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케이 Nov 18. 2021

네 덕분에 쥬쥬랑 신디는 행복할 거야

예쁘고 소중한 너의 다섯 살 

시크릿 쥬쥬 풍선과 함께 서울대공원에서.


올해 가을, 네 아빠는 너와 엄마에게 예쁜 단풍과 더불어 멋스러운 작품을 보여주겠다며 과천 현대미술관을 예약하셨대. 주말이라 도로는 차로 가득했지만 들뜬 마음으로 미술관을 향했어.


미술관 근처에 주차를 하고 미술관에 가려는데 너는 이미 여러 번 와 본 익숙한 풍경(과천 현대 미술관과 서울대공원은 붙어있다.)에 동물원에 가겠다며 떼를 썼지.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떼를 쓰는 너를 다독이며 우리는 발걸음을 미술관에서 대공원으로 옮겼어.


대공원에는 우리를 포함해 여러 가족들로 가득 찼어. 대공원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망울에서 떠나는 가을의 끝을 눈과 마음에 가득 담아보려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어. 아마 너의 아빠도, 너도 그리고 엄마도 같은 눈망울이었을 거야. 


떨어지는 낙엽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그 찰나를 폰카메라로 찍어대던 순간, 길 한편에 쌓인 낙엽을 일부러 밟아보며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잔뜩 귀 기울이던 순간, 멋스러운 단풍을 뒤로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한껏 포즈를 취해보는 순간까지, 이름마저 예쁜 가을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 같은 순간들이지.


플라밍고를 보고 난 후, 위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다 풍선 파는 가게를 발견한 너는 풍선을 사달라고 졸랐어. 처음엔 작은 풍선을 고르는 듯했다가 나중엔 시크릿 쥬쥬가 그려진 큰 풍선을 골랐어. 풍선 하나에 세상을 얻은 듯 방방 뛰는 너의 모습을 보고 다섯 살의 천진난만함에 엄마까지 더러 행복했단다.


다만 풍선의 크기가 커서 다른 사람에게 부딪히지 않게 잘 잡아야 한다고 너에게 당부했고, 너는 그 당부를 잊지 않으려 사람들의 곁을 지날 때마다 어린 동생을 다루듯 풍선의 이모저모를 살피곤 했지. 사진을 찍을 때도 풍선의 정면이 잘 나오길 바라며 풍선의 외모(?)를 신경 쓰곤 했어.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아빠와 엄마도 너만큼 꽤나 행복했단다.


거의 관람을 마치고 쌀쌀해진 날씨에 서둘러 집에 돌아가자고 발걸음을 재촉하던 중, 너는 기린을 만나야 한다고 재빠르게 뛰어가다 나무에 풍선 줄이 걸려 마침내 뚝 끊어졌어.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 차린 너는 하늘로 멀리 날아가는 풍선을 너의 두 눈으로 확인하고는 바로 울음을 터뜨렸지. 반사신경이 뛰어난 네 아빠가 바로 상황 판단을 내리고 풍선을 잡으려고 했지만 이미 풍선은 멀리 날아간 뒤였어. 


풍선 하나로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하던 너였는데, 풍선이 예고도 없이(?) 저 멀리 날아갔으니 너는 세상을 잃은 듯 주저앉아 울기만 했지. 그때 엄마는 너의 손을 잡으며 말했어. 


"채아야, 하늘을 봐봐. 쥬쥬랑 신디가 채아한테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 같지 않아?" 


생뚱맞게 건넨 엄마의 말에 너는 '뭐라고?' 하는 표정으로 듣기 시작했어.


"쥬쥬랑 신디가 풍선 가게에서 어떤 친구를 만날지 이제껏 계~속 기다리기만 했는데 오늘 채아를 만나서 사자도 만나고, 호랑이도 만나고, 코끼리도 만났잖아! 그래서 너무 행복했을 거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채아가 가고 싶은 데로만 가서 쥬쥬랑 신디도 조금 답답하지 않았을까? 채아도 엄마가 채아 손을 꽉 잡고 엄마가 가고 싶은 데로만 가는 것보다, 넓은 공원에서 채아가 마음껏 뛰어놀면서 하고 싶은 대로 노는 게 더 좋잖아!" 


너는 엄마 말을 귀 기울여 듣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어. 그러자 네 눈에 맺힌 마지막 눈물이 네 뺨을 타고 쪼르르 흘러내렸지. 엄마는 네 눈물을 닦아주고 저 멀리 보이는 풍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어 말했어.


"엄마 눈에는 쥬쥬랑 신디가 지금 채아한테 '고마워~채아야~'하고 인사하는 것 같은데?! 하루 종일 동물 친구들도 만나도록 해 주고 마지막엔 이렇게 쥬쥬랑 신디가 하늘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해줘서 정말 정말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 같아! 채아도 쥬쥬랑 신디한테 하늘 여행 잘하라고 인사해줄래?"


너는 결연한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했어.

"쥬쥬야, 신디야! 하늘 여행 잘하고 오늘 밤 꿈속에서 만나자! 여행 잘해~! 안녀엉~!!!"


하늘을 향해 있는 힘껏 손을 흔들던 너는 재잘재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어.

"엄마, 쥬쥬랑 신디가 하늘 여행 어디로 갈까?"

"엄마! 쥬쥬랑 신디가 엄청 엄청 신날 것 같아!"

"그런데 여행하다가 길을 잃으면 어쩌지?"

"엄마! 오늘 쥬쥬랑 신디가 꿈에 찾아올 거니까 오늘 진짜 일찍 자야겠다!"






쥬쥬야, 신디야!

오늘 밤 꼭 우리 딸 꿈에 나와 즐거웠던 하늘 여행에 대해 이야기해주렴.


소중한 우리 딸의 다섯 살을 더욱 예쁘게 추억할 수 있도록 말이야.  








매거진의 이전글 나도 너 만큼 잘 커야 하는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