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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Aug 31. 2022

8월, 널 생각하면 강해져

2022년 8월의 월말 결산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까워 남겨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매달을 기록해둡니다.




8월에 읽은 책

• <퀸즐랜드 자매로드> - 황선우, 김하나  

- 코로나 이후로 해외여행에 대한 욕구가 거의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좋아하는 작가님들의 여행기를 읽다 보니 한동안 잊고 살아온, 해외여행만이 주는 어떤 감각들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질척이는 일상에서 벗어나 산뜻하고 낯선 환경에 내던져지는 짜릿함과 해방감을 다시 느끼고 싶어졌다. 퀸즐랜드는 못 가봤지만 5년 전 혼자 갔던 멜버른-시드니가 그리워졌고, 다음에는 작가님들처럼 자연을 온몸으로 누릴 수 있게 다양한 액티비티를 함께 할 수 있는 동행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순간 그 세계의 일부가 되어보았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는데도 모든 걸 가진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진지하게 겨울쯤에 호주나 가볼까? 세상 모든 걸 가진 그 기분, 너무 느껴보고 싶어 졌어.

"여행이란 나 자신을 낯선 환경 속에 던져놓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러 가는 일이다. 거꾸로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나에게 최적화된 즐거움을 추구하러 가는 행위이기도 하다. 모든 일이 기대대로 진행되지는 않는다는 사실, 어떤 경험도 단정하거나 장담할 수 없다는 점, 심지어 나 자신조차 내가 예상한 것과 다른 사람일 수 있다는 빈틈들을 기꺼이 껴안을 때 여행은 훨씬 흥미진진해진다."

"그동안 예체능 교육에서 만나온 한국의 많은 스파르타식 선생님들에게 잭이나 린다 같은 여유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학생들에게 조금만 더 뷰티풀, 러블리, 퍼펙트를 끼얹어주었다면… 훨씬 강한 동력을 갖고 다양하고 풍요롭게 취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 <콘텐츠 가드닝> - 서민규

- 콘텐츠를 창작하는 일을 정원을 가꿔나가는 가드닝에 비유한 점이 참신했다. 오마이걸 '비밀정원' 가사가 떠올랐는데, 내 안에 있는 소중한 혼자만의 정원도 아직은 별거 아닌 풍경이지만 이 안에 심어둔 멋지고 놀라운 걸 언젠가 모두에게 보여줄 수 있는 날이 올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나만의 씨앗이 구체화되면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싶었던, 의외로 인사이트 넘쳤던 책. 

"자신이 골라낸 씨앗의 가능성을 주목하는 일. '이게 맞을까?' 의심을 품는 대신에 가장 용감한 시선으로 자신의 씨앗을 응시해보라. 미동조차 없는 씨앗에서 울창한 숲의 진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모호함을 받아들이면 어디로든 흐를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질서를 향하도록,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무질서를 허용하면서 길러나가는 것이다."

"시작할 때에는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기준을 낮추고 마무리할 때 그 기준을 높여보라. 완벽주의를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감탄할 줄 아는 사람만이 훌륭한 창작자가 된다. 빈센트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말했다. "아름다운 것에 가능한 한 많이 감탄하렴.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감탄하며 살지 못하고 있거든.""


•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 정지음

- 나 그리고 나를 둘러싼 이들 때문에 때때로 미쳐버릴 것 같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라고는 하지만, 본인의 연약함을 솔직하고 유쾌하게 고백할 줄 아는 정지음 작가의 글이 유독 좋다.

"'성급한 과몰입의 실패' 본인이 실패한 게 아니고 본인의 '과몰입'이 실패한 거예요."

"'삶이 내게 무엇을 알려주려고 저 사람을 보냈을까?'라고 생각하면 다시 내가 주인공이 되었다. 내 인생의 조연들이 오로지 장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삶이 하는 말들을 빨리 알아듣고 싶어 졌다."

"서로가 서로를 모르고 살던 시절의 이야기로도 단단한 공감대를 쌓을 수 있다. (중략)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다거나, 내가 저지르는 사소한 실수들에 구차해질 필요가 없다면 충분했다."


• <아무튼, 트위터> - 정유민  

- 딱 이 두 가지 이유만으로, 트위터리안은 못 되고 눈팅만 하는 나조차도 트위터를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나에게 익명성의 가치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나의 영역을 존중받는 것이다. 무관심이라 해도 좋다. 그로 인해 나는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

"트위터는 사람을 직접 대면하는 피로를 최소화하면서도 누군가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을 준다. 그러니 트위터를 적극적으로 할수록, 적어도 내가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존재는 아니라는 위안에 빠지는 것이다."


8월에 즐겨 들은 K팝

• 소녀시대 정규 7집 <FOREVER1>

- 말해 뭐해, K팝 최장수 걸그룹 리빙 레전드 소녀시대 15주년 앨범. 'FOREVER 1'은 그 옛날 '다시 만난 세계'에서 꿈을 위해 달리던 소녀들이 이제 그 꿈을 다 이뤄내고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는 게, 그리고 그 결과가 꼭 성대하고 아름다운 축제 같아 보여서 울컥했다. 팬이 아니어도 한국에서 지난 15년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지금의 소녀시대가 보여주는 세월의 흐름과 눈부신 성장(?), 그리고 여전한 실력과 프로페셔널함과 팀워크에 감동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특히 브릿지에 "널 생각하면 강해져"라는 소절을 듣자마자 '다만세'를 비롯한 수많은 소녀시대 명곡들을 들으며 커온 나의 지난 15년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살면서 수많은 가수들을 덕질해왔지만 생각해보면 나의 10대에도 20대에도 그리고 지금 30대까지도 꾸준히 내 삶에 깊게 침투해 있는 가수는 오직 소녀시대뿐이다. 늦었지만 이제야 나도 소원임을 인정하고, 언니들이 열어준 이번 15주년 잔치를 마음껏 즐겨 볼 생각이다. +) 수록곡 맛집 소녀시대답게 'Closer', 'Freedom' 강력 추천. 


