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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피터 Aug 17. 2021

비겁 그리고 미숙

약한 글

최근에 뭔가 정리되지 않은 것들을 글로 쓰면서 나의 글과 생각 그리고 감정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위태롭고 허약한 것인지 절감하게 된다. 나의 아픔의 많은 부분은 나의 비겁 그리고 허약한 자아를 마주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의 자기 고백을 하는 순간은 언제나 부끄럽고 뭔가 혼란스럽다.


생각을 간결하게 하고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요즘의 세태는 그런 삶의 태도를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뭔가 너무 다른 생각들이 사방에서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고 그런 것들이 너무 공격적이기까지 하기 때문에 반응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것도 항상 버겁기만 하다.


코로나, 백신, 탈레반 등등 아주 잠시만 유튜브와 인터넷을 둘러보았을 뿐이지만 그 속은 온갖 갈등과 험한 말들이 넘쳐 난다. 그러니 마음을 풀어놓고 무언가를 가볍게 살펴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모든 주제들이 가벼운 생각으로 접근하면 금세 감정적이 되고 그럼 또 그 감정에 올라타서 무한으로 관련 정보를 찾아보고 다른 생각에 대립각을 세우면서 그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가는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단 하나의 키워드를 머릿속에 넣어도 그 안에서 너무 많은 것들이 파생되어 버리는 요즘은 과연 정보 과잉의 시대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언제나 나 자신이다. 나 자신의 내면과 철학이 분명하지 않으니 계속 크게 흔들리고, 적의가 느껴지거나 뭔가 내 세계관과 결이 어긋나는 듯한 감각이 발생하면 그것에 지나치게 날을 세우고 집착하여 갈등하게 되는 것인데 그것도 따져보면 결국 내면의 세계가 지나치게 좁아 포용력이 부족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나의 내면이 정말 넓고 포용력이 있다면 나와 다른 생각을 그렇게 위험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자기 세계가 좁은 사람들이 자신의 옳음을 강조하고 나중에는 그것이 세상을 갈등하게 만들고 최종적으로 거대한 비극을 탄생시킨다는 것을 역사를 읽어가는 과정에서  자주 마주하게 되면서도 나는 쉽게 자신의 편향성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대범하지 못한 나의 기질이 필요 이상으로 위험을 감각하고 불안을 느끼면서 공격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를 다듬어나갈 필요가 있다. 나의 취향과 기질에 의한 좋고 싫음을 정확히 구분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내가 무엇을 싫어한다고 해서 그 싫은 대상이 잘못된 것이나 나쁜 것이라고는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싫은 대상에 다가가면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싫은 대상에는 일정 거리 이상으로 접근하지 말고 조금 멀리서 상대를 관찰하면서 그냥 흘려보낼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만약 충돌, 대립하게 된다면 지나치게 격정적이 되지 않도록 나 자신의 감정을 잘 컨트롤하면서 이야기하는 주제 자체만 치열하게 파고들어야 한다. 여기서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에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게 되면 결국 최종적으로 남게 되는 것은 서로에 대한 인신공격과 말꼬리 잡기 그리고 자기혐오적인 감정의 찌꺼기뿐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은 대화의 목적이다. 우리는 상대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 상대의 생각은 단순한 생각 이전에 하나의 거대한 믿음이다. 믿음은 그 자체로 종교다. 그것은 어떤 근거가 있어서 그렇게 믿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서 특정 사상과 사실이라고 알려진 어떤 정보에 대한 무의식적이고 반복된 노출에 의해 기계적으로 주입된 편향성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바꾸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심지어 자신이 틀렸다고 느껴도 사람들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기보다는 그냥 뭔가 정보가 부족해서 그렇게 느낀다고 생각하면서 기존의 자기 인식체계를 방어하는 것에 더 열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대상에 접근할 때는 항상 내가 가진 정보와 다른 방향성의 정보를 새롭게 살펴보면서 그것을 통해 나의 세계관을 넓혀 가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하다. 상대의 생각을 바꾸거나 키보드 배틀을 통해 승리감을 쟁취하겠다는 자세로 나와 다른 생각에 접근하게 되면 나중에 남는 것은 언제나 인간 혐오 또는 자기혐오라는 부정적 감정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 자신을 타일러 보아도 언제나 나와 다른 생각에 혈압이 오르고 감정적이 되는 것은 그만큼 나 자신이 미숙하고 또 비겁하기 때문이다. 겁이 지나치게 많아서 나와 다른 생각이 온 세상을 뒤덮어 금방이라도 무엇이 잘못될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지만 그것은 그냥 망상일 뿐이다.


세상은 쉽게 완벽해질 수 없지만 내가 사는 지금 이 순간이 역사적으로 가장 발전되고 정의로운 세상인 것은 분명하다. 수많은 기득권이 존재하고 부패와 범죄들이 난무하지만 이것은 세상이 제도적으로 더 발전한다고 할지라도 쉽게 근절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세계에서는 시민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희생과 책임감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무언가가 완벽하게 작동하는 것은 원래 불가능하다. 그리고 시민의식의 발전은 원래 긴 시간과 투자가 필요로 하는 부분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그 자체로 용납하고 포용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가지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술과 과학은 차라리 쉽게 발전할 수 있다. 돈을 쏟아부으면 무언가 발전이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민의식과 인격 등의 발전은 돈만으로 되지 않는다. 그리고 많은 지식을 채워 넣고 더 많은 기술과 기능을 익힌다고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과 좋은 사람, 성숙한 사람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결국 나 자신이 원하는 정신의 자유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더욱 성숙해지는 수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 안의 비겁함과 미숙함을 항상 마주해야 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좀 더 치열하지만 공격적이지 않은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다. 나 자신이 나와 다른 생각에 좀 더 부드럽게 다가설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내가 너무 예민하고 나약하다는 것을 오늘 다시 한번 깨닫게 되고 또 한 번 감정적으로 좌절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일은 다시 일어서서   제대로  글을 쓰고 간결한 생각을 해보고 싶다는 희망 다시 한번 품어 본다. 나의 글은 나의 생각과 감각을 온전하게 담아내지 못한다. 너무 허약하다. 기초가 너무 약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나의 글이 점점  보기 싫어진다. 나의 생각도 너무 나약하다. 그래서 허약한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순간들이 너무 어색하고 부끄럽다. 나의 생각은 하나의 편향성이고 세상에 공존하는 수많은 다양성  하나일 뿐이다. 그것을 항상 명심하자 그리고  감각을 제발 충실하게 내면화하자. 그리고 지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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