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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Jun 01. 2022

5월, 기다려져 내일이 변해가는 매일이

2022년 5월의 월말 결산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까워 남겨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매달을 기록해둡니다.




5월에 읽은 책

• <젊은 ADHD의 슬픔> - 정지음

- ADHD인들의 괴로움과 불편함을 감히 내가 알 것 같다 할 수는 없겠지만. 책에서 말하는 대로 모두가 각자의 문제로 시끄럽고 고독하고, 또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미쳐 있는 세상이다. 스트레스를 경험해본 현대인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글. 특히 마지막 문장 정말 명문 그 자체고, 부록처럼 들어있는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몇 가지 요령'도 의외로 유용한 삶의 팁이 된다.

"세상은 양쪽으로 봐야 좀 더 재미있는 곳이다. (중략) ‘든 것 없이 가벼운 인생'은 관점을 바꾸자 ‘잊음으로써 가뿐해지는 인생'이 되었다. 나는 계속 사사로이 절망스럽겠지만, 그것들이 지속되지 않기에 결국은 행복해질 것이다."
"하지만 나의 큰 실수는 ADHD가 아닌 모든 인류를 정상인으로 분류했다는 것이다. 단지 ADHD가 아닐 뿐 다들 제각기 미쳐 있는 세상이다. 누가 누구에게 충고하고, 누가 누구를 구원할 수 있을까?"
"나는 무궁무진하고, 어떤 면에선 무고하다고. 무미건조한 일상은 무사함의 증명인 거라고. 단지 상상력 하나로 머릿속에 무성영화 상영관을 차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무수히 많은 날을 살며 그래도 무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무용함과 무용은 한 끗 차이라 하릴없이 삐걱대는 나날도 전부 춤이었다고 말이다."


• <저 청소일 하는데요?> - 김예지

- "너는 꿈이 뭐야?"라고 물었을 때 꿈이 곧 직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직업으로 생계 수단과 자아실현을 다 잡았을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그 둘을 분리해 n개의 자아로 살아갈 수도 있는 거고, 또 누군가는 번듯한 직업을 가졌지만 성취감과 만족감을 전혀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길을 가고 모두 다르게 살아간다는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했으면.

"조금 다르게 살아보니, 생각보다 행복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좀 다르면 안 되나요?"
"남의 시선을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전 이김보다 견딤을 택했어요."
"‘책임감'은 나 자신을 독립적으로 만들고, ‘성실함'은 나에게 자신감을 주고, ‘꾸준함'은 내가 나를 믿게 만든다."


• <여성 2인 가구 생활> - 토끼와 핫도그

- 이런 친구이자 룸메이트이자 생활 동반자가 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인 것 같다.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고, 서로의 동기부여가 되어주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 노력할 수 있는 파트너.


• <아무튼 아이돌> - 윤혜은

- 카시오페아부터 국민 프로듀서까지, 한 번이라도 K팝 아이돌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경험담과 감정들. 덕질의 긍정적인 면들을 언어로 명시해준 점이 좋았다.

"덕생은 사방이 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서 어떤 하루를 보냈든 다 괜찮아질 것 같은 대책 없는 안심을 준다. 그러는 사이 비루하거나 비대해진 자아는 회복된다."
"덕질은 아이돌과 내가 얼마나 연결돼있는지를 따져보며 셈하는 일이 아니다. 특별한 성취 없이도 행복할 수 있는 순수가 아직 내 안에 살아 있음을 반갑게 확인하는 일에 가깝다."
"덕질, 즉 어떤 대상을 최선을 다해 사랑해 보는 이 드문 경험은 왜 귀한가. 일본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는 우리가 자신의 전부를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워도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의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 (중략)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능력, 덕질은 우리에게 그런 능력(덕)을 준다. 자꾸만 나를 혐오하게 만드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면서, 이 세계와 맞선다."


• <20대 여자> - 국승민, 김다은, 김은지, 정한울

- 20대 남자가 일명 '이대남' 현상으로 과대 대표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나이는 같지만 생각, 가치관, 정치관 등은 너무나도 다른 20대 여자들에 주목한 책. 무려 200여 장의 구체적인 데이터와 해석들을 읽어 넘기다 보면 결국 결론은 "여성 차별에 대한 냉담한 인식은 20대 남성만의 현상이 아닌 전체 남성의 공통된 특징이다"라는 점이다. 씁쓸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을 바라는 게 말도 안 되는 너무 큰 욕심은 아니잖아요.. 당연한 거잖아요..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 자체가 권력이었다. 설명해야 하는 삶과 설명해주는 삶이 가진 권력의 크기는 다르다. 알아서 설명하고 해석해주는 데에서 권력이 작동한다."
"혐오 표현과 ‘기분 나쁨'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중략) 의도적으로 혐오 표현을 담고 있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기분이 나쁘다'’의혹이 있다'가 아니라 실제로 그 표현에 의해 불안과 위협을 느끼는, 자신이 배제되었다고 인식하게 되는 구체적 맥락이 필요하다."


