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의 월말 결산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까워 남겨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매달을 기록해둡니다.
7월에 읽은 책
• <이런 얘기 하지 말까?> - 최지은
- 덕질 흑역사를 고백하는 웃긴 에세인 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아, 이거 엄청난 페미니즘 도서였다. 더는 누구도 기꺼이 존경하지 않기로 했다는, 더는 어떤 남자의 팬도 되지 않기로 했다는 다짐. 결국 하지 말까 싶은 얘기야말로 가장 하고 싶은 얘기, 또 꼭 해야만 하는 얘기였음을.
"하지만 이미 늦었음에도 계속 말해야 한다. 우리는 여성을 덜 미워해야 하고, 여성에게 더 관대해져야 한다. 여성을 쉽게 비난하도록 만드는 세상을 바로잡아야 한다. 여성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산업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한다. 여성 혐오를 조장하는 언론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더는 어떤 여성도 함부로 끌어내려져선 안 된다."
"‘여성'에 대해 떠오르는 ‘인간 유형'이 다양하고 많아질 때 여성 개개인은 ‘같은 여자'로 묶일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
• <해피 엔딩 이후에도 우리는 산다> - 윤이나
- OTT 콘텐츠 리뷰에 그치지 않고, 작품에서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와 질문을 던지는 에세이.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노멀 피플', '콩트가 시작된다', '스케이터 걸', '위 아 레이디 파트' 편을 재미있게 읽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시간과 마음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변화한 내가 다시 이전의 내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듯이, 한 세계의 문이 열리면 등 뒤의 문은 닫혀야만 한다. 이런 세계에서는 열린 결말이야말로, 완벽히 닫힌 결말일 테니까."
"제대로 기억하기로 한 사람들이 싸울 때 비로소 조금씩 세상이 변해왔고, 변해갈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 <드디어 팔리기 시작했다> - 안성은
"히트하는 콘텐츠는 급진적이면서도 소비자들이 수용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다름'과 ‘공감'이다. 무조건 튄다고 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다름에 공감의 요소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7월에 즐겨 들은 K팝
• 선미 '열이 올라요'
- 선미는 좋은 의미로 약간 똘끼가 있어 보이는 게 아티스트로서 엄청난 강점인 것 같다. 이렇게 다소 힘 뺀 듯한 음악으로도 퍼포먼스 챌린지 열풍과 이지리스닝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버린 독보적인 매력.
• aespa 'Girls', ITZY 'Sneakers'
- 솔직히 개인적으로 이전 곡들만큼의 신선한 충격이나 엄청난 감흥을 받지는 못했지만, 우리 가요계의 희망 4세대 여돌들은 늘 응원하는 마음이니까요. 그런데 말이죠..
• 뉴진스 데뷔 앨범 'Attention', 'Hype Boy'
- 뉴진스가 세상에 나오고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뮤직비디오 보는데 너무 좋아서 기절할 뻔했다. 극강의 예쁨과 세련됨이 잘 버무려진 초 감각적인 비주얼과 오디오의 향연에 말라죽어있던 내 안의 감각 세포들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이 맛에 10년 전 샤이니-에프엑스 시절 K팝 제일 좋아했지. 능력 있는 젊은 여성 디렉터가 대표가 돼서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으면 이렇게나 멋진 일이 일어나는구나. 민희진 선생님 앞으로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사시고, 선생님 꿈꾸시는 모든 상상 다 실현시켜 주소서.
7월에 본 영화와 드라마
•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2022)
- 따뜻하고 재미있고 모두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드라마. 이 드라마가 흥해서 좋은 점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에 대해 나름 한 번씩 생각해 볼 기회가 됐다는 거다. 우선 드라마는 세심하게 잘 만들어진 것 같으니, 부디 이 드라마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모든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사람이 우영우 같을 거라고 편견 갖지 않기, 자폐를 귀여워한다거나 모방하지 않기, 드라마 밖 장애인들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
• 미국 코미디 영화 <시니어 이어> (2022)
- 뇌에 힘 안 주고 그냥 킬링 타임용으로 보기에는 괜찮았던 하이틴 코미디. 영화에서는 오늘날의 pc함을 나름 개그 소재로 쓴 것 같지만, 그래도 시대가 바뀌고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포인트.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안 쳐준다고 말하는 건 쓸데없는 짓이야. 그 사람들보다 더 쳐줘야 할 사람이 어디 있니?"
