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디쉬 세라믹 스튜디오 Le dish studio
약국 앞 줄 서서 한두 장 밖에 사지 못했던 마스크는 이제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쟁여놓고 쓰는 생활 필수품이 되었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자연스레 부엌살림에 손이 많이 가는 나날이다. 매일 꺼내 쓰는 식기에 손때를 묻히며 서로를 길들이며 말이다. 항상 같은 반찬으로 밥을 먹으면 물리는 것처럼 그릇도 질리기 마련. 그럴 땐 소심하게 온라인 쇼핑을 해본다. 고심하다 고른 새 그릇들을 배송받으면 깨끗이 씻어 말리고 음식을 담아본다. 새 옷을 입은 마냥 마음에 환기가 되니 쇼핑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새 그릇이 주는 신선함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우리가 챙겨 먹어야 할 끼니가 너무나 많기 때문. 삼시 세끼를 다 차려먹진 않아도 한 끼 해먹고 돌아서면 금방 밥때다. 먹고 치우고의 반복. 중간에 간식이나 커피라도 내려마신다면 치울 거리는 배가 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은 누가 했을까. 얄미우면서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달콤한 말임이 분명하다. 어차피 계속되는 수고로움이라면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예쁘고 기분 좋아지는 요소를 찾아보기로 한다. 그릇장 깊숙이 넣어둔 덜 친한 식기를 꺼내보기도 하고. 그러다 이참에 직접 만든 그릇을 써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던 곳이 있다.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늘 미뤄왔던 일. 바로 그릇 만들기다. 일상에서 벗어나 차분하게 그릇을 빚는 어른들의 공방, 르디쉬. 워낙 유명한 곳이라 클래스를 들으려면 한 달 전부터 예약해야 한다. 문득 지금 아니면 또 언제 갈까 싶어 J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결혼과 출산, 육아를 나보다 앞서 하고 있는 이 언니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고마운 사람이다. 양가 어른들께서 아가들을 돌봐주신다고 하니 부리나케 원데이 클래스를 예약할 수 있었다. 아이 없이 둘만 하는 데이트는 처음이라 유난히 신났던 날로 기억된다.
+ 나는 비교적 빨리 결혼한 축에 속해 주변에 아직 미혼 친구들이 더 많다. 그들이 '한 개인'으로서의 시간과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시간 분리가 어렵다는 걸 모르는 건 당연하다. 나 역시도 결혼하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세계니까. 실은 스스로도 바뀌어가는 일상을 받아들이는 게 아직 벅차다. 이런 사정을 전혀 알 리 없는 벗으로부터 자주 못 봐 서운하다는 말을 들으면 어쩔 수 없이 지치고 만다.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나 저런 말을 할까 싶어서... 이런 상황 안에서 어리숙한 나를 이끌어주고, 때로는 다독여주며 '힘들지? 나는 그 시기에 이랬던 거 같아'라며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J 언니를 생각하면 두 눈이 그렁그렁 해진다.
르디쉬 스튜디오는 총 3가지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다. 카카오 채널과 블로그, 인스타그램 계정의 각 특징에 맞게 정보를 얻을 수가 있는데, 우선 르디쉬 스튜디오 인스타그램을 가보길 권한다. 어떤 스타일의 도자기를 만드는지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계정 속 다양한 그릇 디자인 이미지를 통해 추후 직접 만들 레퍼런스 사진을 정할 수 있다. 그리고 블로그를 들어가 원데이클래스 수업 일자와 신청방법을 확인한다. 원하는 일자를 고른 후 카카오 채널로 연락을 남기면 답변이 온다. 계좌로 수강료를 미리 송금하면 예약이 끝난다.
내가 수강했던 원데이 클래스를 정리하자면, 1회 1작품을 만든다. 약 110분 정도 소요되고 인당 수강료는 10만 원. 재료비와 가마소성비가 포함된 금액으로 별다른 준비물은 없다. 다만 그릇에 금을 입히거나 여러 무늬의 전사지를 추가할 경우 비용이 발생한다. 작품 완성까지 4주 가량(금/전사 추가 시 약 6주 소요) 걸리며 픽업 일자가 정해지면 스튜디오 측으로부터 연락이 온다. 작품 파손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우편 배송은 불가하다. 예약 후 직접 방문 수령이 원칙. 작품 보관 기간은 클래스 수강 일로부터 6개월까지다.
클래스를 듣기 전에 무엇을 만들지 미리 정하고 가면 수월하다.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가는 다른 이들이 만든 수많은 작품에 압도되어 정작 내가 뭘 만들지 몰라 난감해진다. 직접 가서 보면 이것도 예쁘고, 저것도 예쁘니 아무런 선택을 할 수가 없을 거다. 나는 다용도로 쓸 수 있는 오발 형태의 접시에 동물무늬의 전사지를 붙이기로 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자리로 가니 작업할 흙덩이와 각종 재료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직 만들기 전이지만 한데 모여있는 도예 도구들 만으로도 기분은 이미 최고였다.
흙덩이를 밀대로 넓게 펴준다. 전체적으로 두께가 고르게 나와야 되기 때문에 반죽 양 끝에 플라스틱 막대를 두며 민다. 생각보다 이 작업에 힘이 많이 들어가 팔이 아프다. 도예작업에 육체적 노동이 많이 들어가서 여자보단 남자가 잘 어울린다는 선생님의 말이 떠오른다. 다 편 반죽을 그릇 몰드에 얹어준다. 칼로 주변 정리를 해준 뒤 글자 도장으로 내 그릇임을 표시한다.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몰드에서 찍어낸 테두리 장식을 그릇에 붙여준다. 물을 묻혀가며 접착력을 유지시킴과 동시에 표면을 매끄럽게 정돈해 준다.
여기까지가 1차적으로 완성된 모습이다. 보통은 여기서 작업이 끝나는데, 추가적으로 장식을 더하고 싶으면 요금이 추가로 붙게 된다. 나는 그릇은 깔끔한 형태로 그대로 가져가되 정중앙에 전사지를 붙이고 싶었다. 흑백부터 컬러까지 많은 디자인의 전사지들 중에 마음에 드는 도안을 고르면 된다. 첫째가 소띠 해에 태어나 소 모양을 생각하고 갔지만 막상 다른 디자인들을 보니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나중에 ' 아 원래대로 할걸'하고 후회할까 봐 처음 정한 대로 마음을 굳혔다.
6주가 지나 그릇이 다 구워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J 언니가 공방에서 픽업을 해 우리 집까지 가져다주었다. 두근두근. 어떤 모습으로 완성되었을지 기대가 컸다. 깨지거나 금 간 곳 없이 말끔히 구워졌다. 기계로 찍어낸 듯 완벽한 형태는 아니지만 삐뚤빼뚤 어색한 부분 역시 하나의 멋이라 생각하니 문제 될게 없었다. 내 손으로 만든 첫 번째 살림살이라 더 의미가 깊다. 그 어느 그릇보다 조심히 살살 다룰게 눈에 보여 약간의 피곤함이 느껴지긴 하지만.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나만의 그릇을 만들고 싶은 이들에게 르디쉬 클래스를 권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