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를 다시 시작하자
조산아로 태어난 나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다. 툭하면 아프고, 그 또래의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전염병이란 전염병은 다 걸렸다. 태생적으로 약해서인지 겁도 많았다. 몸을 쓰는 걸 두려워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거의 모든 운동에서 낙제생이었다. 신기하게도 오래 매달리기와 오래 달리기에서만큼은 같은 친구들 중에 앞쪽에 들었다. 지금도 무작정 걷는 건 자신 있다.
나는 내가 운동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
몸이 날렵하고 몸을 잘 쓰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강한 몸만큼이나, 겁없이 달려들어 넘어지고서도 이내 툴툴 털고 일어서는 모습이 부러웠다. 넘어지고 아파도 별일 아니라는 듯 슥 지나치는 일. 나는 아직도 축구나 야구 경기를 볼 때면, 강한 몸과 강한 몸이 부딪쳐서 나동그라지는 모습에 화들짝 놀란다. TV 화면 너머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지금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닌데도,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찡그려질 때가 많다. 잔디밭에서 잠시잠깐 뒹굴다가 이내 일어나서 전속력으로 달려나가는 단단한 몸. 이내 또 부러워진다.
잘할 수 없는 것 = 싫어하는 것. 잘하지 못해도 좋아할 수 있고, 잘하지 못해도 즐길 수 있는 것인데, 언젠가부터 나는 잘할 수 없는 걸 싫어하게 됐다. 그래서 좋아하는 게 별로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운동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운동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잘하지 못하면 평생 내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영역인 것처럼 굴었다. 뭐든 처음은 서툰 법인데, 그 서툰 걸 견디지 못했다.
난생 처음 요가를 배우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동네에 새로 여는 요가원에 등록했다. 그냥 내가 나를 위해 뭐라도 돈을 쓰고 싶었던 날인 것 같다. 캄캄한 밤, 인테리어 공사 중인 요가원 건물 앞에 놓인 테이블을 발견했고, 뭐에 홀린 듯 신청서를 작성하고 카드를 긁었다. 당시 내 벌이로는 꽤 큰 돈이었는데, 그날은 무슨 바람인지 써버리고 말았다.
간 날과 못 간 날이 2:1 정도는 되었지만, 그래도 나로서는 꾸준히 참석했다. 맨 처음 거울 앞에서 휘적휘적거리는 내 모습을 보며 절망스러웠지만, 그래도 땀을 뻘뻘 흘린 다음 느껴지는 뿌듯함과 상쾌함이 있었다. 한 발로 나를 온전히 지탱하는 자세가 정말 고난이도였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한 발로 콩콩 뛰어 다니기도 하고, 꽤 오래 버텼던 것도 같은데 이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그러다 어느 날인가, 내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이내 마음에서 중심을 잃고, 바로 넘어진다는 걸 알았다. 차분하게 한 곳을 응시하고, 비록 미세하게 다리가 흔들흔들거릴지라도 조금씩 그 안에서 균형을 잡고, 쉽게 놔버리지 않으면 그래도 그전보다는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나는 자전거도 늦은 나이에 배우기 시작해서, 잘 타지 못하는 편이었는데, 요가를 하며 이 요령을 배운 이후에는 자전거 핸들을 조작하는 것도 훨씬 능숙해졌다. 흔들린다고 해서 확 놓아버리지 않는 것. 흔들림 없이 서 있는 것 같은 요가 수련자나 능숙하게 자전거를 운전하는 운전자들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 유연하게 중심을 옮겨가며 잘 견디고 있을 뿐이란 걸 알게 됐다.
그러다 한동안은 요가를 하지 않다가, 디스크 판정을 받고 나서 다시 요가원에 등록하게 됐다. 운이 좋게도 요가를 좀 더 정통적으로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요가의 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때 요가를 배우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나는 평생 어떤 운동이든 싫어하는 사람으로 나를 생각했을 수 있다. 새로운 나를 발견했던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싫어했던 것들에 눈길을 돌리다
내가 싫어했던 다른 것들을 찬찬히 생각해 본다. 어쩌면 나는 그것을 좋아했을 수도 있다. 다만 잘하지 못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