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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야 Sep 06. 2020

아무것도 안 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일상의 기록을 시작한 이유

어린 시절 다이어리를 잘 정리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좋아하는 가수의 사진과 영화 포스터를 모으고, 정갈한 글씨로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사람. 그런가 하면, '오답노트'를 잘 쓰는 친구, 본인의 블로그에 그날그날의 일상을 잘 정리하는 친구. 부질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 당시의 나는. 좋은 기억력을 자신했다. 나는 그렇게 기록하지 않아도 언제까지나 생생하게 기억할 거라는 쓸데없는 자신감이었다.


그러던 지금, 가장 부러운 사람은 그런 기록에 집착하던 친구들이다. 좋았던 일이든, 슬펐던 일이든, 짜증났던 일이든 말 그대로 '흘려 보냈던' 나는 이제 내 손에 잡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여전히 정신없는 PC 폴더, 취향을 알 수 없게 정리가 안 된 옷장과 책장. 나를 모르니 잡히는 대로 살고, 잡히는 대로 읽고, 잡히는 대로 사고... 그냥 잡히는 대로 산다.


살아지는 대로 살지 않기 위해 쓰자


사실 몇 주 전 극심한 무기력증이 왔다. 심적으로 무기력한 걸 넘어, 팔다리가 흐물흐물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무기력이 지속되니, 나중에는 병뚜껑 하나 내 힘으로 열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었지만, 밖으로 나가지 않는 날에는 씻지도 않고, 운동도 하지 않았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말도 하기 싫고, SNS 앱의 빈 창을 켜놓고 몇 글자라도 쓰던 일조차 할 수 없었다. 무기력과 함께 언어도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살아남을 수 있을지조차 확실치 않은 재난의 상황에서도 일기를 놓지 않고 쓰던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그 절박함의 반의 반도 공감할 수 없겠지만, 지금의 나는 마치 그런 심정이다. 쓰지 않으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마음. 살아지는 대로 살지 않기 위해, 아니 사실은 '살기 위해' 쓰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안 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웹을 떠도는 글들을 보며, 유치하게도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글을 쓰면 더 잘 쓸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렇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냈다. 아무것도 안 하는데, 나에게 어떤 변화가 생겨날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걸 작은 것조차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아무것도 안 하면, 앞으로도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내가 힘들 때마다 챙겨보는 영화들이 있다. <카모메 식당>, <리틀포레스트>(만화 원작, 일본영화, 한국영화 모두 좋아한다), 그리고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특히, <리틀포레스트>의 주인공 리즈에 이입이 될 때가 많았다. 남들이 보기엔 부러운 조건의 소유자이면서도 슬퍼하고 방황하던 끝에 자신을 찾아 여행을 나선. 자리를 박차고 나락 끝까지 떨어져내려 보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삶의 경지. 그런 경지를 나도 언젠가 찾아보고 싶었다. <카모메 식당>과 <리틀포레스트>도 안주를 포기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은 스토리들이다. 나도 어디론가 낯선 곳으로 한 걸음 내딛어 보고 싶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면은 바로 이 장면이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2010) 중에서


그래, 복권이라도 사야 신이 복권에 당첨시켜 주지 않겠나. 나는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도, 간절한 마음도 없이 그저 지금 이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고 있다.


인간아, 제발 제발 제발 복권이나 사고 빌어라.


그 복권을 사는 마음으로 오늘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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