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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Sep 06. 2020

천 년은 성당으로, 오백 년은 모스크로

이스탄불 역사지구 탐방기

2020년 7월 두피디아 여행기에 게시한 글입니다.




"역사 속에서 천 년은 성당으로, 오백 년은 모스크로, 그리고 현재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살아가는 아야소피아는 문화의 교차로이자 격전지였던 이스탄불의 시간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이스탄불에서의 두 번째 아침, 가장 먼저 찾은 아야소피아 성당 앞에는 티켓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햇볕이 따가워 오랫동안 견딜 자신이 없어 *이스탄불 뮤지엄 패스를 사러 가기로 했다. 뮤지엄 패스는 해당 티켓으로 입장 가능한 모든 박물관에서 구매 가능했고, 그래서 당시 매표소 줄이 짧을 것이라고 예상된 모자이크 박물관을 먼저 찾게 됐다.


다행히 전략은 성공이었다. 모자이크 박물관 매표소에는 대기 중인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서 곧바로 티켓을 구매할 수 있었다. 내친김에 모자이크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 봤다. 박물관 이름에 걸맞게 내부에 다양한 모자이크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영어 텍스트로 설명된 내용도 있었다.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고 한산해서 뮤지엄 패스를 구매한다면 부담 없이 보고 나올 수 있는 곳이다. 아라스타 바자르(Arasta bazaar)라는 시장과 연결되어 있어서 함께 둘러보아도 좋다.


이스탄불 모자이크 박물관
아라스타 바자르 입구. 작은 규모의 시장이다.



* 이스탄불 뮤지엄 패스(Instanbul Museum Pass)


이스탄불의 몇몇 박물관 및 관광지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이다. 입장 가능한 주요 장소로는 아야소피아 박물관, 톱카프 궁전, 모자이크 박물관, 고고학 박물관, 이슬람 기술 박물관, 터키 이슬람 박물관, 루멜리 성채, 갈라타 수도원 등이 있다. 그 외 주요 관광지 중 블루 모스크는 별도의 매표 없이 입장 가능하며, 돌마바흐체 궁전과 예레바탄 사라이는 뮤지엄 패스로 입장할 수 없어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이스탄불 뮤지엄 패스 외에 터키 전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터키 뮤지엄 패스'도 있다.



천 년은 성당으로, 오백 년은 모스크로


아야소피아(Ayasofya, Hagia Sofia)는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이다. 흔히 비잔틴 예술 최고의 작품이라 불리는 아야소피아 성당이 처음 완공된 것은 300년 대인 콘스탄티누스 2세 때였다. 그의 아버지이자 전대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세는 밀라노 칙령을 발령하고 당시 로마제국 곳곳에서 박해받고 있던 그리스도교를 공인했다. 공인 이후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그리스도교 사원으로 지어진 아야소피아는 건축 초기부터 화재와 폭동 등으로 몇 차례 소실을 겪었다. 하지만 로마제국을 다시 부흥시키고 동서 교회를 통합시키기를 염원했던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 의하여 537년경에 다시 한번 재건 및 개축되어서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천오백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여러 차례 보수 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당시에 건축된 모습이 유지되고 있다. 가운데 높고 커다란 돔을 가진 아야소피아 성당은 기둥을 많이 쓰지 않았는데, 당시 기술로는 건축하기 상당히 어려운 형태였다고 한다.


이스탄불 아야소피아 성당(박물관)


아야소피아는 4개의 미나레트(Minaret)가 둘러싸고 있다. 미나레트는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의 첨탑이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다. 당시 황제였던 술탄 메메트 2세는 동로마제국의 수도에 입성하자 곧바로 아야소피아 성당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이자 동방교회의 상징과도 같던 아야소피아 성당을 파괴하는 대신 모스크로 개조시킬 것을 명령했다. 그리하여 성당 외부에는 네 개의 이슬람식 첨탑인 미나레트가 세워지고 내부의 기독교 모자이크 벽화들은 회벽으로 가려지게 되었다. 이슬람 사원으로 이용되던 아야소피아는 1935년에 다시 한번 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 그때 회벽으로 가려졌던 모자이크 벽화들도 복원 작업을 거쳐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천 년은 성당으로, 이스탄불에서 오백 년은 모스크로, 그리고 현재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살아가는 아야소피아는 동서양의 교차로이자 두 종교의 격전지였던 이스탄불의 굴곡진 역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아야소피아 성당 내부
아야소피아 성당 2층의 벽화



여섯 개의 미나레트를 가진 모스크


아야소피아가 있는 술탄 아흐메드 광장에는 또 다른 거대한 모스크가 있다. 블루모스크라고 불리는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Sultan Ahmet Mosque)다. 이슬람 사원의 첨탑인 미나레트는 술탄의 권력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블루모스크는 무려 6개의 미나레트를 가지고 있다. 당시 술탄에 의해 건설되는 모스크는 4개의 미나레트를 두는 것이 관행이었으며 메카에만 6개의 미나레트가 있었다. 아흐메드 1세가 아야소피아보다 더 화려한 성당을 원해서 '황금(altin)'으로 미나레트를 만들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건축가가 터키어로 발음이 비슷한 '여섯(alti)'으로 잘못 알아들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설이 있기는 하지만 진실인지는 모르겠다(혹시 메카와 같은 수의 미나레트를 지은 것에 대한 변명에서 시작된 소문은 아니었을까?). 오스만 제국의 술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메카에 하나의 미나레트를 더 세웠고, 블루 모스크는 터키에서 유일하게 6개의 미나레트를 가진 모스크가 되었다.


블루 모스크


블루모스크는 박물관인 아야소피아와 달리 현재 무슬림들이 기도를 드리기 위해 이용하는 공간이다. 이슬람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여행자로서는 모스크에 입장하는 일은 항상 새롭다. 처음 모스크를 방문했던 때는 동남아 여행 당시 말레이시아에 갔을 때였다. 쿠알라룸푸르에서 국립 모스크, 말라카에서 해상 모스크를 방문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여행자에게 개방적이고 안내원들이 친절했으며 또 내부 관람환경이 쾌적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있다. 나는 말레이시아 여행 당시 그런 장면들이 유난히 기억에 남은 이유를 고민해보고는 했었다. 결론은 당시 내가 무슬림에 관한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때가 바로 편견이 깨진 순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블루모스크 내부, 무슬림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다.


블루모스크는 세계적으로 손에 꼽히는 규모의 이슬람 사원이어서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현지인들의 예배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가 다른 문화에 대한 무차별적인 혐오와 편견을 제거하게 만드는 일에는 여행만 한 것이 없다. '그 사람은 무얼 믿는가'라는 이유 하나로 타인을 판단하는 실수를 멈추게 된다. 나는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누군가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타인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누구나 무언가를 믿는다. 그 어떤 신도 믿지 않는 사람도 분명 무언가 하나쯤은 믿는 것이 있다. 각자가 믿는 대상이 다를 뿐이다. 잘못된 믿음에서 극단적인 행동이 파생되어 사회에 해를 끼치는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에게는 '무엇을 믿는가'라는 단순한 척도만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또 혐오하기까지 할 이유도 권리도 없다.



이스탄불의 시간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아야소피아는 말 그대로 도시의 상징과도 같다. 여섯 개의 미나레트를 가진 블루모스크 또한 이스탄불의 대표적인 모스크다. 그리고 둘은 이스탄불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사이에 흐르는 골든 혼의 풍경을 이루는 핵심 건축이기도 하다. 아야소피아와 블루모스크를 다녀오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접한 뒤에는, 구시가지로 노을이 지는 풍경이 한층 신비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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