•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 (2018)
- 요즘 듣는 팟캐스트에 몇 차례 언급되어 찾아봤다. 모든 여성들이 몇십 년 동안 매달 하는 건데 그렇게나 보편적인 건데 그동안 우리는 생리에 대해 쉬쉬할 뿐, 정작 생리에 대해 너무 몰랐던 것 같다. 어느덧 경력(?) 20년 차인 나에게도 다른 사람의 생리, 할머니-엄마 세대 여성들의 생리, 다른 나라 여성들의 생리 경험은 전혀 몰랐던 세계였다. 여성의 몸을 더 잘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은 한 번쯤 보면 좋을 유익한 다큐멘터리.
7월에 인상 깊게 본 콘텐츠
• JTBC 예능 <소시탐탐>
- 올해 가장 기다렸던 예능은 단연 소녀시대 15주년 기념 완전체 리얼리티. 역시 소녀시대는 다르다. 예능을 잘해도 너무 잘한다. 아직도 심심할 때 가끔 유튜브에 '소녀시대 예능 레전드'를 찾아보는데, 이제 언니들 방송 짬바 쌓이니 이번에 그 레전드들을 다 경신해버릴 것 같다. (아무 말 노래 이어 부르기랑 아나바다 드립 칠 때 진짜 눈물 날 정도로 깔깔대며 웃었다.) 잠잠했던 팬심이 다시 불타오르고 15주년 컴백이 더욱 기대된다.
• 티빙 오리지널 예능 <제로섬게임>
- 참가자들이 몸무게 총합을 유지하면 상금을 지키고, 차이가 날 때마다 상금이 차감되는 심리 서바이벌 게임. 다양한 체형을 가진 참가자들은 미션마다 전략을 짜서 살 찌울 땐 일부러 폭식하며 화장실 가는 것도 참고, 또 최대한 빼야 할 땐 금식하고 각자 운동, 사우나 등으로 칼로리를 태운다. 사람 몸 가지고 게임한다는 게 잔인하긴 한데, 식단과 운동이 내 관심사라 그런지 솔직히 흥미롭긴 하다. 그 안에 비밀 연합, 배신, 빌런, 음모가 난무하는 것도 재미 포인트. 이거 보고 있으면 내가 좀 별로인 사람이 된 것 같은 죄책감이 드는데 그래도 매주 챙겨 보게 되는 길티 플레저.
• 유튜브 <차린건 쥐뿔도 없지만>
- 이영지가 메인으로 나오는 모든 콘텐츠를 사랑하지만 '차린건 쥐뿔도 없지만'은 박박 웃기면서 좀 짠하기도 하고 감동도 있어서 여러모로 다채로운 재미를 주는 콘텐츠다. 역시 술을 마셔서 그런가. 아이돌이 카메라 앞에서 풀어진 모습도 보이고, 진솔한 속 얘기를 털어놓는 걸 보는 게 참 낯선데 좋다. 잘 관리된 모습보다도 이런 인간적인 면모에 치이는 덕후는 어쩔 수 없다. 그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난 호시 편, 채령 편이 레전드.
• 뉴진스 데뷔 프로모션
- 이 팀을 세상에 알리는 모든 과정과 요소들이 가히 '올해의 콘텐츠'감이라고 할 수 있다. Attention 뮤비로 당차게 팀 이름을 최초 공개하며 팀이 추구하는 이미지와 방향성을 보여주고, 다음날 공개되는 Hype Boy 뮤비가 인트로 영상에서 시작해서 '누구로 할래? 골라봐'라는 메시지로 끝나고 각 멤버 버전 뮤비를 선택하게 하면서 멤버들의 이름과 얼굴을 익히게 하고, 모두가 각자의 스토리 안에서 주인공이 되게 연출하는 데에서 저는 기절할 수밖에.. 트렌디한 비주얼 요소도 한몫 하지만 솔직히 이건 기획력의 승리다.
• SM Classics Feel My Rhythm (Orchestra Ver.)
- 보고 있으면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것 같은 또 하나의 영상. Feel My Rhythm이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곡이었나 싶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SM Classics 시리즈는 인기 아이돌의 히트곡을 단순히 이미지나 콘텐츠로 소비하는 게 아니라, 그 곡이 얼마나 좋은 음악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참 좋은 기획이다.
