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를 다닌다는 것(1)_더불어가는배움터길
딸의 중학교 1학년 시절이 끝나갈 즈음 주변의 대안학교를 좀 알아봤다. 집에서 통학하면서 다닐 수 있는 도시형 중등대안학교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다, 의왕에 있는 ‘더불어가는배움터길’이란 학교를 알게 됐다. 일단 편입생을 받고 있었고, 원서를 접수할 수 있는 기간이 아직 남아있던 유일한 학교여서, 가족들과 상의를 해보고 급하게 원서를 냈다. 원서는 아이가 직접 대답해야 하는 질문과 부모가 답해야 하는 질문으로 구성돼 있었고, 어찌어찌 귀찮아하는 딸을 설득해서 종이에 적은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 이메일로 접수했다.
그 후 겨울방학 내내 학교 선택에 대한 고민은 끝없이 이어졌다. 딸은 물론이고 나조차도 하루에도 몇십 번씩 마음이 흔들렸다. 걸어서 15분이면 갈 수 있는 공교육 중학교를 나와서 굳이 대중교통으로 1시간이나 걸리는 타 시의 대안학교에 가는 게 맞는 건지, 또 경제적인 부담도 있을 텐데 감당이 될까, 또 학교를 옮기면 동네 친구들과 멀어질 텐데 아이가 외롭진 않을까, 여러 걱정이 뒤따라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는 과감하게 대안학교에 편입생으로 들어가는 용기를 냈다(어쩌면 그 선택에 내 영향이 크게 작용했고, 그 후에도 몇 번이나 흔들리는 순간이 찾아왔지만). 돌아보면 그때 참 운명처럼 좋은 타이밍에 길 학교를 만나게 됐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공교육에 그렇게 실망하게 되지 않았다면 선뜻 대안학교에 갈 수 있는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 같다. 마음은 혼란스러웠지만, 입학일은 다가왔고, 프리랜서로 마쳤던 일로 딱 맞게 입학금도 낼 수 있었다. 마음이 왔다 갔다 했던 아이도 예비학교까지 다녀오며 새로운 모험을 시작했다.
아이가 길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내 마음속에 있던 걱정과 불안함이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길치 딸이 지하철에 버스를 갈아타며 등하교를 해야 하는 불편도, 해당 학년에 여학생이 한 명도 없던 상황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이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채 3주도 되지 않은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학교가 재미있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고, 선생님이 학생들을 존중하는 모습이 신기하다고 했다.
학교 수업시간마다 책상에 엎어지는 일이 자연스럽던 아이가 수업이란 걸 듣고 질문을 하기 시작했고, 어떤 동아리에 들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일반 학교에서도 풀어본 적 없는 문제집을 사서 책상에 앉아서 혼자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검정고시 준비를 위한 거였지만, 본인 삶을 스스로 일궈나가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는 게 중요했다.
일반학교를 다니면서 보이던 무기력함과 단체생활에서 관계의 우위를 차지하려고 외모며 SNS를 하면서 보내던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기기 시작했고, 평소 안하던 집안일도 조금씩 돕기 시작했다. 가족과의 관계도 그 전보다 훨씬 좋아지기 시작했다(특히 아빠와의 관계는 놀랍도록 변화됐다). 물론 그 안에서도 아이가 느끼는 여러 어려움도 있었지만, 신기한 건 모든 것들이 그대로고 학교만 하나 바꿨을 뿐인데, 아이가 많이 달라졌다는 거다.
몇 달 전 아이 문제로 속 썩이며 힘들었던 시간들이 언제 적 일이었나 싶을 정도로 그 모든 것들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말을 듣고 존중하는 학교와 교사의 태도 자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비인가 대안학교는 정부지원 자체가 없다 보니, 재정이 일반 학교보다 어렵고 열악할 수밖에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좋은 사람들이 가진 힘과 시스템으로 한 명 한 명의 아이들을 지켜봐 주고 있었다. 4층 단독주택에 교실, 조리실, 식당 겸 강당, 휴게공간 등이 있는 작은 학교에서 5개 학년으로 나눠 소규모 수업이 진행됐다. 아이들은 수학, 영어 등 교과목을 배우는 게 아니라 삶의 가치와 관점을 정립하고, 진로를 고민해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선택수업과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했다. 매주 한 번씩 학교 구성원들과 함께 먹는 밥을 소밥 샘과 직접 만들었고, 자신이 사는 공간을 청소하고 가꿨다. 책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고, 짧은 글이지만 내 생각을 말하고 썼다. 만화로, 사진으로, 음악으로, 춤으로 자신을 표현해 보기도 했다.
넓은 운동장이나 체육관도 없었지만, 볼링장 같은 주변 체육시설이나 놀이터 등을 이용해 원하는 운동을 하기도 했고, 과학 시간에는 전철을 타고 과천과학관을 견학하기도 했다. 주변의 좋은 NGO 단체들을 방문해 조금 다른 눈높이에서 사회를 바라보기도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 잃어버렸던 또래 아이들과 밖에서 뛰어노는 사소한 즐거움을 다시 찾고, 스스로 작은 물건들을 만들거나 음식을 만들며 일상의 노동을 배울 수 있었다. 매주 1회 학생들이 직접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소밥 활동을 5년 동안 하다 보면, 졸업할 즈음에는 웬만한 요리는 혼자 뚝딱 해먹을 수 있는 선수가 돼 있곤 했다.
난 길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던 아이를 처음에 지켜보며, 결국 배움이란 우리 주변에 흩뿌려져 있는 삶의 모든 경험과 다양성이란 생각에 고개를 힘껏 끄덕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