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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Aug 08. 2023

사과받지 못한 사람들의 나라

최은영 <밝은 밤>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세상에는 진심으로 사과받지 못한 사람들의 나라가 있을 것이다. 내가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야, 그저 진심 어린 사과만을 바랄 뿐이야.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를 바랄 뿐이야.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 연기라도 좋으니 미안한 시늉이라도 해주면 좋겠다고 애처롭게 바라는 사람과, 그런 사과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이런 상처도 주지 않았으리라고 체념하는 사람과, 다시는 예전처럼 잠들 수 없는 사람과, 왜 저렇게까지 자기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드러내?라는 말을 듣는 사람과, 결국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다는 벽을 마주한 사람과, 여럿이 모여 즐겁게 떠드는 술자리에서 미친 사람처럼 울음을 쏟아내 모두를 당황하게 하는 사람이 그 나라에 살고 있을 것이다.


- 최은영 <밝은 밤> 252p, 문학동네


'밝다'라는 건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단어다. 하지만 마땅히 어두워야 할 시간인 '밤'이 밝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왠지 쉽게 잠들 수 없는 긴 밤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어린 시절 경험해야 했던 가족의 죽음,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와의 갈등, 배우자의 바람으로 인한 이혼, 이 모든 상처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한 여자의 인생에 남아 있는 밤들은 어떤 밤일까. '밝은 밤'이 곧 불면의 밤을 의미한다면, 소설의 화자인 지연이 감내해야 하는 모든 밤이 밝은 밤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그런 깊은 상처들과 마침내 화해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마치 어두운 밤 좁은 창문 사이로 환한 달빛이 내리는 장면처럼 보이지 않을까. 그런 회복이 가능한 거라면, 그 순간을 또 다른 의미의 '밝은 밤'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타인이 소장하고 있는 책을 빌려 읽었다. 직장인이 되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기존에 좋아하던 작가 혹은 익숙한 느낌을 주는 책들을 골라 읽는 경향이 다소 심해진 것 같아서 일부러 추천을 부탁했다. 책을 빌려준 사람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장 동료였는데, '최근에 좀 재밌게 읽은 책을 빌려달라'는 말에 그녀는 최은영의 <밝은 밤>을 건넸다. 이 책은 여성들의 이야기예요,라는 말과 함께.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심플한 설명은 꽤 정확한 표현이었다. <밝은 밤>은 화자인 지연과 그녀의 증조할머니, 할머니, 엄마의 삶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남자들의 내면은 거의 조명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시대적 상황에 편승하고 가부장적 사고에 갇혀 아무렇지 않게 타인에 대한 폭력을 가하는 전형적인, 그리고 안타깝지만 현실에서 흔히 발견되는 인물들이어서 사실 그 속이 궁금해지지도 않는다. 동료의 책소개를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바꿔보자면 '사과받지 못한 여자들의 이야기' 정도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밝은 밤>의 주인공인 여자들에게 사과했어야 하는 존재는 한결같이 남편이자 아버지인 사람들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소설은 '남자 잘못 만난 여자들의 이야기'에 가깝다는 생각도 해봤지만, 이야기의 절반 이상이 20세기의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고려해 보면 이것은 다소 부적절한 표현인 듯하다. '잘못 만난'이라는 표현을 쓰려면 피해자에게 어느 정도 선택권이 있어야 할 텐데, <밝은 밤>의 주인공인 지연의 증조모 '삼천이'와 할머니 '영옥이'는 모두 남편을 온전히 본인의 의지로 선택하지 못했다. 삼천이에게는 일제에 끌려갈지 모르는 상황이, 영옥이에게는 아버지의 선택이 각각 결혼을 강제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6. 25 전쟁까지 겪은 두 여자 '삼천이'와 '새비'의 우정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기도 한다. 나는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을 읽을 때면 몇 번씩 아프가니스탄의 끔찍한 상황에 슬퍼하거나 치를 떨며 분노하기도 했었다. 물론 분명한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우리 사회도 끔찍하기 그지없는 시대인 날들이 있었음을, <밝은 밤>에 나오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이처럼 소설에 나오는 악인들이 모두 남자여서 처음에는 마음 편히 읽어 내려갈 수만은 없었다. 남자 독자로서는 가정을 불행하게 만드는 남자의 모습이 어떠한지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책이었고, 형편없는 남편은 곧 형편없는 아버지가 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소설이기도 했다. 다만 어느 정도 인물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는 성별이 크게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남편의 바람, 그리고 사과받지 못한 이혼을 겪은 화자인 지연의 입장에 공감하는 것은 성별이 달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남자든 여자든,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다는 벽을 마주할 것이고, 한 번쯤은 여럿이 모인 술자리에서 울음을 쏟아내 타인을 난처하게 만드는 경험을 할 테니까.


결국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상처받은 사람들이 무너진 삶을 재건하는 모습 아닐까. <밝은 밤>의 화자인 지연이 스스로와 화해하고 회복하는 방식을 지켜보면서, 저마다의 아픔을 가진 독자들도 언젠가 달빛이 환하게 비추는 밝은 밤이 오기를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어떤 소설을 읽든 그 끝에 그런 희망을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좋은 책이 아닐까 싶다.





나는 종종 눈을 감고 어린 언니와 나를 만난다. 그 애들의 손을 잡아보기도 하고 해가 지는 놀이터 벤치에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학교에 갈 채비를 하던 열 살의 나에게도, 철봉에 매달려 울음을 참던 중학생의 나에게도, 내 몸을 해치고 싶은 충동과 싸우던 스무 살의 나에게도, 나를 함부로 대하는 배우자를 용인했던 나와 그런 나를 용서할 수 없어 스스로를 공격하기 바빴던 나에게도 다가가서 귀를 기울인다. 나야. 듣고 있어.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해줘.


- 최은영 <밝은 밤> 337p,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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