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꾸준히 글을 쓰고,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하기 시작하자!
이렇게 생각하고 나자마자 구입해서 읽은 책이 있다. 바로 달리기광으로 유명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이었다.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건, 첫 직장의 선배 때문이었는데, 회사 생활과 육아의 이중고로 건강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선배가 달리기를 시작할 무렵 읽었던 책이라고 했다.
그때는 '하루키는 굉장히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사람일 줄 알았는데, 의외네.. 달리기를 좋아했구나' 정도의 느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영화든, 책이든, 드라마든 그게 나에게 절실해지는 순간은 정말이지 제각각인 것 같다. 그때는 시큰둥했던 이 책이, 지금에 와서야 이렇게 절실하게 다가올 수 있다니. 모든 변화가 달가운 것은 아니지만, 이런 변화라면 충분히 달갑다.
최근에 이 책에 대해 검색해 볼 일이 있었는데, 웹상에 인용되어 있는 문구들 몇 개만으로도 전율이 일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
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해가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장거리 달리기에 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 27쪽
지체 없이 바로 인터넷서점에서 주문하여, 반갑게도 토요일 아침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한가로운 주말에 책을 펴고 앉아 밑줄을 그으며 읽기 시작했다.
의외로 평범한 '모멘트'
그가 응원하던 야구팀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경기를 직관하러 갔다가, 1회 말 타자가 안타를 치고 1루를 거쳐 2루에 발을 디딘 바로 그 순간 '소설을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는 장면의 묘사가 흥미로웠다. 굉장해 보이는 사람들의 의외로 평범한 '모멘트'이야기를 좋아한다. 엄청난 결단이 필요했다거나 하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한 번 해볼까'라는 그 순간이 오히려 소설적으로 느껴진다. 마치 처음 소개받았을 때에는 시큰둥했던 이 책을 10년 정도가 흐른 지금에서 '내가 찾던 책이야!'라고 느끼게 된 것처럼.
하루키는 본격적으로 전업작가의 길을 걷게 될 무렵에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전까지 아내와 함께 운영했던 바 영업을 접고 종일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하며 늘어난 체중, 체력을 관리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아내와 조금만 먹어도 살이 붙는 본인의 체질을 비교하며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하곤 하지만, 오히려 살이 잘 붙는 체질이기에 식사와 운동에 신경을 쓸 수 있게 된 거라는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기도 하다.
거의 노력을 하지 않아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의 사람은 운동과 식사에 유의할 필요가 없다. 필요도 없는데 그런 귀찮은 짓을 일부러 하려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체력이 점점 쇠퇴해가는 경우가 많다. 의식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자연히 근육이 약해지고 뼈가 약해지는 것이다. 무엇이 공평한가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지 않으면 잘 알 수 없는 법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가운데에도 "정말 조금만 방심하면 바로 체중이 불어나서..."라는 고민을 가지고 있는 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이유로 오히려 하늘이 내린 행운이라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해야 할 일이 아닐까? 적신호를 보기 쉬운 만큼 오히려 다행스러운 것이라고. 여간해서 그런 식으로는 생각하기 어렵지만. - 71쪽
몸으로 부딪혀야 깨닫는 어떤 군상들
그걸 꼭 겪어 봐야 아느냐,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 봐야 아느냐, 라는 말이 있다. 안타깝게도, 나는 겪어 봐야 아는 유형의 사람이다. 사물의 본질, 사건의 본질을 처음부터 꿰뚫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몸으로 부딪히고, 여기저기 깨지고, 꺼이꺼이 울고불고 나서야 그 본질의 일각을 겨우, 조금 깨닫는다.
이게 나 자신이라는 걸, 인정하기가 참 싫었다. 인정하는 순간, '멍청한 사람', 때로는 '일못'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하루키(물론 하루키다!)의 아래 문장을 읽은 순간, 정말 큰 위로를 받았다. 나라는 사람의 특성에 대해 이런 멋진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인정 못할 것은 무엇인가. 그래, 나는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 봐야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내 몸에 "이해도의 눈금"을 구체적으로 조금씩 새기고, 높여가는, 그렇게 해서 나를 납득시키는 타입의 사람인 것이다.
