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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블루 Jan 22. 2024

조율 한 번 해 봅시다

제4화 그라운딩, 땅에 닿다.

2023년 8월 4일 오후 5시


세리씨(가명)가 오기로 한 날이다. 세리씨를 상담실로 부른 이유는 소매틱 심리치료가 세리씨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소매틱 심리치료는 트라우마 치료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 점을 알리고자 상담실 밖으로 나가 세미나를 꾸렸었다. 세리씨의 몸에는 트라우마 흔적일 수 있겠다고 짐작되는 것들이 있다. 그녀의 말, 행동, 움직임들이 그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신경계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겠다 짐작은 할 수 있다.


SE치료(대표적인 소매틱 심리치료)를 만든 피터 레빈은 트라우마는 사건에 있지 않고 신경계에 있다고 했다.

소매틱 치료로 마음을 고치려면 '누군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만큼 그 삶이 '신경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오후 5시, 드디어 상담실 문이 열렸다. 세리씨가 도착했다. 무사히 상담실에 도착한 그녀가 반가웠다. 우리는 간단한 인사를 했다. 세션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간단하게 알려달라고 했다.


그녀는 자신을 타지에서 살다가 서울로 올라온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예술가를 꿈꾸는 만학도로, 연기도 하고 노래도 하는 재주가 많은 사람이다. 그녀에게는 예술가로 성공하겠다는 꿈이 있었다. 그녀의 꿈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했고 돕고 싶었다.


상담사: 무엇이 불편하신가요?

세리씨: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데, 그러기에 제 몸이 감당을 잘 못하는 것 같아요. 내가 예민한 건가? 내가 문제가 있는가 싶은 건가 싶기도 한 적도 있고. 무엇보다 감정이 심하게 오르락내리락해서 힘들어요. (울먹울먹해짐)

상담사: 언제부터 그러셨나요?

세리씨: 좀비 영화에 단역으로 좀비 역할을 한 적이 있어요. 꽤 오래전인데, 한여름 더운 날씨에 온몸을 비틀어가면서 좀비처럼 움직이기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잘하고 싶으니까, 저는 뭘 하면 아주 열심히 해요. 정말 좀비처럼 보이려고 그렇게 한참을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그날부터 체온 조절이 안 되는 것 같았어요. 너무 힘들어서 계속 눈물이 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감정이 격해짐) 저는 참는 게 습관인 사람이라서요.


그냥 이렇게 두면 세리씨가 자기감정을 타고 저 멀리 가버릴 것 같았다. 그녀를 지금-여기(here-now)로 다시 불러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그라운딩'이라는 기법을 사용했다.  


그라운딩이란 '접지(接地)'를 말한다. 전기가 통하는 물체가 누전되지 않도록 땅에 연결하여 안정적인 상태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우리 몸 안에 에너지는 어떤 면에서 전기와 같다. 상당히 크고 그 덕에 우리는 생존을 한다. 그런데 그 에너지가 방향을 잘못 잡으면 그 때문에 누군가가 다치거나 망가질 수 있.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세리씨도 그럴 것이다. 


상담사: 우리 잠깐 지금-여기로 돌아와 볼까요?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그 이야기로는 언제든지 원할 때 돌아갈 수 있어요. 지금은 우린 지금-여기로 돌아와 봐요. 그렇게 하는 것이 감정이 심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조절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거예요. (커다랗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세리씨: 네 (상담사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을 따라 하며)

상담사: 네. 그렇게 우리 호흡을 몇 번 천천히 같이해 볼까요?

세리씨: 네에.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을 반복한다.)


잠시 정적


상담사: 지금 앉아있는 자세에서 몸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느낌을 느껴보세요. 지금도 지구는 우리를 잡아당기고 있어요. 나의 체중만큼 중력의 힘으로 아래로 잡아당기고 있어요. 그것을 조금 느껴보세요.

세리씨: (호흡을 몇 번 반복하더니 어깨 부분이 늘어짐)

상담사: 안정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다면 조금 더 그곳에 머물러 보시겠어요?

세리씨: (고개를 끄덕이며)

상담사: 네. 좋아요. 지금 머무는 그곳에서 안정적인 느낌이 잘 느껴지신다면 그 감각을 유지하면서 눈을 천천히 뜨시겠어요?

세리씨: (눈을 천천히 뜬다)

상담사: 어떠세요? 안정적인 느낌이 어디에서 느껴지시나요?

세리씨: 어깨에서 좀 느껴진 것 같아요.


세리씨는 몸의 감각 느끼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상당히 능숙하다. 어떤 사람들은 몸의 감각을 느끼는 것이 너무 어렵다. 몸이랑 친해질 기회가 없어서 그렇다. 세리씨가 연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잠시 머릿 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녀가 조금 더 안정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을까 싶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질문을 해봤다.


상담사: 이번에는 두 발을 땅 위에 대 보시겠어요? 까치발을 하거나 발을 엇갈리지 마시고요.

세리씨: (두 발을 땅에 댄다)

상담사: 그 상태로 잠시 있어 보실게요. 발이 땅에 닿는 것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볼게요.

세리씨: (갑자기 흐느끼며) 선생님 이상해요. 뭐가 이상해요.


세리씨의 흐느낌에 적잖이 놀랬지만, 나는 세리씨의 몸이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상담사: 거기 느껴지는 것을 있는 그대로 느껴봐요. 괜찮아요.

세리씨: (눈물이 터져 나옴)

상담사: 그래요. 거기서 잠깐 호흡해 볼게요.


무슨 일일까? 두 발이 땅에 닿은 것을 느낀 세리씨의 몸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몸의 에너지가 안전하게 접지될 후, 세리씨 몸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계속)




마음을 고치는 작가 안블루

정신건강의학과 조이의원 협력센터인 심리상담센터 위드제이에서 수석상담사로 근무하며 정서장애, 불안장애, 외상후스트레스 장애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에세이 <조율 한 번 해주세요>를 통해서 아직은 일반인에게 생소한 마음의 조율 기능을 회복시키는 자율신경계 정상화 과정을 브런치에 연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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