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의 일기
또래의 친구들에 비하면 조금 천천히 임신을 한 편이라 친구들의 경험을 ‘먼 과거형’으로 듣곤 한다. 벌써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친구도 있고, 심지어는 큰 아이가 이미 초등 고학년이 된 친구도 종종 있으니 말이다.
가까운 친구들에게 임신 소식을 전하면, 친구들은 축하한다는 인사와 함께 ‘뱃속에서 아이가 꼬물꼬물거렸던 게 그립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태동이 그립다고? 태동이 대체 뭐길래?!
처음엔 뱃속에서 물방울이 ‘톡’ 하고 터지는 느낌이 들다가, 시간이 지나면 ‘꿀렁’이는 느낌이 들고, 시간이 더 지나면 기지개를 켜고 딸꾹질을 하는 것까지 생생히 느껴진다던데… 듣기만 해도 신기한 한편, 조금은 무서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80년대생 키즈로 어린 시절 보았던 영화 <에일리언> 때문이었을까?*
* 징그러운 형체의 괴물인 에일리언은 번식을 위해 인간 여성의 몸에 알을 낳는데, 그 뱃속에서 자란 새끼 에일리언은 모체의 배를 뚫고 탄생한다.
17~18주쯤이었을까. 배에서 처음 뽀글거림을 느꼈을 때, 손으로 배를 몇 번이고 쓰다듬으며 그 간질거리는 이질감을 지우려고 애썼다.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불쑥불쑥 찾아오는 낯선 움직임을 한껏 경계하며, 새벽 늦도록 잠을 못 잔 적도 있다. 다들 태동에서 행복감을 느낀다던데, 나는 좀 이상한 엄마인 걸까..?
그로부터 두 달여 지난 지금은 다행히도 이 작고 낯선 이의 움직임에 많이 적응했다. 오히려 태동이 소극적이거나 드물 땐 걱정이 될 정도이다. 맛있는 것, 특히 단 것을 먹을 때 데굴데굴 구르는 아이의 움직임에 먹는 기쁨이 왠지 배가 되고, 조금씩 더 세진 힘으로 나를 밀어날 때 ‘아이가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구나’를 느끼게 된다(물론 그 성장이란 게 레몬 크기에서 오렌지 크기로 변해 가는, 1주에 100g 정도씩 커가는 귀여운 스케일이지만).
오늘은 샤워 중에 처음으로 피부에 아주 가깝게 와닿는 무언가를 느꼈다. 이전까지는 아이가 움직일 때의 양수의 파동 정도가 느껴졌다면, 오늘은 귀여운 발 같은 것이 배를 쑤욱 하고 밀어내는 느낌이었다. 순간 ‘어맛’하는 육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처음 태동을 느꼈던 것만큼이나 충격적이어서, 배를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한동안 이 낯선 느낌에 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싶다.
작은 점, 세포에 불과했던 아이가 조금씩 제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하니, 낯간지럽게도 자꾸만 말을 걸게 된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따뜻한 물을 배쪽에 대면서 ‘기분 좋지?’라고 한다거나, 채소를 삶거나 음식을 하면서 ‘맛있는 것 해줄게’라는 말을 한다거나. 조금 서둘러 걷다가 배가 당기기라도 하면, ‘미안해’라는 말을 한다거나. 내가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혼자 아이에게 노래를 불러주게 될 줄을 상상이라도 해봤겠는가..?!
아이를 ‘나와 생명을 나눈 누군가’, ‘나와 운명을 함께하는 누군가’라고 부를 수 있으려나. 기질적으로 나를 챙기기보단 남을 챙기는 게 익숙한 맏이로서, 타인과 생명을 공유하는 지금 이 순간들이 일러주는 것들이 있다. 좀 더 좋은 걸 챙겨먹게 되고, 무리하지 않고 좀 더 푹 자려고 노력하고, 좋은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나를 더 잘 챙기는 법을 배워 간다. 내 존재가 살아 있고, 무언가를 필요로 하고 있음에 좀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하루하루 앞만 생각하고 살아 왔던 내가 이제는 기본 20~30년 단위의 시간을 의식하며 살게 되었다. 그렇지,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지. 지금 좀 더 빨리 가려고 나를 축내다간,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날들(수명)이 줄어들지도 몰라. 내가 내 생명을 이렇게까지 소중하게 생각했었다고? 스스로도 놀라게 되는 일상의 변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평온한 내 뱃속을 흔들어 놓는 것도 모자라, 내 일상과 머릿속까지 흔들어 놓는 너. 아이가 나를 이렇게나 흔들고 있다. 불쑥불쑥. 마치 거침없는 그의 태동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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