나는 머릿속에서 순수한 이론이나 도리를 조립해서 살아가는 타입의 인간은 아니다. 경험에 의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생각해서 사물을 인식하는, 이른바 사변을 연료로 해서 전진하는 타입의 인간도 아니다. 그보다는 신체에 현실적인 짐을 지우고, 근육에 신음소리를(어떤 때는 비명을) 지르게 함으로써, 이해도의 눈금을 구체적으로 조금씩 높여가게 하여, 가까스로 납득하게 되는 타입인 것이다. - 44~45쪽
그런 내가 달려야 하는 이유
더 쓸 만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어니스트 해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19쪽
몸으로 사물과 사건의 본질을 알아가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더욱이 직접 몸을 움직여 나란 사람에 대해 더 잘 알아가고, 더 큰 풍파에도 잘 견뎌낼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체력이 점점 더 떨어지며,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것들에 무뎌지고 있다. 쉽게 피로함을 느끼고, 쉽게 포기해 버리고, 그래서 나는 무언가 알아가는 행위 자체를 더 자주 포기하게 된다.
상처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마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을 자꾸만 숨기고 숨긴다. 하지만 타인과 다른 것은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것이 나의 특성이고 본질이다. 나의 차이를 드러내고 때로는 다투고 설득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체력이 필요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오해를 받거나 비난을 받거나 하는 일은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 때문에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그건 괴로운 체험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와 같은 괴로움이나 상처는 인생에 있어 어느 정도는 필요한 것이다, 라는 점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타인과 얼마간이나마 차이가 있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자아란 것을 형성하게 되고, 자립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유지해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내 경우를 말한다면, 소설을 계속 써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풍경 속에 타인과 다른 모습을 파악하고, 타인과 다른 것을 느끼며, 타인과 다른 말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님으로써, 나만의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는 것이다. - 39~40쪽
당신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요?
'밤도깨비'라는 별명을 근 30년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별명이 무색하게도 30대 중반을 넘기면서부터 새벽 공기를 맡을 수조차 없다. '머리만 대면 잠든다'는 건, 너무나 부러운 마법과도 같은 말이었는데, 이제 내가 그런 마법을 부리고 있다. 7~8시간을 안 자면 살 수가 없는 몸이 되고 나서야, 시간이 금쪽 같다는 말이 이제야 와닿는다. 예전에는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밤을 새우기 일쑤였고, 지금 당장 안 해도 '이따 밤에 하면 되지 뭐'가 가능한 일상이었지만, 지금은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작은 것 하나도 해낼 수가 없다.
그렇게 해서 아침 5시 전에 일어나 밤 10시 전에 잔다고 하는, 간소하면서도 규칙적인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루를 통틀어 가장 활동하기 좋은 시간대라는 것은,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경우 그것은 이른 아침의 몇 시간이다. 그 시간에 에너지를 집중해서 중요한 일을 끝내버린다. 그 뒤의 시간은 운동을 하거나 잡무를 처리하거나 그다지 집중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들을 처리해 나간다. - 64~65쪽
내 생각에는, 정말로 젊은 시기를 별도로 치면,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 가야 할 것인가 하는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어느 나이까지 그와 같은 시스템을 자기 안에 확실하게 확립해 놓지 않으면, 인생은 초점을 잃고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다. - 65쪽
나만의 우선순위와 루틴이 필요하다. 작은 루틴이라 하더라도 1주, 1개월간 쌓이면 어느새 내 것이 되는 경험들을 종종 한다. 생각해 보면 의식하지 않게 만들어진 루틴들도 얼마나 많은가. 아침에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 매일 웹툰을 기다리며 잠에 드는 것.. 이제는 이 브런치 글을 쓰는 것도 별 힘 안 들이고도 할 수 있는 루틴이 되겠지.
내 일상 속 무수히 많은(것처럼 보이는) 일들을 생각해 본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해서 체력을 낭비하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 본다. 달리기로 체력을 늘려 가면서, 동시에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나서 보자고 생각한다. 발걸음이 무거워서야, 먼 길 갈 수가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