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서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희 Nov 09. 2023

얼마만큼의 삶을 시장주의에 내어줄 것인가

마이클 샌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 마이클 샌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19p,  와이즈베리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경제학과 시장주의를 우리 삶의 어느 부분까지 받아들일 것인가에 관해 논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조금 더 정확히는, 우리가 뚜렷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가능한―한때 가능하다고 보이지 않았던 영역까지―모든 영역을 잠식해 나가고 있는 경제학에 대한 반론이기도 하다.  


경제학에는 '파레토 효율'이라는 용어가 있다. 자원배분이 가장 효율적인 상태를 의미하는데, 이는 '한 사람의 효용을 감소시키지 않고서는 다른 누군가의 효용을 증가시킬 수 없는 상태'로 정의된다. 그리고 이를 곧 '바람직한 상태'로 정의 내리고는 하는데, 시장에 참여하는 개인들이 각자의 이해에 따라 거래하도록 자유롭게 내버려 두면 '보이지 않는 손(가격)'에 의해 시장은 스스로 가장 효율적인 상태를 달성한다는 것이 전통적인 경제학의 논리다.


(경제학에도 다양한 학파와 '시장실패'의 영역이 있기는 하지만, '넛지'로 유명한 행동경제학 이전의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시장과 개인의 합리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듯하다)


이러한 경제학 논리를 통해 사회적 문제를 보다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기존에 거래되지 않던 재화를 사고팔 수 있는 시장을 형성시키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예시로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있다. 경제학에서는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탄소 배출량에 대한 직접 규제(직접 규제는 시장을 통한 해결 방법이 아니다) 보다 효율적인 이유에 대해 수학적인 방법으로 아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효율성이 최고의 가치인 것은 아니다. 마이클 샌델은 이 책을 통해 점점 더 새로운 '재화'들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현상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한다. <사피엔스>로 유명한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에서 자유주의가 경제성장―모두의 파이를 더 키워 주겠다―을 통해 사회적 어려운 갈등들을 해결해 왔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현대 사회에서 '모두의 파이를 더 키우는 방법'을 제시하는 시장논리에 대한 반박은 매우 어려운 일―유발 하라리가 지적한 자유주의의 한계와는 별개로―일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마이클 샌델은 '공정성'과 '부패'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여전히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남아 있다는 의견을, 시장논리에 대한 반박을 명쾌하게 제시한다.


명분이나 활동이나 사회적 관행은 적합한 수준보다 낮은 규범에 의해 다뤄질 때 부패된다.  (…)

한 판사가 뇌물을 받고 부정한 판결을 내릴 때, 그는 자신의 사법적 권위가 대중의 신뢰가 아니라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수단인 양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적합한 수준보다 낮은 규범에 따라 사법적 권위를 다룸으로써, 자신의 공직을 타락시키고 그 품위를 떨어뜨린다.

- 마이클 샌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75p, 와이즈 베리




시장주의에 대한 도전: 공정성과 부패


 공정성

마이클 샌델이 말하는 공정성 측면에서의 반박이란 곧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에 반영되는 불평등에 대한 의문'에 관한 것이다. 건강을 유지하도록 금전적인 인센티브 제도를 활용하는 경우를 살펴보자. 금연을 지속하거나 체중 감량을 달성하는 경우 보상을 지급하는 사례를 들 수 있다. 이는 '공정성 문제'를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사례다. 납세자의 돈으로 흡연과 과식 등 나쁜 습관을 버리게 하는 것은 '유모 국가'의 사고방식이며, '나태한 행동에 대한 불공정한 보상'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건강이 나쁜 사람에게 더 많은 보험료를 납부하도록 하는 것은 선천적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에 대한 차별이 될 수 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건강에 대한 금전적 인센티브 제도는 국가적 차원에서 총 의료비―납세자의 건강보험료 지출과 연관되는―절감 규모가 총 보상금 규모보다 크다면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이클 샌델의 대표작인 <정의란 무엇인가>에는 징병제와 모병제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징병제는 흔히 국가가 국민에게 병역의무를 강제로 부과하는 것으로, 모병제는 자발적으로 지원한 군인으로 군대를 유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경제학적 관점에서는 당연히 모병제가 더 바람직하다. 모병제는 직업군인의 임금(가격)을 통해 효율적으로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군대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다. 급여를 받고 복무하고 싶은 사람은 군인이 되고, 복무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복무하지 않아도 되므로 징병제에 비해 사회 전체의 효용이 증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모병제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징병제가 '법의 강제'를 통해 군대를 유지한다면, 모병제는 '경제적 상황의 강제'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은 실제로 2010년 경 모병제 국가인 미국에서는, 현역 사병 중 저소득층과 중간소득 청년의 비중이 월등히 높다는 통계를 제시함으로써 그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이처럼 시장에서 재화를 사거나 팔기로―'공급'하기로―결정한 사람들의 선택을 늘 '진정 자발적인 선택'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어떠한 상황이 개인의 선택을 강제하는 요소로 작용하지는 않았는지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부패