• IVE(아이브) 'After LIKE' 

- 동년배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2010년대 초반 케이팝 감성. 뽕끼 비트 위에 휘몰아치는 바이올린 선율 너무 킹받지만 벅차오르고, 어떻게 여기에 'I'll survive' 샘플링할 생각을 했는지 정말 대중성을 씹어 먹어버리겠다는 의지가 그득그득. 중간에 뜬금없는 랩 파트로 티아라-애프터스쿨-나인뮤지스 계열의 숨듣명 포인트까지 챙겨버림. 스타쉽 A&R 일 너무 잘해서 질투 날 지경이고, 3연속 히트에 성공한 아이브 그냥 짱 먹으세요..


8월에 본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인상 깊게 본 콘텐츠

- 비상이다. 월별 기록을 시작한 이래로 역대급으로 본 게 없었다. 몇 편의 영화를 시도해봤으나 뜨뜻미지근해서 그냥 틀어놓고 딴짓한 시간이 더 많았고, 푹 빠져 과몰입하기 좋은 미드나 일드를 찾아 헤맸으나 심장이 저릿해지는 작품을 만나지는 못했다.


- 그나마 매주 챙겨 본 건 예능 소시탐탐, 지구오락실, 골때녀 정도. 인상적이었던 콘텐츠는 소시탐탐+지구오락실 세계관이 만나 탄생한 대환장 깔깔쇼 채널 십오야 소녀시대편, 그리고 모든 문명인의 염원이었던 성덕 재재와 소시 완전체의 만남 문명특급 소녀시대편. 사실상 소녀시대 덕질이 이번 달의 콘텐츠라고 해도 무방. 


- 아마도 가장 많이 재생한 유튜브 콘텐츠는 잇츠라이브 뉴진스 'Attention' Band LIVE Concert. 어쿠스틱 편곡과 하니의 애드립이 너무 좋아서 이젠 그냥 음원을 들으면 심심할 정도. 내 지난날들은 눈 뜨면 잊는 꿈~이 되겠지만, 뉴진스 음악과 함께한 올여름의 어떤 장면들은 어텐션 뮤비처럼 고채도의 기억으로 선명하게 오래오래 남을 것 같다.


8월에 잘한 소비

- 뉴진스 팝업스토어에서 구매한 것들. 이 미친 감각의 디자인이 아이돌 굿즈로 한정되는 게 아쉽다. 어도어는 그냥 편집샵을 하나 내고 온갖 의류, 생활용품, 살림살이, 예쁜 쓰레기들을 쉬지 않고 생산해주면 좋겠다. 테잌 마이 머니.. 


8월에 간 카페

- 용산 지미홈, 종로 헤리티지클럽, 종로 뮤직컴플렉스서울.. 이제 새로운 카페에 별 감흥이 없다. 


8월에 있었던 일들

- 강원도 태백-삼척으로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짧은 일정에도 부지런히 다닌 덕에 산과 숲, 천과 바다를 원 없이 봤다. 눈을 어디에 둬도 푸른색 투성이인 청정 자연 속에서 뇌와 마음이 맑아지는, 말 그대로 리프레쉬되는 경험을 했다. 이런 시간 너무 필요했었어. 


- 크로스핏 6개월 차에 접어든 지금, 이전에 비해 확실히 내가 강해졌다는 걸 실감한다. '이게 되네?' 싶게 들 수 있는 무게가 점점 올라가고, 아예 안 되던 동작들이 조금씩 되어가고. 그렇게 매번 나만의 기록을 경신하며 과거의 나보다 조금씩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을 제법 즐기고 있는 요즘이다. 하루하루 더욱 강해져가고 있으니까, 이제 피지컬적으로도 멘털적으로도 두려울 게 없다. 다 맞서서 이겨내는 멋진 어른이 될 거야. 


- 인간은 누구나 다 외로운 법이고, 특히 나 같은 유형의 사람은 외로움이 디폴트 값이라 평생 외로움을 잘 다스리며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근데 이번 달을 돌아보면 외로움이라는 녀석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이 아주 꽉꽉 채워진 날들의 연속이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대화와 유쾌한 술자리로, 기분 전환할 수 있는 여행과 나들이로, 그리고 나 스스로 충만해지는 시간인 운동으로 주어진 여유 시간들을 가득 채웠다. (일이 많아져서 그렇기도 했지만..) 현생이 너무 바쁘고 꽤 재밌어서 쓸데없는 생각의 늪에 빠질 틈이 없었다. 신기했다. 이렇게 살 수도 있는 거였구나. 


8월의 베스트 모먼트

1. 뮤직컴플렉스서울에서 LP 디깅 하다 우연히 'Let The Good Times Roll'라는 노래를 만났을 때

2. 태백 매봉산 바람의 언덕에서 실크처럼 피부에 착 감기던 시원한 바람결을 느꼈을 때

3. 크로스핏 행클린 1RM 95lb 성공하고, 클린&저크 65lb로 와드 한 날의 성취감

4. 풋살 대회 응원 갔는데 함께 연습했던 동료들이 골 넣었을 때의 희열

5. 그리고 적당히 ^^ 술에 취해 기분 좋게 웃고 떠들었던 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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