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그라미 Mar 29. 2020

조난당한 봄

2020월 03월 29일 주일

맑음. 찬데 따듯함.

기록자: 동그라미



  원래, 지난주 이맘때였으면 바짝 긴장해서 다음날 독일 귀국행 짐을 싸고 있었어야 했다. 나는 늘 출국일 2주 전부터 일종의 '대륙 이동 증후군'이 발동되어서 혼자 있을 때마다 몸서리쳐지는 스산함을 느낀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세계를 비행기 한 번 타고나면 다시 접할 수 없게 된다는 단절감이, 그 기간 동안 사람을 수시로 초조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짐 싸기는 늘 애를 먹였다. 마치 무인도에 가져갈 생존 도구를 고르는 사람마냥 늘 이곳에서 챙겨가야 할 것 같은 물건이 많았다. 이번에는 특히 들어가서 구직을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바라건대 언제 한국에 돌아올지 알 수 없었고, 그래서 매일 스스로를 격려할 예쁜 밥그릇과 수저까지 챙겨갈 요량이었다. 이번 달 중순까지만 해도 나는 그렇게 내가 지금쯤 독일에 돌아갈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출국전 체크리스트

  '우한 폐렴'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되고 다시 '코로나 19'가 되는 사이, 나는 줄곧 이 전염병 소식에 꽤 둔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넘쳐나는 가짜 뉴스, 계속 중국 탓을 하며 혐오와 공포를 조성하는 보도 방식에 질려 오히려 사태의 심각성에 크게 공감하지 못하게 된 편이라 하겠다. 전문가 의견에 따르면 충격받을 필요 없이 서로 손 잘 씻고 거리두기 하면 괜찮을 거라잖아.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나라 맥락 안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자체는 건강한 젊은이들에게는 그 정도 수준에 그칠 수 있는 질병 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가 불러일으킬 사회적 변동이라는 게 얼마나 클는지, 그리고 그 여파로부터 자유로운 이는 연령 불문 아무도 없으리라는 사실을 그때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다.


 지난 2주 동안 유럽의 상황은 매일 급변했다. 뉴스에 이탈리아에 코로나 확진자 수가 크게 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지 얼마 안 되어 내 짝꿍은 학교로부터 메일로 독일 소식을 접했다. 처음엔 학교가 기약 없이 개강을 미룬다고 하더니, 그 후 그의 담당 교수는 실험을 못할 수 있어 그의 논문 방향을 크게 틀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얘기를 했단다. 대한항공은 3, 4월 항공편을 모두 취소했고, 루프트한자도 인천발 프랑크푸르트행 출항 편을 절반으로 축소한 이후 얼마 안가 내 출국 편까지 포함해 더 많이 취소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저 한국 돌아갈까요 말까요?"라고 질문을 올렸었는데, 하룻밤 새 내 선택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베를린의 뭇 마트에서 발생한 사재기 장면 사진이 인터넷상에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독일 내 한국인 커뮤니티는 이미 아시아인 차별로 한참 들썩이고 있었고, 한쪽에는 교환학생, 워킹홀리데이, 입시준비생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베를린 집 하우스메이트들은 각자 집으로 떠났다. 야림과 수아가 유럽여행을 취소했고 뽈이 페이스북에 무겁고 긴 글을 올렸다. 주변 작가 친구들은 이번 해에 겨우 잡은 레지던시 기회, 전시 일정이 대거 취소되었다는 쓰라린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어젯밤.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예술학교가 150년 운영 끝에 문을 닫는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곳은 2013년에 한 학기 교환학생을 다녀왔던 곳이다. 놀랍게도 결정타를 날린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였다. 이미 재정난에 시달리던 학교는 이번 봄학기에 제대로 수업 운영을 못하게 되면서 수입원이 크게 감소했고, 결국 이번 여름 공식적으로 폐교를 계획하게 되었단다. 한동안 기억 속 저편에 던져두었던 시절. 기억을 더듬으며 머릿속으로 학교 교정을 잠시 걸어보았다. 중앙에 앤틱한 타일 장식 분수가 작게 있었고, 그 곁을 학생들이 맨발로 강의실을 찾아간다. 아름드리나무 아래로 비집고 쏟아지는 햇빛이 너무도 나른했는데...


냉수 한 잔.


지금,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그림과 계획이 무산되고 있을까?


  무인도는 보통 결심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사고로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에 가깝다. 기를 쓰고 추진하던 많은 생각들이 돌연 아득하게 멀어지고 있다. 겨울만 여기서 지내게 될 줄 알았는데, 아무리 길어야 봄, 그런데 이번 방문이 이런 식으로 길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너무 떠나고 싶었던 우리 집은 지금 이 세상에서 - 서른이 된 - 내가 웅크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두 국가에 걸친 삶을 이도 저도 못하는 사이 실제로 빈털터리가 됐다. 너무 많은 변화 속에, 오히려 미련은 안 들고 큰 걸음으로, 앞으로 마구 걷고 있다. 엊그제 나는 서울의 모 기관 채용 공고에 지원서를 냈다. 난 여기서 일단 집도 짓고 도구도 만들고 사냥도 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굴 문턱에 기대서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