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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가 안주인 Apr 05. 2022

춘식님과 달리아

My First Dahlia


해가 바뀌고 나이  살을  얹는다.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결혼과 출산을 치른 새댁. 작년 못지않게 새해 역시 참으로 많은 변화가 생긴다. 2022. 우선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로 내려간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아파트를 마련하는 요즘 젊은이들과는 다르게 우리 식구가 도란도란  집을 짓기로 했다. 가정 주택이 아파트처럼 나중에도 사고팔기 쉬운 재테크 수단은  되지만 말이다. 허나 돈으로도   없는 인생 황금기를 자연 속에서 풍요롭게 보내기로 용기 냈다.  훗날 도시를 떠난  후회할지도 모르겠지만, 사는데 답이 있을까. 한번 결정하면 최선을 다해 살아보는 우리 부부의 가치를 믿어보기로 했다.


그동안 모아온 외국 가드닝 서적들


올해는 둘째가 태어나는 해이기도 하다. 지금 나에게는 1살짜리 귀여운 아들이 있다. 첫아이라 서툴고 힘들지만 아이가 가져다주는 행복이 얼마나 크고 귀한지 하루하루 느낀다. 꽃과 식물을 좋아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아서일까. 첫째와 둘째. 연년생  아이 모두 따뜻한 봄에 태어난다. 새로운 터전에서 아이들과 함께 나만의 정원을 가꿀 상상을 하면 벌써부터 신이 난다. 생명은  존재만으로도 위대하다. 동물과 식물, 인간 모두. 생각한 대로 되지 않지만 끊임없는 인내와 정성을 들이면 끝내 결실을 맺게 된다. 엄마가 되어 자식을 길러보니  책임감과 애정의 깊이를 알게 된다. 어릴  엄마가 가꾼 마당에서 꽃잎을 찧어 소꿉놀이를 하고, 검붉은 벽돌 담벼락을 타고 올라간 포도알을 따먹으며 자랐다. 이제 나도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추억을 그리는 집을 만들어 주고 싶다.




농원에 갈적마다 '나도 정원이 있었으면'하며 바라만 보던 나무들
아파트를 벗어난 시골생활이 즐거울 이유: 내 정원이 생겨요!


가드닝을 한다면 가장 먼저 심고 싶었던 게 바로 달리아다. 꽃 시장을 가거나 꽃집에서 다발을 주문할 때 꼭 넣는 아이다. 커다란 얼굴에 겹겹이 꽃잎. 탐스럽고 강렬한 색감 그리고 줄기마저 힘 있게 쭉 뻗었으니 이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집을 짓고 내 정원을 만들면 형형색색의 달리아를 듬뿍 심어 황홀함을 흩뿌리고 싶었다. 꽃과 나무를 심으려 하니 공부할게 꽤나 많다. 내가 원하는 콘셉트를 확고하게 정하고, 계절과 시기에 맞게 관리하는 법, 그리고 꽃과 나무를 어디서 구하는 게 좋을지, 가드너의 생활이 어떤지, 수중에 있는 돈으로 감당할 수 있는지 등등. 시간 날 때마다 관련 서적과 유투브를 찾아보곤 한다. 볼수록 그 분야가 어마 무시함을 깨닫고는 겁도 나지만 아직은 이 모든 과정이 즐겁기만 하다.


