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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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티메프 사태가 뜨겁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티메프가 문제가 아니라는것이죠. 큐텐 그룹자체가 지독한 유동성 위기에 빠져있으며, 티메프와 연관된 모든 기업들에게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은 이번 사건을 커다란 사기사건으로 정의하고 관련자 엄벌을 촉구하고 있지만, 막상 당사자들에게 중요한것은 엄벌보다는 피해복구일 것입니다. 남이 처벌받는것보다 내가 잃어버린 돈을 받는게 더 중요하니까요. 문제는 그럴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입니다. 저는 이 문장을 들을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이게 정말 맞는 말일까?
제가 톨스토이 만큼의 통찰력이 있을리는 만무합니다. 하지만, 가정의 문제가 아닌 기업에게는 이 문장이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습니다.
"성공한 기업은 모두 다른 이유가 있지만, 몰락한 기업은 모두 비슷하다" 이 문장이 기업에게는 맞는것 같습니다. 왜 그런지 이제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
몰락하는 모든 기업의 이유는 단 하나, "돈이 없기 때문이다"
저는 꽤 많은 기업들의 몰락을 목격했습니다. 유니콘이 되어서 잘나가다가 급격하게 추락한 경우도 있고, 처음부터 어처구니 없이 실패한 기업들도 있습니다. 상장이 되었다가 상패가 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 모든 기업의 마지막은 모두 같습니다. 더이상 지급할 돈을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끝을 맞이했습니다.
개인사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사람의 존재 이유는 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도 이런저런 이유들로 살아갑니다. 꼭 유복하지 않아도 생은 계속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업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업의 목적은 뭘까요? 교과서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주주이익의 극대화겠죠. 하지만, 주주들의 이익이 극대화되기 위해서는 회사가 살아야합니다. 회사가 살려면 돈이 돌아야됩니다. 이익이라는 말은 다양한 정의를 가지고 있지만, 정확하게는 "생존에 들어가는 비용을 차감하고 남을만한 충분한 현금"을 의미합니다. 회계적으로 볼때 이익은 반드시 현금으로 볼 수 없지만, 현금이 부족한 상태에 도달하면 다양한 루트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파멸을 맞이하게 됩니다.
옐로모바일의 최후: 현금이 부족한 상황에 놓이다.
제가 자주 인용하는 옐로모바일도 비슷합니다. 옐로에 대한 비난은 너무 종류가 다양해서 모두 구분하기도 벅찹니다. 실체가 없다, 매출이 없다, 이익이 안났다 부터 사기였다. 속았다 까지 많은 비난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이유들을 들을 때마다 한가지 생각이 듭니다.
'잘 모르는 상태에서 말하는구나'
옐로모바일의 2017년말 매출액은 5,271억원이며, 총포괄손익은 977억원이었습니다. 매출액만큼 손실이 발생하는 유니콘들보다 손실규모도 적었습니다. 계열사중 상장사가 총 3개 정도가 있었습니다. 사기였다 속았다는 법적으로 판결내려진 바가 없으나,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으므로 더이상 평가하지 않겠습니다. 실체가 없다라는 말은 주로 무슨사업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로 쓰였지만, 총 5,271억원의 매출을 구성하는 사업중에서는 쇼핑, 광고, 콘텐츠, 여행, O2O등의 기업군이 있었습니다.
옐로모바일은 그나마 유지되었던 상황에서 결정타를 맞고 현금흐름이 박살나게 되었습니다. 그 계기는 상장신청을 하고 지정감사를 받은 이후입니다. 대부분의 투자계약서와 대출등의 계약서에는 감사등의 결과 적정의견과 다른 의견들을 받은 경우 자금을 상환할 수 있는 조건들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혹시나 감사를 받은 뒤에 의견거절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지 꼼꼼하게 검토하고 상장심사를 신청해야겠죠. 하지만, 전혀 그런 준비를 하지 않았던 것이죠. 항상 부족한 자금으로 힘들게 버티던 현실은 모든 금융기관들과 투자자들이 자금상환을 요청하면서 더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뒤로는 갑자기 회사를 정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던 것이죠. 채무자들은 늘어나고 사업은 위축되면서 현금은 갈수록 부족해지고 코너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옐로모바일이 망하게된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큐텐과 티메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다시 현실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큐텐그룹은 현재 돈이 부족합니다. 돌려막기 이후 상장으로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매우 안일한 전략으로 극한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거래액을 높이기 위해서 추가 할인등의 미끼를 제공했고, 미정산금액이 커질 수 밖에 없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언론에 나와서 자신의 미정산액을 이야기하는 티메프의 이야기를 믿을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큐텐그룹이 미정산금액을 정상적으로 돌려줄 수 있는 방안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번 대규모 현금이 부족한 상황에 빠지면 악의 구렁텅이와 같은 순환참조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어서 신용과 가치를 잃고 신용과 가치를 잃으면서 더 돈이 없어진다.
