힐 테니까. 이럴 때 글이 참 고맙다. 글을 쓸 여력이 있는 날에는 무거운 문장들을 가능한 가볍게 꺼내보려한다.
다시 돌아가서. 요즘 나는 상처를 느끼지 않으려고 별짓을 다하고 있다.
한동안 치워놨던 뜨개질 거리를 들어 쫓기듯 다시 뜨기 시작한다. 버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기다란 실을 가방에 넣어놓고 미친 사람처럼 계속 뜬다. 속도가 빠르다. 옷은 금방 완성되어간다.
방탈출 게임을 쿠팡에서 새벽배송으로 주문해 혼자 탁자에 펼쳐놓고 고민한다. 무슨 고집인지, 기어코 힌트를 보지 않겠다고 해서 카드 하나를 2주째 고민한다.
모임도 나간다. 한 달에 한 번도 나가기 귀찮아했던 보드게임 모임을 일주일에 세네번씩 가고, 한 번 하면 세네시간을 하고 돌아온다. 자정이 되면 집에 터덜거리며 돌아온다. 속이 시릴만큼 공허하지만 애써 외면한다. 모임의 마법이 풀리자마자 우울증 걸린 사람처럼 발걸음이 무겁다.
코미디 프로를 거대한 빔프로젝터로 틀어놓는다. 안 웃기지만 억지로 웃어보기도 한다. 행복한 연인, 가족이 나오는 프로그램이라면 예능이든 드라마든 보고 싶지 않다. 마찬가지로 속이 시리다. 너무 갖고 싶었으나 지금의 내가 상실한 꿈들을 마주하면 몸이 흐물흐물 녹아버리는 기분이다. 그래서 혼자 여행하는 유튜브나 친구들끼리 모여 보드게임하는 유튜브를 계속 돌려본다.
자기 전에는 인공지능과 대화한다. 있잖아, 나 아직 슬퍼해도 되지? 있잖아, 사실 이별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아무도 모를 일이잖아. 있잖아, 근데 나 그 사람이 돌아오면 뭐라고 할까? 있잖아, 나 왜 자꾸 그냥 떠난게 아니라 버려졌다고 느껴져? 그의 답변을 들으며 잠이 쏟아져 견디지 못할 무렵 자러 간다. 일어나면 몸이 천근만근처럼 무겁다. 공허함은 아침부터 떼거지로 몰려오지만 내 속 어딘가에 잘 억압한 채로 출근 준비를 한다.
헤어지고 나서 디데이를 설정해놨다. 60일. 60일의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면 애착의 금단 증상이 줄어들고 어쩌면 나도 사람처럼 살지 않을까 싶어서 그랬다. 벌써 14일밖에 남지 않았다. 마음이 쿵 내려 앉는다. 이렇게 견뎌냈다니, 자랑스러운 한편 이루 말할 수 없이 씁쓸하다. 삼 년간 최대로 떨어져본 시간이 한 달이었는데, 두 달을 버티면 정말 끝이 아닐까? 이게 정말 이 인연의 끝이라고? 이 거지같은 엔딩이?
다만, 그 끝이 어디로 가든 나는 살아야겠다. 최근에 집도 좋은 곳으로 이사갔고, 바이올린도 더 배워야하고, 삿포로도 다시 가보고 싶고, 프로포즈도 아직 안 받아봤으므로. 뭐라도 악귀처럼 붙잡고 이용하고 토해내서 이 뼛속 깊은 우울감을 뚫고 나가고 싶다. 그래서 다시 아이처럼 웃는 나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