달리아만이 갖는 에너지가 있다
주방 한켠에 붙여둔 달리아
지인들에게 종종 꽃다발을 만들어 선물하곤 하는데, 그럴때마다 달리아를 꼭 넣는다
핸드폰 사진첩에 가득한 달리아 사진들
도쿄에 가면 꼭 들르는 꽃집, 아오야마 플라워 마켓에도 달리아가 존재감을 뽐낸다




그러다 춘식님을 알게 되었다. 전원생활을 하며 정원을 가꾸는 가드너들에게 그는 단연 독보적인 존재다. 달리아에 푹 빠져 수백여 가지의 달리아를 모으고, 농장을 꾸리며 여러 정보를 나누는 분. 끊임없이 달리아 연구를 하며 조직배양과 컨설팅까지 하신다. 그야말로 진정한 달리아 덕후. 춘식님의 블로그를 시도 때도 없이 들어가 구경을 하던 중 흥미로운 글을 발견했다. 2022년을 맞아 달리아 괴근(뿌리 덩이)을 나눔 한다는 소식이었다. 춘식님의 블로그엔 어마어마한 방문자들이 있고, 이벤트 참여인원도 많아 '내가 될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시중에 파는 달리아도 아니고 춘식님의 손길이 닿은 달리아이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2022년 달리아를 꼭 키워야 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남겼고, 당첨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발견하게 된다.


마침 지금 사는 집과 멀지 않은 곳에 계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콧바람을 쐴 겸 직접 받으러 가기로 약속을 하고 춘식님과 달리아를 만나러 출발했다. 친정엄마와 한 살배기 아가, 배가 산 만하게 나온 임산부의 등장에도 춘식님은 환대를 해주셨다. 커피를 내려주시며 준비해둔 달리아에 대해 이것저것 많은 걸 알려주시기 시작했다. 차분하면서도 따뜻한 분이었다. 총 세 가지의 괴근을 나눠주셨다. 나탈, 하베스트 문라이트, 그리고 정체불명의 뿌리 덩이가 그것이다. 신문지와 비닐에 둘둘 쌓아 노끈으로 묶은 괴근이 금괴 마냥 특별해 보였다. 화려하고 만개한 얼굴 꽃만 보다가 실제로 뿌리를 두 눈으로 본 건 처음이었다. 가장 인상에 남던 것은 바로 세밀화다. 직접 그림을 그려 달리아 괴근과 삽목, 분구 방법에 대해 알려주셨다. 나 같은 초보 가드너에게 이것보다 더 좋은 눈높이 교육도 없었다.


나의 첫 달리아 괴근
식물도감 같은 춘식님의 세밀화
춘식님이 삽목한 달리아
삽목 과정을 알려주시는 중




유익하고 즐거운 대화가 끝난 뒤, 춘식님께서 이층에 있는 작업 공간을 보여주신다고 했다. 누군가의 작업실을 엿볼 수 있다니 무척 흥미로운 제안이었다. 나눔 뿌리를 택배로 받지 않고 직접 찾아뵙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자 바닥 곳곳엔  뿌리들과 푸릇푸릇 한 식물들이 펼쳐졌다. 프랑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2013)이 떠올랐다. 누군가에겐 그저 비닐에 덮인 식물 뿌리겠지만 내 눈엔 보물단지처럼 느껴졌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조직배양하는 곳도 오픈해 주셨는데, 박테리아로 오염된 뿌리 하나가 토양 전체를 엉망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으로 배양을 하신다고. 한결같은 꾸준함으로 과학적인 접근까지 더해가는 성실함, 이 태도가 지금의 춘식님을 만든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2층으로 올라가자 펼쳐진 광경
신기했던 조직 배양의 과정




늘 막연하게 전원생활을 꿈꾸던 나.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시골살이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하던 삶이었다. 곧 결혼 2주년. 그 사이 우리 부부는 두 아이와 한 채의 집을 얻게 되었다. 하나같이 의미 깊고 큰일들이다. 나의 작은 꿈이었던 정원 가꾸기. 그 시작을 춘식님과 달리아로 열게 되다니!  춘식님의 정성 가득한 뿌리 덩이를 나눔 받아 정말 기뻤다. 더 나아가 시행착오를 겪으며 쌓아온 노하우와 선한 마음을 공유해 주시니 그날의 만남 자체가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이날의 내용은 추후 달리아 삽목을 하며 다시 포스팅하겠다. 이 글을 빌려 춘식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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