5월에 즐겨들은 K팝

•퀸이 나 '탐이 나': 개취로 '퀸덤2' 최고의 무대. 모니카쌤의 안무, 연출과 멤버들의 역랑, 소화력에 박수를.

•르세라핌 'FEARLESS': 솔직히 곡이랑 안무가 너무 세련되게 잘 빠졌다. 근래 가장 인상적이었던 데뷔곡.

•빌리 'a sign ~ anonymous': (좋은 의미로) 레드벨벳 수록곡스러운 곡. SM의 피가 흐르는 리스너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을걸?

•윤하 '스물다섯, 스물하나': 오랜만에 전율을 느낀 라이브 무대. 좋은 가수와 좋은 곡의 힘. 윤하의 시원한 목청을 타고 귀에 꽂히는 가삿말이 심금을 울린다.

•백예린 '물고기', '그게 나였네':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는 내 인생 가수. 듣고 있으면 고요한 물 위에 둥둥 떠서 유영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네가 날 바로 찾을 수 있게 작은 타투를 새긴 후 다녀올게" 구름짱 대체 어떻게 이런 가사를.. 구름&예린 두 분의 무한 열일 응원합니다. 1계절 1신곡 어떻게 안될까요?


5월에 본 영화와 드라마

• 넷플릭스 시리즈 <안나라수마나라> (2022)

- 하필 주인공 이름이 '아이'라니, 보는 내내 속으로 '아이야, 어른들이 미안해ㅠㅠ'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너무 딱한 데다가 온갖 고난과 역경이 덮치는 스토리를 보는 걸 심적으로 좀 힘들어하는 편인데, 마술이라는 소재가 '이건 판타지야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좀 놓였다. 중간중간 뮤지컬st로 나오는 연출은 놀라울 정도로 황홀하고 감각적이다. 특히 아이가 위로받는 장면과 마지막 쿠키 영상(?)이 압권. 눈물 한 바가지 쏟았다. 삶이 힘들 때마다 꺼내보고 싶은 명장면.

"언제부터 이 세상은 꿈도 규격에 맞추어 꿔야 하는 것이 되었을까요? 인정받는 어른이 되려면 대체 어떤 자격이 필요할까요? 나는 그냥 나다워야 되는데 우리는 왜 다른 사람과의 평균치를 벗어나지 않으려 애를 쓸까요?"


• 미국 Freeform 드라마 <오늘도 술 취한 내 인생 (Single Drunk Female)> (2022)

- 알콜 중독으로 한 순간에 추락한 젊은 여성이 술을 끊고 새로운 마음 가짐으로 삶을 극복해가는 과정. 너무 재미있지도 너무 감동적이지도 않고 덤덤해서 오히려 끝까지 보게 되었달까. 사만다가 한없이 비참해지는 순간이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생계를 이어가고, 관계를 회복해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그들만의 사랑: 테리와 팻의 65년> (2020)

- 듣똑라 추천으로 본 다큐멘터리. 65년이라는 세월 동안 숨기고 맞서 싸워 지켜낸 사랑이라니, 숭고한 트루 러브에 눈물 줄줄..

"평생 규칙을 어기며 살았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맞아요. 그래서 내가 행복한 거예요."


5월에 인상 깊게 본 콘텐츠

• 김태리 브이로그 <거기가 여긴가> (2022)

- 작품을  끝낸 배우가 역대 출연작 촬영지를 다시 가보며 필모를 추억하는 여행을 한다는 기획 자체가 너무 천재적. 거기에 김태리라는 사람이 가진 독특한 매력이 더해져 공짜로 보기 미안할 정도의 역대급 고퀄 자컨이 탄생했다. 본인 톱배우시면서 여행 중에  번도 정체를  들키고, 지인들에게 즉흥적으로 전화해 여행 코스를 정하고, 별안간 운전하다 웃고 울고 리코더를 불고, 처음 만난 낯선 아저씨랑  시간 넘게 인생 얘기를 나누는 , 김태리가 아님 누가   있는데 진짜.. 하여튼 재미있고 특이하고 배울 점도 많은 사람.  


• 웹예능 유튜브 채널 '재밌는 거 올라온다' (2022)

- 와썹맨, 네고왕 제작진들이 또 한 번 새로운 예능 패턴을 선도하는 발판이 될 것 같아 기대되는 신생 채널. '또간집'은 정말 풍자라서 할 수 있는 (시민들과 거리낌 없이 인터뷰 가능, 많이 먹고 잘 먹음, 맛 평가 정확) 먹방 기획이고, 뻔한 인스타 유행 맛집에서 묘하게 텐션 떨어지고 찐존맛집에서 티 나는 게 너무 웃기다. 김영철의 '돌출입터뷰'도 앉아서 토크만 하는 게 아니라 MC가 직접 게스트와 관련된 인물들을 인터뷰하러 다니며 소스 따는 게 요즘 시대에 잘 없는 쓸고퀄 정성이라 오히려 신선했다. 이렇게 좀 새로운 시도하는 채널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5월에 맛있게 먹은 음식

- 그 유명한 배떡 로제떡볶이 처음 먹어봤다. 아주 위험한 맛..

