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오모테섬_ 유부섬
오하라항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달린다. 버스가 2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동쪽에 있는 미하라[美原] 마을이다.
해변을 따라 늘어선 물소 달구지의 모습이 이채롭다. 맞은편에 보이는 유부섬[由布島]까지는 500여 미터. 사람들은 배가 아닌 소달구지에 올라 물길을 건넌다.
허리 높이에서 물이 찰랑인다. 물소는 힘이 세다. 열댓 명의 사람을 태우고도 가뿐하다. 하나 모든 소가 그런 것은 아니다. 저만치 앞서가는 어린 수소가 신음한다. 목덜미를 누른 멍에가 쓰라린지 끙끙 앓는 소리를 낸다.
채찍이 날아든다. 안쓰럽지만 견뎌야 한다. 유부섬에서 태어나 물소 가계도에 이름을 올린 이상 그 굴레를 벗기는 어렵다.
이곳 물소는 이웃나라 대만에서 건너왔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직후 농사일에 쓰려고 수입한 소들이 새끼를 쳐 대를 잇고 있다. 농기계에 떠밀려 한동안 일손을 놓았다가, 지금은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일로 밥벌이를 톡톡히 하고 있다.
달구지를 모는 우치난추 할아버지가 뱀 가죽을 덧댄 산신을 꺼내 든다. 띵 띵 띠리 띵띵…. 줄을 뜯어서 내는 청명한 소리에 먼 바다의 바람이 섞여든다. 소리를 아는 벗은 따로 있다. 엉덩이를 실룩실룩하는 물소가 꼬리를 탁 쳐올리며 리듬을 탄다.
할아버지의 입에서 류큐 민요가 흘러나온다. 그 뜻을 모르니 가락으로 즐긴다. 맑고 투명한 현의 울림에 구슬픈 목소리가 얹힌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노래를 산신의 음이 나란히 달리며 짚었다 풀어준다. 그 맥놀이에는 콧속을 간질이는 탄산수의 기포 같은 알싸함이 있다.
데이고 꽃이 만발하여 바람을 불러 태풍이 왔네
되풀이되는 슬픔은 섬을 건너는 파도와 같아
사탕수수 밭에서 당신을 만나
사탕수수 밑에서 영원히 안녕
일본의 록밴드인 더 붐[The Boom]이 오래전에 불러서 히트한 〈시마우타[島唄]〉란 곡이다. 우리말로 하면 섬노래.
데이고는 오키나와를 상징하는 현화다.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에선 국화로 통하는 이 꽃은 닭 벼슬 같은 붉은 꽃이 피어 홍두화로도 불린다. 데이고 꽃이 만발하는 해에는 큰 태풍이 찾아온다는 설이 있다.
더 붐의 섬노래는 오키나와 전쟁의 상처를 담고 있다. 밴드의 리더인 미야자와 가즈후미가 오키나와 여행에서 만난, 히메유리[ひめゆり] 학도대 생존자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쓴 곡이다.
일본군은 오키나와 사범학교와 현립 제1고등여학교의 여학생을 동원해 오키나와 육군병원에 배치했다. 240명이 속한 이 학도대는 백합과의 꽃인 하늘나리를 따서 히메유리 부대로 불렸다.
미군은 1945년 3월 23일에 오키나와 상륙작전을 개시한다. 일본군은 패전을 거듭하며 남부로 밀려났고, 히메유리 부대도 뒤따라 남하하며 부상병의 치료와 간호에 매달렸다. 군인들의 음식을 준비하고, 물과 식량을 나르고, 사체를 매장하는 것도 이들 부대원의 일이었다.
전황은 갈수록 나빠졌다. 일본 군부는 그해 6월 18일에 히메유리 부대의 해산을 명령했다. 알아서 살길을 찾으라며 손을 놓은 것이다.
히메유리 부대원들은 미군의 총격과 폭격, 지하 동굴에 터진 가스탄에 희생되었다. 일부는 일본군이 나눠준 수류탄으로 자결하기도 했다. 〈시마우타〉에는 그들의 아픈 사연이 담겨 있다. 훗날 각트, 나츠카와 리미 같은 오키나와 출신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불렀고, 그때마다 산신이란 악기가 함께했다.
산신 반주가 들어간 류큐 민요는 오키나와 어디를 가나 들을 수 있다. 공항 대합실, 호텔 로비, 거리의 상점, 바닷가의 한적한 카페…. 다케토미의 전통 마을을 도는 달구지나, 유부섬으로 들어가는 물길 위에서는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
섬노래여 바람을 타고 새와 함께 바다를 건너
섬노래여 바람을 타고 나의 사랑을 전해주오
류큐 민요에는 슬픔의 정서가 배어 있다. 하지만 우리네 한[恨]처럼 격정적이지는 않다. 그 녹녹한 정서를 담아내는 악기로 산신만 한 게 없다.
중국의 산시옌[三弦]이 류큐로 건너와 산신이 되었다. 그 산신이 일본 본토로 넘어가 샤미센이 되었다. 악기는 그 땅에 발 딛고 사는 사람의 감성에 맞는 음색을 찾아간다. 그것은 악기의 숙명이다. 샤미센이 북쪽의 아오모리에 닿아 쓰가루 샤미센이 된 것도 그곳 사람들이 한겨울의 추위와 박력에 맞는, 강한 울림의 소리를 원했기 때문이다.
