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9.26 ~ 2018.10.26 30일의 긴 여행
한 달 휴가를 받았다. 그리고 이 한 달을 통째로 긴 여행에 투자하기로 했다. 그렇게나 바라 오던 순간인데 막상 떠날 때 실감이 잘 안 나더라. 벌써 세 번째 가는 유럽이고, 게다가 첫 여행지는 불과 2년 전에 갔던 베를린인데, 왜 그렇게까지 떨렸을까.
이번 여행이 너무나도 필요했고, 또 정말 잘 해내고 싶었던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1. 아직은 젊다. 어쩌면 이번이 20대로서의 마지막 긴 여행이 될 수도 있는 소중한 기회다. 물론 늘 여행만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이라 틈틈이 휴가를 잘 쓰고 있지만, 요즘 대학생들처럼 모험 같은 긴 배낭여행은 해본 적 없기에. 젊은 날의 도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나의 다음 장기 여행은 분명 지금의 그것과는 다를 테다.
2. 내가 사랑하는 계절 10월이다. 파랗고 투명한 하늘 아래, 노란색으로 온 세상이 물들고, 햇볕은 따사롭지만 바람은 선선한 계절. 아무것도 안 해도 그저 마음이 훈훈해지고 웃음이 나는 그런 시간이다. 스스로를 '악토버 악개'라고 칭할 만큼 매년 10월 만을 기다리는 사람, 2018년 10월을 가장 의미 있게 보낼 사람이 바로 여기 있다.
3. 벗어나고 싶었다. 회사생활 4년차, 업무 스트레스가 최고조를 찍은 무렵이었고,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품어왔던 속앓이도 이제 끝낼 때가 되지 않았나 싶었다.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고, 그럴 용기를 내기 위해서는 안주해있던 생활에서 잠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다 오자'는 게 목표였다. 나 혼자 하는 여행에서 만큼은 이기적이어도 되기 때문에. 남들이 꼭 봐야 한다고들 하지만 안 끌렸던 곳은 과감히 스킵하고, 좋아하는 도시에서는 부지런하고 감흥이 없던 도시에서는 게을렀으며, 끼니는 걸러도 거의 매일 맥주 2~3잔은 마셨으니. 그 누구의 간섭도, 방해도 없이 자유롭자는 게 곧 컨셉이었다.
여행의 딱 중간점이었던 암스테르담에서 새삼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의 가치를 깨달았다. 어느 길거리에서 본 우연히 본 간판 'This is happening'. 여기서 'This'가 무엇이 됐든 지금 이것은 실현되고 있었다. 잡지나 SNS로만 수십 번 봤던 그곳에 내가 진짜 와있구나, 소소한 꿈들을 이뤄내고 있구나, 정말 여행하고 있구나.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거였다.
그러다 여행의 마지막 종착역이었던 파리에서는 이 모든 걸 뒤집는 계기가 있었다. 꼭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게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약간의 씁쓸함과, 그래도 무엇이라도 깨달은 작은 뿌듯함으로 마무리한 여행.
길었던 만큼 본 것도, 느낀 것도, 해프닝도 많았던 유난히 많았던 여행. 암스테르담의 어느 길거리 간판처럼 'This is happening', 그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여행 루트
베를린(IN) - 프랑크푸르트 - 하이델베르크
- 스트라스부르 - 루체른 - 베른 - 인터라켄
- 아비뇽 - 마르세유 - 아를 - 니스
- 암스테르담 - 로테르담 - 브뤼셀 - 브뤼헤 - 겐트
- 런던 - 에든버러 - 파리(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