부패 측면에서의 반박은 '재화 자체의 특성과 지배하는 규범에 초점'과 관련된다. 마이클 샌델은 이를 '시장이 훼손하거나 변질시킬 수 있는 태도와 규범을 거론'하는 것이라고 했다. 즉, 부패 측면에서의 반박은 경제학이 시장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재화' 자체의 가치나 특성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한 반대 의견이라 볼 수 있다.


(간단한 예시로 우리의 주식인 '쌀'은 시장을 통해 거래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는 식량이라는 그 자체의 특성이나 가치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장기매매가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수십억을 지불하고라도 신장을 사고 싶은 사람과, 수십억을 받고라도 가족을 위해 본인의 신장을 팔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서로 원하는 바가 일치하는 이러한 거래가 가능한 시장을 형성시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신장 거래'가 우리의 태도나 사회의 규범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인간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여러 장기가 모여서 조립된 존재로 파악하는―을 미치기 때문이다. 물론 공정성 측면에서 신장 거래는 '진정 자발적인 선택'이 아님을 이유로 바람직한 해법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난민 시장'은 어떤가. 이는 탄소배출권 거래제와 비슷한 맥락으로, 국가별 GDP 등을 기준으로 의무적인 난민 수용량을 결정하고 이를 국가 간 거래할 수 있도록 하자는 아이디어다. 한 마디로 '난민에 대한 수용 의무'를 재화로 하는 시장을 형성하여 보다 효율적으로 난민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인데, 마이클 샌델은 '난민 시장으로 인해 난민이란 누구인가와 그들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가에 관한 우리의 견해가 바뀐다'라고 주장한다. 난민 시장이 도입되면 난민을 위험에 처한 인간존재가 아닌 털어버리고 싶은 짐이나 수용하고 돈을 벌 수 있는 수입원 정도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우리가 '돈으로 살 수 없었던 것들'을 재화로 만들어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으로 바꾼다면, 이에 따라 우리의 가치관도 변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시장은 단순한 메커니즘이 아니다. 그것은 특정 규범을 나타낸다. 또한 교환되는 재화에 가치를 부여하는 특정 방식을 전제하기도 하고, 장려하기도 한다.

- 마이클 샌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98p>, 와이즈 베리



줄 서기의 미덕이 사라진 놀이공원


동남아시아 배낭여행 당시, 싱가포르에서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놀이공원의 '익스프레스 티켓'이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됐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여행을 하는 대학생이었고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입장권 자체가 매우 큰 지출이었으므로 '새치기'가 가능한 익스프레스 티켓 구매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함께 여행했던 K와 긴 줄을 서서 기다리며 익스프레스 티켓으로 빠르게 입장하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날 오후 늦은 시간에 방문객이 확 줄어서 대기 시간도 없이 놀이기구를 즐길 수 있었다. 그 재밌는 '미라의 복수'를 세 번 연속으로 탔다. K와 나는 그제야 익스프레스 티켓 안 사길 잘했다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나름의 합리화를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조금 더 어린아이였을 때 그런 경험을 했다면 어땠을까? 함께 줄을 서서 기다리는 부모에게, 혹은 선생에게 묻지 않았을까? '익스프레스 티켓'을 구매할 경제적 여력이 안 되는 어른들은 아이와 함께 놀이공원에 간다면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다. 경제학의 시장 논리가 항상 올바른 것이라면, 어른은 아이에게도 같은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놀이기구 탑승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값을 지불하고, 더 많은 놀이기구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시장 원리를 도입한 시스템이란다. 매우 효율적이지." 그렇게 대답하고 자녀가 묻는다고 생각해 보자. "저도 여러 가지 놀이기구를 타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데요! 하지만 저에게는 돈이 없는데 어떡하나요?" 가난한 부모는 무어라고 대답해야 할까? "미안하구나, 익스프레스 티켓을 살만큼 우리 집은 부유하지 않단다" 그렇게 대답하면 끝날 일일까?


