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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근 Mar 06. 2020

책을 읽는 사람, 비관적인 사람

정세랑 작가의 인터뷰에 붙여


나는 손에서 책을 완전히 놓지 않지만 그렇다고 열성적인 독자라고 하기는 뭐한,

적당히 때때로 책 읽기를 즐기는 사람의 범주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정세랑 작가가 인터뷰에서 언급한 '책을 읽는 사람'에 내가 속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살면서 성격이 부정적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에게서 매사에 비관적이라는 지적을 늘 들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주변의 선배들이나 친구들이 나에게 비슷한 평가를 종종 했었다.

'시니컬하다'는 표현은 귀에 친숙하다.

스스로 돌아봐도 나는 부정적인 인간이 맞다. 적어도 긍정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어떤 일을 봐도 좋은 것에만 집중하지 못하고 잘못되고 나쁜 것들이 같이 눈에 들어온다. 문제없이 잘 흘러가며 유쾌한 부분들에 일부러 눈감는 것은 아니지만, 온전히 그것들만을 충분히 즐기지는 못한다. 기쁨과 낙관으로 백 퍼센트를 채운다는 것은 나에게 언제나 불가능했다.

그래서 긍정적인 사람들을 볼 때마다 어디서 그런 활력이 나오는지 의아했다. 한결같이 낙관적으로 세상과 타인을 바라보는 관점들이 불가해하게 느껴졌고, 밝은 톤으로 인생을 채색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와는 뿌리부터 다른 종족으로만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부정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맥이 빠져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다. 아무리 설득해도 돌아오는 답이 한결같을 때 나는 상대의 끔찍한 비관의 벽에 부딪힌다.

'스스로가 바뀌지 않고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없어.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주체적인 선택이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옮겨가게 할 수 있어. 인생은 누구의 몸과 마음도 아닌, 내 몸과 내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니까.'

'그래 봤자 소용없어. 나 하나가 무슨 힘이 있어. 내가 그런 선택을 한다고 뭐가 바뀌니? 누가 알아준대?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원래 세상은 그렇게 흘러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흘러갈 거야. 그건 바뀌지 않아.'

'세상은 원래 그렇지 않아. 그건 우리가 만들어온 것이고, 또 새롭게 만들어나갈 수 있는 거야.'

'자꾸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마. 삶이란 경쟁에서 지면 본래 도태될 수밖에 없는 거야. 누구나 생존하고자 하는 본능도 무시해선 안되고. 나는 나의 행복과 즐거움을 추구할 뿐이야. 개인적인 노력 뒤에 다가올 밝은 미래를 믿어. 그 끝에 내 삶의 의미가 있다고.'


그러니까 나는 애초에 그런 사람이다.

영화 설국열차가 마지막에 다다르면 열차의 맨 앞 칸 바닥 밑에는 유색인 꼬마 아이들이 엔진을 직접 돌리고 있고, 우두머리 윌포드는 그 위에서 호화로운 식사를 즐기고 있다. 윌포드는 개의치 않는다. 원래 열차는 그런 것이니까, 또 자신은 삶의 과육을 따먹어야 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니까. 그러나 나는 엔진실의 아이들이 마음에 밟힌다. 엔진실로 연결되는 통로를 닫아놓고 피가 흐르는 스테이크를 썰기에 나는 머리 칸의 긍정적인 면만을 보지 못한다. 그곳에서 즐거움만이 가득하고 원하는 욕망이 무한정 채워진다 해도 머리 칸 만을 목표로 살아갈 수는 없다. 내가 위에서 여유를 만끽하는 동안 왠지 저 아래에 누군가 있을 것 같고, 그래서 바닥을 열어보고 싶고, 누가 있는지 꼭 알아야만 될 것 같다. 실제론 대부분 두려움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해도 마음에 아무런 잔향을 남기지 않고 평온한 수면처럼 모른 채 넘어갈 수는 없다. 이런 얘기는 여전히 비관적이고 염세적으로 비춰질지 모르겠지만, 밝기만 한 곳에도 반드시 그림자가 숨어 있고, 어둠을 보지 않고 낙관을 얘기할 수는 없다. 못 본 척 회피하며 잘될 거야, 잘 되고 있잖아, 우울한 건 치워버려라는 말은 포장된 긍정일 뿐, 세상을 긍정의 결과로 이끌지는 못한다. 냉혹한 현실을 바로 보는 태도가 진짜 긍정에 훨씬 가깝다고 생각한다.


정세랑 작가가 인터뷰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은,

'그냥 이대로 살자.', '어차피 망했다.'라고 놓아버리는 쪽이 아니라고 했다.

'더 나은 게 없을까?'라고 찾는 쪽이라고.

내가 '책을 읽는 사람'에 속하는지 모르겠지만,

정세랑 작가가 말하는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하고 어려운 희망을 찾는 쪽에는 같이 서고 싶다.

나는 주로 비관적이지만, 동시에 때로 계획적인 희망을 꿈꾸는 낙천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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