- 최애 빵집 스웰즈 베이커리의 무화과 크림치즈 바게트

- 디스이즈잇의 칠리 라구 파스타


5월에 잘한 소비

- 농구화 샀다! 나이키 조던 와이낫 제로5. 아직 초보라 뭐 좋은 건 모르겠는데 우선 예뻐서 기분은 좋다.  


5월에 있었던 일들

- 회사팀으로 여성 직장인 동호회 풋살 매치에 참가했다. 새로 합류한 팀이라 아직 어색해서 합을 좀 더 맞춰보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했는데, 막상 뛰다 보니 이기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해졌다. 공격수라고 맨 앞에 나가 있으면서 찬스를 거듭 놓쳐 팀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나 자신에게 화도 났었는데, 마침내 극적으로 골이 터졌을 때의 짜릿함과 안도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준우승이라는 결과도 나름 만족스럽고, 무엇보다 같이 뛰고 응원해준 팀원들과 서로 다독이고 격려하고 환호하며 진짜 한 팀이 된 것 같은 충만함 같은 게 느껴졌다. (나만 그렇게 느낀 거 아니지..?) 그날 뒤풀이하고 잔뜩 취해 집에 와서 일기에 "축구하길 참 잘했다"라고 썼다. 살면서 이런 감정을 언제 또 느껴본 적 있었나, 정말 축구하길 참 잘했다.


- 1년 넘게 뛰고 있는 기존팀과는 1박 2일 전지훈련(을 빙자한 MT)을 다녀왔다. 물놀이, 바나나보트, 족구, 배구, 풋살, 풍선 밟아 터뜨리기, 마피아, 발야구, 물병 던져 세우기 게임까지 정말 한 시도 쉬지 않고 움직여서 승부를 겨뤄야 직성이 풀리는 게임 광인들. 다들 체력 좋고, 열정도 쩌는데, 무엇보다 승부욕이 너무 강해서 뭘 해도 열심히 온 진심을 다해 해내는 이 사람들이 너무 좋다. 10대부터 3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직업의 여성들이 축구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한 팀이 되어 이런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새삼 감동이고 참 소중한 인연이다. 역시 축구하길 참 잘했다.


- 그리고 농구도 시작했다. (ㅋㅋㅋ) 농구를 배워보는 게 올해 목표였는데 운 좋게 바로 좋은 기회가 생겼다. 이제 막 드리블, 패스, 슈팅 기본자세부터 배우고, 연습 게임하면 공만 보고 뛰어다니는 초보 수준이지만, 풋살과는 또 다른 차원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어 재미있다. 근데 농구는 진짜 적당히 재미로만 하기.. 풋살처럼 눈 돌아가기 금지.. 과해지지 말자고 스스로와 약속.


- 이렇게 심각한 운동 과몰입 상태를 겪고 있다. 몇 달째 그래 왔지만 이번 달은 유독 일상에서 운동 빼면 별로 남는 게 없네. 근데 이런 삶이 꽤 만족스럽다. 하루하루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걸 실감한다. 돌이켜 보면 딱 재작년 이맘때 우울과 무기력의 정점을 찍고 힘든 나날들을 보냈었다. 그럴 때도 있었지. 근데 지금의 나를 보면 과연 누가 그렇게 생각할까. 이따 저녁에 선선해지면 러닝 해야지, 내일 크로스핏 와드 재미있겠다, 이번 주 풋살 가서 세 골 넣어야지, 다음 주 농구 가서는 패스를 마스터해야지.. 이런 생각으로 사는데. 데이식스 'Sweet Chaos' 가사처럼 "근데 기다려져 내일이 변해가는 매일이" 그 자체다. 그러고 보니 술자리에서 이미지 게임을 했는데 '70살에도 지금처럼 지낼 것 같은 사람'으로 내가 뽑히기도 했다. 지금처럼 운동 많이 하고 취미 생활도 하며 열심히 살 것 같다고. 그때까지 한번 가보자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잘 살아보자고.


5월의 베스트 모먼트

1. 자가격리 끝내고 오랜만에 밖에 나가 뛰었던 어린이날 풋살 번개

2. 매치 첫 골의 감동과 멀티골의 쾌감, 그리고 풋살 하길 너무 잘했다고 느낀 뒤풀이까지

3. 풋살팀 1박 2일 전지훈련 꽉꽉 채운 36시간의 모든 순간.. 아주 제대로 풋살에 미친 한 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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