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의 월말 결산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까워 남겨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매달을 기록해둡니다.
6월에 읽은 책
• <구독 좋아요 알림설정까지> - 정연욱
- 온라인에서 유명해지고 싶어 하는 지금 2030 세대의 욕망을 분석한 사회 인류학 책. 고도의 돌려 까기(?) 작법이라고 해야 할까. 인플루언서들 뼈 때리는 분석이 아주 날카롭고, 깨알 개그 포인트도 녹아 있어서 엄청 재미있게 훅 몰입해서 읽었다. 근데 읽다가 기분이 이상해지는 순간이 몇 번 있었는데 솔직히 이건 내 모습임을 부정할 수 없는 면들도 있었다. 계정에 굳이 본명을 안 쓰는 나, 카페 가서 예쁜 사진 찍어 올리는 나, 규칙적인 삶과 운동에 집착하는 나, 내가 본 콘텐츠에 썰을 풀어 나만의 콘텐츠로 만들어버리는 나.. 심지어 물질파, 육체파, 정신파 다 해당하는 완전체네. 나 유명해지고 싶었냐?
"온라인 애칭이나 계정으로 시작한 이름을 일상에서 그대로 가져다 쓴다. 오프라인의 남루함을 제거하고 새롭게 태어난 자아다. 온라인은 그들이 원하는 ‘자기 주도적 정체성'의 최전선이다."
"내가 원하는 모습에, 내가 원하는 내용에, 내가 원하는 관계와 이상적인 모습을 담는다. 그렇게 완벽한 삶은 완성된다."
• <근육이 튼튼한 여자가 되고 싶어> - 이정연
-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여자들아 당장 근력 운동 시작하자!!!' 이거다. 내가 크로스핏 하면서 느낀 것들, 그리고 요즘 맨날 주변 사람들에게 운동하라고 잔소리하는 말들과 거의 비슷해서 고개 오천 번 끄덕이며 읽었다. 특히 여자들도 몸이 커지고 강해져도 된다고, 남의 시선 신경 쓰지 않고 내 몸에만 집중해도 된다고, 열심히 해서 누군가를 이기고 싶은 야망을 가져도 된다고 말해준 점이 좋았다.
"내 근육들은 나의 일상을 야무지게 받쳐주고 있다. (중략) 나를, 나의 일상을 무탈하게 지탱해준다. 무탈함에 투자하자. 그렇지 않으면 더 많은 비용이 소모된다."
"운동을 하면서 쌓은 기록은 남들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겠지만, 나에게는 소중했다. 나의 성취를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는 수치이기 때문이다. 몸무게나 체지방율처럼 나를 작아지게 하는 수치가 아니라, 나의 강함을 증명해주고 성취감을 북돋우는 수치라니!"
"이제 다시는 (이기고 싶은) 마음을 묻어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꾸준히 운동하고 훈련해서 누군가와 힘을 겨룬다면 그를 이기고 싶다. 이기고 싶은 야망은 나쁘지 않다. (중략) 야망, 그런데 가져보니 참 신기하다. ‘나는 꼭 이룰 거야!’라는 다짐, 그것만으로도 약간의 에너지가 더 생겨난다."
"내가 쌓아온 근력 덕분에 덜 잔인한 생명체가 되어 가는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일상을 돌보고, 남은 근력과 체력으로, 조금씩 좋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감각!"
• <생각의 쓰임> - 생각노트
- 생각노트님이 말하는 나만의 해석 기르기 프로세스 4단계: 관찰-기록-질문-해석. 여기까지는 잘 알고 있다. 중요한 건 그다음 스텝, 아마도 실행-공유-소통 아닐까. 지금 나에게는 내 머릿속에서만 휘몰아치다 휘발되어 버리는 생각들을 잡아두려는 본격적인 액션이 필요하다.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콘텐츠로 만들어 더 성장하고, 더 발전하고, 더 단단해졌으면 좋겠다."
• <더 사랑하면 결혼하고, 덜 사랑하면 동거하나요?> - 정만춘
- "가끔 혼자 있고, 주로 함께 있고, 때때로 다 같이 살기에 더 사랑할 수 있다"라는 말이 좋았다. (나는 대체로 혼자 있고, 어쩌다 한 번씩 함께하는 쪽을 선호하긴 하지만.) 가부장적 가족 공동체와 사회가 규정해놓은 결혼제도를 따르지 않아도, 혼자 살든 같이 살든 헤어지든 다시 만나든, 모든 다양한 형태의 관계가 (불법이거나 부도덕적이지만 않다면) 감정적으로, 제도적으로나 존중받았으면 좋겠다.
"곁에 누군가를 둔다는 건 언젠가 내 모습이 그 사람과 비슷해져도 괜찮다고 말하는 걸지도 모른다."
"한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게 된다고들 한다. 어쩌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필수적일지도 모른다."