7월에 한 문화생활
•The Volunteers 콘서트 'This is TVT Club'
- 너무나도 오랜만에 듣는 밴드 라이브에 심장이 뛰었다. 무대 위 밴드 멤버들이 거의 안 보이는 극악의 스탠딩 시야였지만.. 최애곡 Summer 들을 땐 잠깐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고, S.A.D 너무 신나서 뛰면서 스트레스가 날아갔고, Hypocreep 후반부 연주 구간 너무 황홀해서 이대로 이 리듬에 잠식되어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고, Reality - Radio 구간은 진짜 breathtatking해서 숨 참고 무대 다이브 할 뻔. 역시 락밴드는 공연으로 봐야 진짜다. 그리고 예린은 이제 완전 락스타 그 자체다. 개멋있어서 이제 언니라고 부를래..
7월에 잘한 소비
•미즈노 모렐리아TF 풋살화
- 풋살 더 잘하고 싶어 져서 새 풋살화를 샀다. 성능이나 가격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는데, 딴 거 사도 저 텅에 새겨진 빈티지st 미즈노 로고가 계속 눈에 아른거릴 것 같아서 그냥 질렀다. 역시 예쁜 게 최고다. 확실히 천연 가죽이라 신을 때나 볼 터치할 때 부드러운 느낌은 있는데, 악명 높은 미즈노 특유의 스터드 때문에 빨리 달릴 때 미끄럽기는 하다. 그래도 이왕 산 거 당분간 내 발을 잘 부탁해. 골 많이 넣자!
7월에 간 카페
- 성북 공유, 성북 보리수, 잠실 웰하우스, 한남 마더오프라인, 성수 에이투비
7월에 있었던 일들
- 거의 풀 재택근무를 하다가 이제 주 1~2회 정도 오피스 출근을 하게 됐다. 내향인 최적화 일상에 절여진 몸이라, 이제 출퇴근길에 사람들한테 치이고 회사 사람들과 밥 먹고 스몰 톡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 빨리고 힘들어서 큰일이다. 사회성 영끌해서 빨리 회복해보자. 일 해야지. 돈 벌어야 운동도 하고 독립도 하지.
- 락 연주의 표본이라는 '나는 나비'와 내가 사랑하는 노래 '뚫고 지나가요'를 배우며 다시 드럼에 재미를 붙였다. 주말마다 개인 연습도 꾸준히 하고, 조금씩 실력이 느는 걸 체감하며 뿌듯해하고 있다. 내가 밴드 할 것도 아니고 드럼 더 배워서 어디다 써먹지 싶긴 한데. 나이 들어서도 새로운 걸 배우며 초보가 되는 경험을 계속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하니까 투자하는 셈 치자.
- 인대 부상 회복하고 깁스 벗자마자 운동 복귀했다. 병원에서는 이번 달까지는 운동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러다가는 다른 병이 날 것 같아서 도저히 못 참겠더라. 한 달 쉬고 오랜만에 다시 풋살 뛰고 크로스핏 하니까 너무 재미있고, 격하게 움직이고 땀 빼니까 과장 조금 보태서 내가 비로소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운동 안 하고는 못 살 것 같다. 매일 밤 얼음찜질과 각종 파스, 연고, 밴드를 달고 살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 개인 연습, 단체 훈련, 친선 경기, 그리고 MT까지. 어쩌다 보니 매주 주말을 풋살팀과 함께 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이제 실력 향상에 대한 개인적인 욕심이나 일반적인 회사 동호회 취미 수준은 한참 넘어선 것 같다. 그냥 이 사람들이 너무 좋고, 같이 합 맞춰 뛰는 게 재미있고, 함께 하는 시간이 소중해서 내 삶에서 우선순위가 되어버렸다. 한때는 내 열정이 좀 과한 건 아닐까 자기 검열도 했었는데, 이제는 그냥 즐기자는 쪽으로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한창 재미 붙이고 불 태울 시기니까, 이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언제가 끝일지 모르는 지금이 best part니까.
+) 주말 훈련 때 자체적으로 팀 짜서 했던 연습 경기가 특히 재미있었고, 친선 경기 때 승부욕에 미쳐 가지고 목 터져라 응원한 것도 좀 창피하지만 웃겼고, MT에서 퀴즈랑 게임 원 없이 하고 모처럼 배 찢어지게 많이 웃을 수 있어 행복했다. 특히 노래 맞히기 게임 광인은 한 300곡은 푼 것 같고 충분히 많이 맞혔으니 이제 더 바랄 게 없어요..^^
7월의 베스트 모먼트
1. 더 발룬티어스 공연에서 라이브로 들은 'Summer'
2. 뉴진스 'Attention' 뮤비 처음 봤을 때의 충격. 잃어버린 젊은 날의 눈부신 여름을 되찾은 것만 같은.
3. 우리 팀카카오와 함께한 모든 순간 (하트) (+ 회장님 보고 있어여?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