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
다시 노동의 현장으로 돌아간다. 여러 가지 일을 해봤고 막노동, 건설현장에서도 뛰어 보긴 했지만 2교대로 12시간씩 근무하고 매주 밤낮이 바뀌는 일터에서는 처음 일해보게 된다. 교통편도 썩 좋은 편은 아니어서 통근버스를 이용하면 하루 최소 14시간 이상을 일을 하는데 소비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6시간의 수면시간을 빼고 나면 하루에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딱 4시간이다.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 또 직장을 가져 본다. 그런데 솔직히 마음은 지금이 제일 편한 것 같다. 그동안 일을 너무 아는 사람들과 많이 했다. 그게 나에게는 결코 좋지 않았다. 아는 사람들과 일을 하면서 서로의 사정을 너무 잘 알아서 일에 사적인 감정이 너무 많이 개입되었다. 힘든 과정들을 같이 넘어서는 속에서 같이 어울려 지낸 시간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지 못해 결국 모두에게 상처만 된 과거보다는 그냥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지금이 심적으로는 제일 홀가분하다.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이것은 힘든 노동의 현장이니 항상 조심해야 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과 건강이다. 이제 글을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분명히 이 일을 시작하면 얼마간은 전혀 여유가 없을 것이다. 눈뜨면 출근하고 퇴근하고 돌아와서는 씻고 잠드는 것이 전부인 생활이 계속될 것은 뻔해 보인다. 그리고 회사를 가지 않는 이틀의 시간 동안은 밀린 일상을 정리하고 개인적인 볼일을 보기도 빠듯할 것이다. 그럼에도 짤막한 몇 줄의 글을 모아서 붙이면 일주일에 한 편정도의 글은 계속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가지고 있다.
솔직히 좀 덜 힘들고 여유가 있는 파트타임의 일을 구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나이가 나이인 만큼 그런 일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 올초와는 다르게 마음이 안정된 지금은 다시 힘든 일을 해도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냥 이 일을 해보기로 한다. 마음이 힘들 때가 제일 힘들었다. 예민한 성격을 가진 나는 그로 인해 심적으로 ‘불안’이라는 정서가 크게 발달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주위의 평가나 말들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상대의 기분과 상태를 쉽게 파악하고 웃는 표정으로 사람들 사이에 잘 섞여 들지만 그러면서 상대에게 흠잡히지 않게 행동하기 위해 점점 자기 자신을 몰아세우게 되고 그것은 결국 ‘완벽주의’가 되어 나를 옭아매게 된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은 아는 사람들과 같이 무엇을 하는 것이 절대 좋지 않다. 필요 이상으로 많이 일하고 좋은 평을 듣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이에 자기 내부에서 불만이 쌓이는 것을 스스로가 쉽게 자각하지 못하다가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 의지하고 내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부담을 짊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런 상황이 되어서야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파악하고 뭔가를 바꾸어 보려고 하면 사람들은 그 시도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흔히 말하는 ‘호의’가 계속되면 그것을 사람들은 ‘권리’라고 착각한다는 말처럼 인간관계에서는 상대의 ‘비난’과 ‘비평’을 무서워하게 되는 순간부터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결국 나의 인간관계는 너무 완벽하고 문제없는 나를 꾸미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의 실수를 받아들이고 이제는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할 것이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 일도 사람도 모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의 강도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환경이 나의 정신은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너무 나 자신을 꾸며 온 것은 아닐까? 마음이 힘들고 정신이 방황하는 사이에 시간이 많이 흘렀다. 책도 많이 읽고 나름 생각도 많이 했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자신의 내면도 어느 정도 들여다보았다. 이제는 다시 살기 위해 삶의 현장으로 뛰어들어 본다. 방향성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삶의 가치를 노동을 통해 땀 흘리는 삶 안에서 잘 구현해 나갈 수 있을까? 무언가를 더 많이 읽고 생각한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정신적 자유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나의 감정을 잘 다스리고 나 자신의 내면을 잘 들여다보는 일은 오히려 고단한 노동을 통해 더 잘 실현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이제 결심을 했으니 움직이자.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동안은 분명 모자란 체력으로 인해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끌려다닐 테지만 그 구간을 벗어난다면 그때부터는 일주일에 한두 편정도의 분량을 목표로 다시 글을 써보자. 100편의 글을 채우지 못해서 조금 아쉽지만 어쨌든 나름 성실하게 글쓰기를 했고 그래서 마음의 안정을 찾은 것은 정말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글과 글쓰기 기술도 아직 한참을 더 배워야 하겠지만 조금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진행해보려 한다. 급할 것은 없다. 글이란 결국은 글쓰기의 기술과 생각의 만남이며 조합이다. 나의 생각을 더 단단하고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조금 고단하고 불편한 삶을 선택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단 이 코로나 시국에 다치지 않도록 건강에만 항상 주의하도록 하자. 결국은 마음이다. 마음이 모든 고통을 만들어내고 감각하게 만든다. ‘불안’을 이기기 위해서는 좀 더 단단한 마음이 필요하고 그것을 위한 첫발을 새롭게 떼는 것이니 이 순간을 즐기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