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걸 찾아보기로 한다
나는 나를 설명할 줄 모른다
처음 만난 누군가와 앉은 자리에서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장 싫어한다. 고집도 세고, 자아가 강한 존재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나를 설명할 줄 모른다. 그저 내 세계에는 내가 너무 가득해서, 나를 설명할 필요를 못 느껴 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알아줬으면. 때로는 친구 관계나 연인 관계에서 독이 될 수 있는 이 감정을 안고 살아 왔다. 그렇게 나는 나를 설명하는 방법을 잃어 갔다.
나는 무얼 좋아하는 사람일까?
나는 오이가 들어간 김밥을 좋아하는구나
회사로 출근하는 길에 지나치는 지하상가에는 빵집과 테이크아웃카페부터 해서 온갖 상점이 즐비하다. 나를 사로잡는 건 달달하고 고소한 빵 냄새도, 커피 원두의 탄 내음도 아니다. 분식집에서 풍겨져 나오는 오이가 들어간 김밥 냄새. 불규칙한 점심 일정 탓에 김밥을 선뜻 사서 출근하지는 못하지만, 김밥 속 오이의 은은한 냄새는 바쁜 아침 시간대에 나에게 잠시간의 휴식을 선사한다.
지금 아이들이야 워낙 놀러가는 일이 많으니, 추억이 또 다르게 적히고 있겠지만, 내가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소풍은 엄청나게 특별한 행사였다. 소풍가기 전날 잠을 못 자고 꼴딱 밤을 새운 날도 많았다. 그렇게 비몽사몽이 된 새벽, 부엌에서는 엄마가 분주하게 김밥 재료들을 손질하는 소리와 냄새가 풍겼다. 그런 기분 좋은 아침의 냄새와 지하상가 김밥집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가 문득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침 출근길은 소풍과는 거리가 먼, 마치 전장에 나가는 모습이지만, 기분 좋은 냄새들 덕분에 잠시잠깐 소풍가는 느낌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지하상가를 2년 가까이 지나쳐 왔는데, 내가 행복해하는 순간을 포착한 건 바로 얼마 전이다. 내가 좋아하는 걸 발견했다는 반가움에, 회사까지 걸어가며 여러 번 되뇌였다. '나는 오이가 들어간 김밥을 좋아하는구나, 나는 오이가 들어간 김밥을 좋아하는구나...'
더 잘 느끼고 싶어
염세주의자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낙천주의자도 아닌 나는 가끔씩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물론 잠깐 방황하다가 다시 일상에 매진하길 반복하지만. 같이 사는 사람은 늘상 긍정적이고 행복한 이라(뭐 물론 속사정을 자세히는 모른다), 가끔씩 침대맡에서 "사는 이유가 뭐야? 사람은 왜 사는 거라 생각해? 삶의 낙은 뭐지? 우리는 뭘 하다가 가야 하는 거지?"라고 뜬끔포 물음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그러면 같이 사는 이는 "나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온갖 창작물들을, 내가 누릴 수 있는 최대한으로 누리고 즐기다 가고 싶어"라고 대답한다. 나 같은 이는 여러 번 들어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대답이다. 그게 이유가 되나? 영화 보고 나면 좋기도 하지만 금세 허무해지는데? 그 창작물들은 결국 창작자의 것이지, 내 것은 아니지 않나?
삶을 재미있게 사는 자와 재미없게 사는 자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장면 같아서, 이 장면을 묘사하다가 잠깐 웃음이 새어 나온다. 삶을 재미없게 살려면 나처럼 살면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알아가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 내가 남의 글들만 보던 브런치를 열어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다.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뭘 좋아하는 사람일까.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또 있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어디에 존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