이는 큐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마지막 궁지에 몰리면 돈이 없어서 신용을 잃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회사의 가치는 급락하게 되죠. 궁지에 몰린 기업의 가치를 정상적으로 주고 지분을 사려는 투자자는 없습니다. 이른바 청산가치(Liquidation value)는 정상가치보다 가격이 훨씬 떨어지게 됩니다. 더이상 미래가 없으면 0으로 수렴하기도 하죠. 0 이상의 가치를 가지려면 그래도 희망이라는게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큐텐은 이제 희망도 지독하게 사라져 버린 상황입니다.
하지만, 큐텐이 자금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몇가지 없습니다. 자신의 지분을 팔아서 해결한다고 하는데, 이미 지분의 가치는 극한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이상 돈을 구할 방안은 더 없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회사가 망할것으로 보이면, 채권자들이 모두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며 계산기를 꺼낼 수 밖에 없습니다. 큐텐 그룹에게 돈을 대여한 금융기관들은 지금도 복잡한 셈을 하고 있을수 밖에 없습니다. 내 돈이라도 회수해야되기 때문입니다.
무모한 모험: 살아남으면 무용담, 죽으면 아무도 모르는 기어들
기업은 그래서 무모한 모험을 하면 안됩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적당한 수준의 리스크를 지면서 꾸준히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큐텐의 경우 버블시기의 마지막에 화려하게 불꽃을 피우면서 이렇게 경기가 안좋아지고 자금경색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대표의 망상으로 이런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겠죠. CFO를 부르고, 증권사 지인들의 조언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다고 판단을 내렸겠죠. 하지만, 결과는 우리가 모두 아는바와 같습니다.
기업이 하는 무모한 모험들은 가끔씩 엄청난 무용담으로 그려집니다. 사채를 쓰고 모든것을 저당잡힌 상황에서 일어나는 기업들의 이야기는 진정한 무용담이 맞습니다. 문제는 그런 무용담을 만들어 내야하는 위기에 빠진 기업들의 99%는 무용담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처절하게 망한다는것입니다. 우리가 멋진 스토리를 가진 기업들만 기억하는 이유는 대부분 망한 기업들의 처절한 이야기는 다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존자 편향(survivorship bias)은 사람들이 실패할 가능성을 더 크게 만듭니다.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몰려서 절망적인 모험을 하는 기업들이 생겨납니다.
나는 다르지 않다: 일반적인 사례들에 대한 스터디를 통해서 정석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창업가들은 자신이 항상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야 이 지독한 고통을 오로지 자신만의 생각에 의지해서 버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수많은 창업 기업들이 똑같은 실수를 매우 똑같은 방법으로 계속 하는것을 목격했습니다.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크게 다르지 않으며, 상황에 따라서 예측가능한 실패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런 실패들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일반론과 기본에 대한 공부가 많이 필요합니다. 성공한 창업자가 되기 위해서 다른 고통을 이겨낸 위대한 창업자들의 이야기로 힘을 얻을 수도 있지만,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회사를 운영하는 기본기와 일반론들입니다. 이른바 "정석적인 방법"들로 문제를 해결해내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것이죠.
그렇다고 대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오래하신 분들이 정답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저도 대기업에서 생활을 했지만, 그곳에서 했던 일들이 정석에 가깝다고 생각한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말하는 정석들은 대기업이 하는, 큰기업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마땅히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 해야하는 일들과 이유들, 그리고 그것을 수행하는 방법들입니다.
물론 이런 방법들을 배워도 창업가들은 회사의 일들을 정석적으로 처리할 수 없습니다. 자금도 없고, 사람도 없고, 위기상황은 계속 다가오기 떄문에 변칙적으로 일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어느정도 규모가 생긴다면 반드시 정석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합니다. 그래야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한번 꼼수를 찾기 시작하면 끝까지 꼼수로 회사를 운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살아남은 스타트업과 회사들은 반드시 자신의 회사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길을 찾아봤으면 합니다. 당장 먹고살기 급해서 지킬 수 없더라도 회사를 안정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방안을 꾸준히 배워나가는것만이 제대로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