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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가 안주인 Apr 05. 2022

너에게 전부일 나

어떤 존재로부터 '절대적인 사랑'을 느껴본 적이 있나. 사랑의 모습은 다양해 그림자마저 가지각색이다. 부모가 주는 아낌없는 사랑, 형제자매가 주는 든든한 사랑, 인생의 길목에서 만난 벗이 주는 은은한 사랑, 마지막으로 영혼마저 뜨겁게 안아주는 남편의 사랑.

+ 사람이 주는 사랑이 아니어도 그 힘은 지대하다. 걷기만 해도 숨통이 트이는 길 한자락, 묵묵히 살아남는 생명력으로 위안이 되는 식물, 어떤 이에게 받은 추억 담긴 물건, 말없이 날 바라보는 반려동물의 두 눈, 입안 가득 욱여넣고 꿀꺽 삼키면 마음마저 뜨뜻해지는 한 그릇의 식사 등.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대상엔 범위와 한계가 없다.




나는 누군가의 자식, 언니 누나, 친구, 아내로서 몫을 해왔고 그에 상응하는, 아니 어쩌면 분에 넘치는 애정을 받았던 것 같다. 평생 다져온 관계로부터 받은 사랑은 나약한 나 자신이 험한 세상에서 흔들릴 적마다 '다 괜찮다'며 다시금 무겁게 축 처진 내 뿌리를 꾸욱 눌러주곤 했다.

대한민국 모든 갑남을녀처럼 인생의 정해진 허들을 뛰어넘으며 앞을 봤다. 입시를 치러 대학에 들어가 이내  졸업을 하고 일을 찾아 전전긍긍. 다행히 사랑하는 이를 일찍이 만나 추억 많은 연애와 결혼까지 마쳤다. 이렇듯 살다 보면 으레 거쳐야 할 '때'가 존재한다. 결혼을 한다고 일련의 통과의례가 끝나진 않지만 이때부터는 보다 긴 호흡으로 저마다의 계단을 만들어 '넘고 또 넘고'를 반복하는 것 같다.



결혼을 하고 아내로 지내다 한 생명을 잉태하는 순간 엄마가 되었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가정에서 한 기둥이 되기로 했다. 가정을 잘 돌보고 아이를 사랑으로 양육하는 것. 그게 내가 원한 역할이었다.

+ 모성애라는 게 별거 아니다. 아이를 품고 낳으며 느끼게 되는 감정 변화들,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이런 감정이 적든 많든 그 양은 중요치 않다. 아이에게 모든 걸 맞추고 희생해야만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본인의 기준에 맞춰 할 수 있을 만큼만 '즐겁게' 하면 그뿐인걸. 워킹맘들도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사랑법이 분명 존재한다.

​​

구시대적 발상이라 손가락질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히 아이들에겐 사랑이 필요한 시기가 존재하고 나는 그 시간을 기꺼이 곁에 있어주기로 결정한 거다. 지금이 아니면 느끼지 못하는 시절의 조각을 모아가면서 말이다. 감사하게도 맞벌이를 하지 않아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가정주부를 집구석에서 살림이나 하는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집을 돌보며 아이들까지 길러내는 중요한 위치로 인정해 주는 가족들의 지지가 있기에 가능했다.

+ 나는 여자로 태어나 여자로만 살아봤기에 남자의 속 사정을 잘 모른다. 짐작만 할 뿐 그들이 겪는 가장으로서의 압박과 책임, 고달픔을 어떻게 전부 이해할 수 있을까. 나의 배우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최선을 다해주는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




엄마로 보내는 생활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굴곡이 심하진 않다. 물론 임신과 출산은 큰 변화였지만 육아를 하는 삶은 ‘반복의 삶’이다. 아이가 깨면 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타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놀아주고 재워주고를 수차례. 아이가 자는 틈틈이 집안일을 하면 하루가 끝이 난다. 그러다 보니 내가 이러려고 4년제 대학을 마쳤나? 나에게도 꿈꾸던 시절이 있었고, 수많은 관계들을 만들어가며 종횡무진하던 때가 있었는데 싶을 때도 있다. (너무 솔직했나...?) 신기하게도 마음속으로 소심한 신세한탄을 하고 있자면 '아차'하며 부끄러워지곤 하는데 바로 아이의 순수하고 꽉 찬 웃음을 마주할 때다. ​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저 나와 눈이 마주쳐서, 내 목소리를 들어서, 의지로 만든 내 밝은 리액션에 이 아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진심 웃어주는 것이다. 아이의 작은 몸짓에 커다란 내 몸뚱어리와 정신이 지배당하는 순간이다. 언제부터인가 한 인간이 타인에게 기쁨과 칭찬, 인정 (認定) 같은 긍정적이고 호의적인 반응을 얻으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다. 오죽하면 세상엔 공짜는 없고, 뿌린 대로 거두는 기브 앤 테이크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씨익 양볼 가득 퍼지는 예쁜 미소와 꼭 잡은 보들보들한 손, 온몸의 힘을 풀고 추욱 나에게 기대는 몸.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앙증맞은 장면에 매료되고 만다. 감동과 환희, 용기까지 얻으니 말 다 했다. ​



나는 아이에게 많은 걸 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나에게 이 많은 걸 준다. 내가 아이를 키운다 생각했는데 반대로 아이가 나를 길러내고 있었다. 내가 엄마라는 이유로 아이에게 받는 이 절대적인 사랑은  처음 받아보는 감정이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사랑해 주는가 싶다.​


어떤 존재로부터 '절대적인 사랑'을 느껴본 적이 있나? 나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막 태어난 지 157일이 된 아이로부터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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