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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야 Jan 10. 2024

끝나지 않는 입덧 ― 몸이 아프니 보이는 것들

2023년 12월의 일기

정말로 몰랐다. 먹는 일이 고역이 될 줄은. 세상엔 온통 먹고 싶은 것들이 넘쳐나고, 살 찔 염려만 없다면 무한정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식욕이 왕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입덧이 시작된 지금은 가장 싫은 것이 밥 냄새요, 끼니 때만 되면 벌을 받으러 가는 것마냥 너무 고통스럽기만 하다. 


며칠 전에는 급기야 먹은 것들을 죄다 게워내고 누워만 있었다. 삶의 의욕이 저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대로 기절해서 몇 개월 후에 깨어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내 삶의 기쁨, 평범성을 지탱하고 있던 것이 이리도 약하고 위태로운 것이었구나. 그렇게 계속 잠들어 있는 몽롱한 상태에서, 나는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집을 원하는 대로 깔끔하게 쓸고 닦는 꿈을 꾸었다. 지금은 모두 할 수 없게 된 일들..


출처: unsplash


임신 이후, 나는 그 자체로 ‘자본주의에 반하는 몸’이 되어 버렸다. 무리를 해서 일하는 것은커녕, 학원 과정이 끝난 후 진행하려 했던 구직의 꿈도 잠시 접어두었다. 심지어는 입덧으로 청소와 요리를 비롯해 모든 가사노동을 파트너에게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보니, 그러지 않으려 노력해도 자꾸만 쪼그라든다. 화폐노동을 비롯한 온갖 '노동'으로 나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려 했던 나의 얕고 취약한 인간관을 이렇게 맞닥뜨리게 된다. 


그동안 내가 노인, 사회적 약자를 대할 때 견지하려 했던 PC한 태도와 관점은 절반짜리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약자의 위치에 놓였을 때에도 내 존재를 긍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아파서 일할 수 없고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에서, 나는 나를 어떻게 긍정해야 할까. 임신이 던져준 아주 어려운 과제 같다.


취약한 몸 상태에 있는 이들은 어떻게 본인의 삶을 긍정하고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 고통을 헤아릴 길이 없다. 주변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이 있더라도 본인만이 느끼는 절대적 ‘고통’은 남는 것인데, 지금 우리 사회는 아픈 몸, 장애가 있는 몸에 대한 공감과 전폭적인 지원은커녕 외면, 적대, 때로는 멸시의 말을 던지기까지 하지 않는가. 고통에 고통을 더하는 일이다.


요즘 도저히 계단을 오를 힘이 남지 않은 날은 지하철역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면, 의식하지 않아도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이 엘리베이터를 쟁취하기 위해 싸웠던 분들의 노고를 생각하게 된다. 그분들 덕에 내가 지금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학원에 가고, 집에 가고 있다.


이 괴로움이 빨리 가시기를 기도하지만, 이 고통이 가시더라도 지금 하고 있는 이 생각들만은 생생히 남아 있기를 바란다. 


- 2023년 12월 5일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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