• <제 마음대로 살아보겠습니다> - 이원지
"떠나고 보니 내가 알고 있던 기준은 오직 한국에서만 적용되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상식이 비상식이 되기도, 비상식이 상식이 되기도 하는 수천수만 가지의 삶의 방식이 존재했다."
"행운도 나에게 들어올 공간이 있어야 다가온다고. 빡빡한 계획과 욕심으로만 마음을 채우면 눈앞까지 다가온 행운도 들어갈 곳 없어 떠나버리지 않을까."
6월에 즐겨들은 K팝
- 아쉽게도 이번 달에 나를 확 사로잡은 K팝 신보는 없었다. 그냥 맨날 듣던 노래들, 특히 데이식스 노래들이 새삼 너무 좋아서 내내 데식만 들었다. (역시 6월에 닉값하는 데이6..) 데이식스 추천곡이 궁금하면 그냥 검색해서 제목 끌리는 거 아무거나 들어라, 최애곡은 그날의 조명 온도 습도에 따라 다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특정 몇 곡을 꼽을 수가 없다. 모든 곡이 내 일상의 적절한 순간마다 bgm이 되어줬다.
6월에 본 영화와 드라마
•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2022)
- 이건 분명 내가 좋아할 드라마라고 추천을 많이 받았는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직 다 못 봤고 금방 다 보기도 어려울 것 같다. 분명 재미도 있고, 울림도 있고, 대사도 좋고 참 좋은데, 한 편 보고 나면 감정 소모가 너무 많이 돼서 힘이 축 빠진달까. 그럼에도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드라마 속 인물들이 궁금해질 때마다 한편씩 꺼내볼 것 같다는 확신은 있는 작품. 결국 미정이 맞이할 '해방'이란 무엇일지 기대된다.
"너는 말로 사람을 홀리겠다는 의지가 안 보여서 좋아. 네가 하는 말은 한마디 한 마디가 다 귀해."
"우리를 지치고 병들게 했던 건 다 그런 눈빛들이었다. 자신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하고자 달려들었다가 자신의 볼품없음만 확인하고 돌아서는 반복적인 관계. 어디서 답을 찾아야 될까?"
"나의 이 분노를 놓고 싶지 않아. 나의 분노는 너무 정당해."
• 영화 <헤어질 결심> (2022)
- 살인 사건의 전말과 반전 이런 것보다 해준과 서래가 단 둘이 있을 때 뿜어져 나오는 숨 막히는 케미가 훨씬 스릴 넘치고 다이내믹했다. 두 인물의 교감이 주는 몰입도와 여운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했다. 덕분에 작품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오랜만에 영화다운 영화를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 그리고 사실 이 영화는 탕웨이 언니 눈빛이랑 목소리가 다했다고 생각한다. 탕언니, 여기도 잠 잘 못 자는 사람 하나 있어요.. asmr 재능기부해주실 생각 없으신지..
• 영화 <미성년> (2019)
- 인물들 중 제일 나이가 어린 두 미성년이 가장 인격적으로는 성숙해 보이는 아이러니. 상상만 해도 감당하기 힘든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극과 극이었던 두 소녀가 연대하며 서로 의지하게 되는 과정이 보기 좋았다.
•HBO Max 드라마 <나의 직장상사는 코미디언> 시즌1 (2021)
- 나는 늘 나와 '대화 주파수'가 맞는 사람을 찾고 있다. 겉으로만 봤을 땐 맞는 게 하나도 없어 보여도, 일대일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우리 둘만 통하는 작은 세계로 깊이 빠져들어 충만해지는 관계. 그렇게 티격태격 대던 데보라와 에이바가 서로를 외면할 수 없었던 건 두 사람도 결국 그런 관계였기 때문 아닐까.
6월에 인상 깊게 본 콘텐츠
• tvN 예능 <뜻밖의 여정> (2022)
- 경력 55년의 원로 배우가 70대의 나이에도 새로운 일 앞에서 얼마나 긴장하고, 노력하는지, 그리고 또 얼마나 잘 해내며 한 단계 더 성장하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던 방송. 윤여정 선생님만큼 다이내믹하지는 않을 수 있어도, 모두에게 인생이라는 건 정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뜻밖의 여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We are never too old to accomplish big things." 근데 이 멋진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LA 놀러 다니는 나PD와 이서진 분량이 굳이 필요했을까는 크게 아쉬운 포인트. 팟캐스트 '시스터후드' 시스터 이슈 파이터 6월호에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 다 해주셨으니 링크로 대체한다.