하와이의 우쿨렐레도 다르지 않다. 포르투갈의 이민자 손에 들려온 브라기냐라는 네 줄의 전통악기가 하와이산 코나나무를 만나 새로운 울림을 얻었다.
조현도 바뀌었다. 라[A] 미[E] 도[C] 솔[G]의 4도 음은 기타와 달리 윗줄로 갈수록 음이 높아진다. 우쿨렐레 음색의 경쾌함은 여기서 온다. 그래서 같은 곡을 연주해도 가볍고 밝은 것이다.
산신도 우쿨렐레를 닮았다. 맑고 경쾌한 소리가 슬픔의 나락에 빠져 허우적거리도록 버려두지 않는다. 오키나와 사람들 안에는 한낮의 태양을 닮은 밝은 기운이 있다. 바닥을 훤히 드러낸 투명한 바다, 먹구름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희부연 빛줄기, 황금빛으로 물들인 저녁놀에 젖어 있다보면 그런 확신이 든다.
슬픔 안에서 분노가 자라야 격정이 인다. 그러나 그 어떤 분노도 모든 걸 쓸어갈 듯 휘몰아치는 거센 태풍을 당해내진 못한다. 가슴에 응어리진 분노도 남국의 햇살 아래에서는 속수무책이다. 블루씰 아이스크림이 녹아 뭉그러지듯, 서너 해 전에 칠한 페인트가 바래듯, 그렇게 가라앉고 희미해지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류큐의 민요에는 슬픔이 있으되 격정은 없다. 격정을 들어낸 슬픔이, 어쩌면 진짜 슬픔에 가깝다.
파도를 일으키는 건 다 같은 바람이요 죄다 한통속이니, 그걸 알고도 끝내 바다로 눈 돌리는 건, 잔잔한 물살을 타고 반짝이는 그리움이 가슴에 사무치는 탓이다.
기념품 숍과 붙어 있는 제법 큰 식당에서 오키나와 가정식을 먹고 산책에 나선다. 유부는 바닷물에 밀려든 모래가 이룬 작은 섬이다. 안내 표지에 공들여 그린 지도를 보니, 통통한 해삼 한 마리를 닮았다.
물소와 멧돼지 모양의 조형물 벤치는 사진을 찍는 포토 존을 겸하고 있다. 물소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 섬은 관광객을 위한 곳이다.
야자나무를 따라 반듯하게 닦아놓은, 흰 가르마 같은 길을 걷는다. 바다를 향해 문을 낸, 시골 구멍가게 같은 아담한 카페를 지나 만타레이 해변에 닿는다. 숲이 우거져 강을 타고 토사가 흘러드는 바다는 물빛이 탁하다.
유부는 섬 전체가 열대 식물원이다. 길을 걷다보면 히비스커스와 부겐빌레아, 란타나 같은 꽃들이 눈에 잡힌다. 이 섬은 입장권 대신 히비스커스 브로치를 나눠준다. 사계절 내내 오키나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 꽃은 하와이가 원산지다.
꽃말은 ‘섬세한 아름다움’. 우리나라의 무궁화도 히비스커스의 일종이다.
히비스커스는 한자로 불상화[佛桑花]라 쓴다. 부처[佛], 뽕나무[桑], 모란[花]을 한 데 볼 수 있어 그런 이름이 붙은 모양이다. 잎에서는 뽕나무가 보이고 꽃에서는 모란이 보인다. 그나저나 부처는 어디에 있는 걸까?
팻말을 따라 나비정원으로 향한다. 아이보리색 날개에 먹 선의 무늬가 도드라진 종이연 나비가 팔랑인다. 황금빛을 띠는 라임그린의 번데기에서 나와 완전변태를 거친 후다.
몸에서 날개가 솟는 건 어떤 기분일까? 번데기가 된 애벌레만이 그 극적인 순간을 경험한다.
지난 세기를 돌아보면 유부섬의 역사에도 극적인 순간이 있었다. 원래 이 섬은 이리오모테에 딸린 임시 거처였다. 농사철에 맞춰 이리오모테로 넘어온 일꾼들이 숙식을 해결하며 머무르던 곳이었다. 그러다 몇 가구가 눌러앉으면서 마을이란 게 생겨났다.
이 작은 섬에 학교가 들어설 정도로 주민이 늘었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에 불어 닥친 큰 태풍으로 섬이 물에 잠기는 큰 피해를 보았다. 재해였다.
물이 빠지자 곳곳에서 상처가 드러났다. 오목하게 들어간 섬의 안쪽에 자라는 맹그로브 나무만 멀쩡했다. 서너 가구를 빼고는 대부분의 주민이 이리오모테로 거처를 옮겼다. 인구가 줄면서 학교도 문을 닫았다.
由布小學校
유부소학교.
길을 걷다 마주친 콘크리트 기둥에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한때 초등학교 정문으로 쓰던 곳이다. 교정의 웃음이 사라진 그 길에 다홍색 히비스커스가 피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그 바람이 부처의 말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