'줄 서기'를  돈으로 해결하는 사례는 놀이공원이 아니어도 매우 많다. 마이클샌델 교수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집필한 2012년에도 그랬던 것 같고, 11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불편한 사례 중 하나로 놀이공원이 꼽히는 것은, 놀이공원이 아이들에게는 '줄 서기'의 미덕을 조기에 교육하는 장소인 동시에, 어른들 조차 동심의 세계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놀이공원의 익스프레스 티켓 판매에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낀다면, 당신 또한 경제학의 논리가 지배해서는 안 되는 공간, 돈으로 사고팔 수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도 있다고 믿고 싶은 사람인 것이다.


암표 거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줄 서기가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들에게 유리한 차별"이라고 비판한다. 맞는 말이지만, 시장이 돈 많은 사람들을 유리하게 '차별'한다는 말과 같은 맥락에서만 그러하다. 시장이 자발적으로 돈을 지불하려는 마음과 능력을 바탕으로 재화를 분배하듯, 줄 서기는 자발적으로 기다리려는 마음과 능력을 바탕으로 재화를 분배한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가격을 지불하려는 마음이, 자발적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려는 마음보다 더 나은 가치 평가 기준이라고 추정할 근거는 없다.


따라서 줄 서기보다 시장논리가 더 낫다는 공리주의자의 입장은 우연에 상당한 지배를 받는다. 그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하는 사람에게 재화를 분배하는 역할은 시장이 수행할 때도 있고 줄 서기가 수행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든 시장이 이 역할을 더 잘 수행할지, 줄 서기가 더 잘 수행할지는 추상저인 경제적 논리에 따라 미리 결정할 수 없는 경험적 문제다.


- 마이클샌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56~57p,  와이즈베리




경제학적 관점에서 가장 효율적인 선물은 단연 현금이다. 그래프나 수식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이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받는 사람이 마음에 들어 할지 확신할 수 없는 10만 원짜리 가방을 선물하는 것보다, 10만 원을 주면서 원하는 물건을 사라고 하는 편이 '소비'에서 오는 효용을 더 크게 만드는 방법이다. 선물하는 사람은 똑같이 10만 원을 쓰게 되고, 선물을 고민하느라 소요되는 시간까지 절약할 수 있다. 따라서 현금 선물은 매우 효율적인 방법이며, 실제로 현금과 가장 유사한 상품권을 선물하는 문화는 점점 더 당연하다는 듯이 익숙한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굳이' 선물이라는 행위를 하는 이유는 원래 그 금전적 가치보다는 거기에 담긴 마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받는 사람이 무얼 좋아할지 고민하고, 전하는 선물(돈이 아닌)을 보며 어떤 표정을 지을지 기대하는 일이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에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 효율성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말이다. 돈과 효율성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 이러한 사고방식은 때때로 촌스럽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우리는 도대체 얼마만큼의 삶을 시장주의에 넘겨주고 싶은 걸까?


학생에서 직장인이 되어 감에 따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좋은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에 대한 고민이 적어지는 듯하다. 일이 주는 피곤함, 그리고 우리가  흔히 '삶의 무게' 정도로 요약하여 표현하는 요소들은, 어른들이 '내 주변을 벗어난 것'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게 한다. 그리고 월급 받는 직장인이 되고 나면 '내 밥그릇'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마찬가지인 듯하다.


마이클샌델의 책을 읽다 보면 잊었던 질문들이 다시금 떠오른다. 좋은 사회란 무엇이며, 바람직한 공동체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하는가. 한 개인의 고민에는 매우 미약한 힘 밖에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러한 질문을 품고 사는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조금씩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에는 그러할 적은 가능성조차 없으며,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아니라 선택한 적 없는, 그저 자연스럽게 형성된 사회를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와 이를 지배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그것을 선택했을 때와는 이미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시장경제를 가진 (having a market economy) 시대에서 시장사회를 이룬 (being a market society) 시대로 휩쓸려왔다.

- 마이클 샌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29p,  와이즈베리



매거진의 이전글 사과받지 못한 사람들의 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