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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Nov 17. 2021

깜빡이를 켜주세요.

운전하다가 생각한 것 

일을 시작하고 운전하는 시간이 확 늘었다.


유연근무제로 최대 10시까지 출근해야 하는데, 아이의 유치원 버스 시간은 아파트 키즈스테이션 앞에서 9시 30분쯤. 출근시간 교통체증을 고려해서 집에서 회사까지 자차로 소요되는 시간은 약 45분쯤. 

유치원 버스가 15분 빠르거나 내 출근시간이 15분만 늦었어도 여유로운 아침을 만끽할 수 있었을 텐데 15분의 시간이 부족해서 늘 허둥지둥거린다. 8시 20분에서 늦어도 30분에는 집을 벗어나 아이의 유치원으로 출발하면 9시 안팎으로 도착한다. 9시, 유치원에서 다시 회사로 출발해서 가까스로 출근 시간 데드라인을 지킨다. 


결국 15분이 부족해서 45분 걸려야 할 출근시간이 배로 늘어나 아침마다 약 8-90분 운전을 하게 된다. 비가 오거나, 도로에 사고가 난 날에는 2시간이 걸린 적도 있다. 이렇게 아침마다 출근시간에 핸들을 잡으면서 느낀 점은 깜빡이에도 표정이 있다는 것이다. 


깜빡이? 


좌회전, 우회전할 때의 그 깜빡이, 비상등을 켤 때의 그 깜빡이 맞다.


사실 부모님이나 남편의 차를 탈 때 운전석에만 앉으면 극도로 예민해지는 그들이 이해가지 않을 때가 많았다. 평소에 말수가 적고 큰 감정표현을 쉬이 하지 않으시던 아버지도 운전대만 잡으면 이를 악 물때가 종종 있었고 다정하고 유쾌한 남편도 운전하다가 가끔은 눈에 불을 켜기 일쑤였다.


나 또한 점점 운전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운전하다가 화를 내는 상황도 꽤 많이 생겼다. 주위에 있던 차가 깜빡이 없이 끼어든다던가, 깜빡이 없이 차선 변경을 한다거나, 위험천만한 상황을 만들어놓곤 깜빡이 없이 줄행랑을 친다던가 하는 상황들 말이다. 이 모든 상황에서 나의 분노를 일으킨 주요인은 '깜빡이 없이'였다. 


출근 시간 데드라인에 맞춰야 하는 내 마음처럼, 그 시간 어딘가로 향하는 다른 사람들도 정해진 출근시간 혹은 누군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달려가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각자가 향하는 곳에 약속한 시간에 도달하고자 하는 마음은 같다. 


그러나 갑자기 끼어들고는 깜빡이를 켜지 않으면, 화가 스멀스멀 올라와 양심 없는 차의 뒤꽁무니에 대고 욕을 퍼붓고 싶어 진다. 반대로 줄줄이 사탕처럼 차가 빽빽이 줄 서있는 도로에서 끼어들기 한참 전부터 깜빡이를 켜고 있는 차를 보면, 땀을 삐질 삐질 흘리고 있는 차주의 모습이 연상된다. "저 지금 빨리 가야 되거든요. 죄송한데 한 번만 좀 껴주시면 안 될까요? 제발요."라는 음성이 멀리서 들려온다. 이럴 때 나는 대체로 양보한다.


차(car)는 감정도 없고, 그래서 당연히 표정도 없다. 그러나 나는 깜빡이로 차에 타고 있는 차주의 표정과 감정을 읽는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켜지는 깜빡이지만, 그 깜빡이엔 차주의 표정과 감정이 녹아있다.


'너도 바쁜 건 알겠는데 아니 사실 그것도 알고 싶지 않은데, 그냥 나 먼저 가야겠어.' 하는 뻔뻔함이 가득한 차주, 그래서 뻔뻔함이 무례함이 되어버린 차주는 깜빡이를 켤 줄 모른다.  


'진짜 진짜 죄송해요. 제가 지금 급해서 얼른 가봐야 하거든요. 정말 죄송합니다. 한 번만 양보해주세요.'라고 부탁하는 차주는 깜빡이를 잘 켤 줄 안다. 양심이 살아있는 차주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싶다. 


'어서 가세요. 조심히 가세요!'



그래서 말인데요,

깜빡이를 켜주세요.

당신의 표정을 읽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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