• tvN 예능 <뿅뿅 지구오락실> (2022)
- 바로 위에 나PD 예능 내 스타일 아니라고 해놓고 좀 머쓱하지만.. 잠깐 뇌 비우고 미친 듯이 웃고 싶을 때 보기 딱 좋은 예능이 생겼다. 이은지, 이영지, 미미, 안유진 이건 솔직히 안 볼 수가 없는 라인업. 그리고 나는 진지하게 요즘 우리나라에서 이영지가 제일 웃긴 것 같다. 이 센스 천재, 예능 천재, 콘텐츠 천재가 메이저 플레이어로 대성하는 발판이 되길.
• 엠넷 예능 <Be Mbitious>, <뚝딱이의 역습>, JTBC 예능 <플라이 투 더 댄스> (2022)
- 솔직히 스우파, 스걸파에 비해 재미는 덜하지만 어쨌든 댄스 서바이벌 처돌이는 리더즈 데리고 2절, 3절, 4절.. 하는 거 대환영이다. 언제 봐도 역시 내 확신의 픽은 리정. 리정 춤 볼 때마다 몇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 짜릿해.
• 유튜브 채널 '안정환 19' 원 포인트 레슨
- 전 국가대표 선수들 축구 유튜브 진짜 많이 하는데 그중에서도 안정환이 넘사벽으로 잘 가르쳐주는 것 같다. 일반인 아마추어들과 학생 선수들에게 진짜 진심을 다해서 안 되던 게 될 때까지 잡아주고 알려줘서 보는 내가 다 영광스러움. 이거 보면 진짜 축구 연습 열심히 하고 싶어 진다.
6월에 한 문화생활
• 전시 <언커머셜(UNCOMMERCIAL): 한국 상업사진, 1984년 이후>
"상업사진은 흔히 세속적인, 현실에 영합하는 사진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동시에 상업사진은 점점 복잡 미묘해지는 소비사회의 욕망을 섬세하고 투사하고 갱신하는 전장이자 그것을 특유의 미적 양식으로 전환해온 거대한 무의식의 암실이다. 이 과정에서 상업사진의 세속성은 전형적인 역사의 기록 또는 재현을 돌발적이고 개인적인 것으로 재창안한다."
6월에 맛있게 먹은 음식
- 그 유명한 하이디라오 훠궈 처음 먹어봤다. 지난날의 나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맛있는 걸 안 먹고 살아왔는지. 자극적인 거 최고야 진짜..
6월에 있었던 일들
- 오랜 일태기의 마침표를 찍고 마침내 부서 이동을 했다. 새 서비스, 새 조직, 새 업무에 적응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산뜻한 긴장감과 적당한 부담감이 좋다. 일을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참 오랜만에 들었다.
- 대학교 동아리 선후배로 만나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 언니들과 함께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다. 이 기회에 백날 생각만 하고 단 한 자도 쓰지 못했던 운동 에세이를 드디어 시작해 보려 한다. 에세이는 나의 가장 연약하고 찌질한 부분을 마주하고 드러내야 하는 과정의 연속이라, 쓸 때마다 자기혐오 생길 것 같아서 너무 괴롭다. 그런데도 굳이 쓰고 싶어 하는 나는 어쩜 이렇게 모순 덩어리일까.
- 지난달에 이어 이번 달 풋살 매치에도 참가했다. 이번에는 꼭 우승하고 싶어서 진짜 잘해보려고 했는데 긴장했는지 아쉬운 결과를 남겼고, 역시 나는 선수할 멘탈은 못 되는구나 싶었다. 근데 지나고 보니 무엇보다도 경기를 준비하고, 뛰고, 응원한 그 모든 순간이 다 참 재미있었다. 다른 취미로는, 또 다른 사람들과는 절대 느껴보지 못한 아주 다른 차원의 재미. 내가 진짜 선수도 아니고 취미로 하는 직장인인데, 골 못 넣는다고 뭐 커리어가 흔들리는 것도 아닌데, 그냥 재미있으면 그걸로 되는 거 아닌가. 승부욕에 잠깐 눈 돌아갔던 나 자신 반성하며, 앞으로는 오래오래 즐축행축 할 것을 다짐했다.
- 그 다짐 좀 지키려 했더니.. 바로 다음날 또 풋살 하다 발목이 잘못 꺾여 인대를 다쳤다. 어떻게 딱 운동 에세이 쓰려고 하니 이런 비극 서사가 생겨버리는지.. 당분간 운동하면 안 된다는 말에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지만, 잠깐 운동 강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휴식기라고 생각하고 어찌저찌 극복해내고 있다.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에.
6월의 베스트 모먼트
1. 풋살 매치 끝나고, 후련하고 시원했던 밤공기
2. 역대급으로 날씨 좋고 하늘이 청명했던 날, 저녁 혼자 동네 뒷산에 올라 바라본 노을
3. 부서 이동 발령 났을 때 (...라고 솔직하게 써도 되겠지?ㅋㅋ) 어쨌든 긴 고생 끝에 해방감을 느꼈고, 고마운 옛 동료들의 응원 메시지도 큰 힘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