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이 나오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채널을 즐겨 본다. 볼 때마다 음식에 대한, 요리에 대한 그의 넓고 깊은 지식에 놀라곤 한다. 음식에 대한 그의 열정에, 장사에 대한 그의 철학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곤 한다.
우리 집에는 백종원 뺨치게 음식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분이 있다. 바로 내 남편이다. '식사'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나의 남편은 말한다. 지금까지의 회사생활에서 제일 힘들었던 날 중 하나는, 점심 못 먹고 일한 날이란다. 매일같이 저녁 12시까지 일을 했던 나날들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점심도 못 먹고' 일한 그 하루란다. '점심도 못 먹고'가 강조되어 있는 것에 주목해주셨으면 한다. '매일같이 저녁 12시까지'가 아니라 말이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난 후로는 외식을 하는 날이 줄었다. 남편은 요리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요리책을 보고 떠듬떠듬 따라 하던 것이, 요새는 요리책을 봐도 아이디어만 얻고 자신의 입맛에 맞게 이것저것 가감하더니 근사한 요리를 뚝딱 만들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남편의 삶에는 '식'이 크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거야 좋다만, 점심 먹고 나서 소파에 누워 저녁에 뭐 먹을지 핸드폰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때로는 진짜 "저 놈의('남편의'라는 뜻 아님) 머릿속에는 밥밖에 없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날그날 당기는 음식을 찾아내서, 재료니 뭐니 구색을 제대로 갖추어놓고 요리에 돌입하는 남편 덕에 외식을 하던 때와 식비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불만이 하나둘 늘어갈 무렵, 백종원 씨가 젊었을 적 이야기를 하는 동영상을 보았다.
"일본에 놀러 갔을 때, 백화점이나 도시락 전문점, 여기저기서 도시락 열댓 개를 사서 공원에 돗자리 펼쳐놓고 앉아서 먹었어요. 분석도 해보고 비교도 해보고. 지나가던 일본분이 그러더라니까요. 이거 얼마냐고. 도시락 장수인 줄 알았나 봐유."
아니, 우리 남편보다 더한 사람이 여기 있네! 란 생각이 처음엔 들었다. 그런데 그건 한 순간이었다. '역시 성공하는 사람은 달라.' 백종원이 더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자문했다. 왜? 우리 남편은 한심해 보이는데, 왜 백종원은 대단해 보이지? 왜?
백종원이 대단해 보인다면, 우리 남편도 대단해 보여야 되는 거 아닌가? 물론 백종원은 그의 재능과 경험을 살려서 돈도 벌고 사회기여도 하고 있다만, 그거야 지금에 와서의 일이고, 그에게도 이룬 것 없는 젊은 시절이 있었을 것 아닌가.
물론 남편은 먹는 것이나 요리에 대한 열정을 살린 일을 하고 있지도 않고, 그럴 예정도 없다.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 아닌가. 개그맨 김영철은 영어를 배우고 나서는, 영어나 영어 교육 관련 콘텐츠에서 자기만의 자리를 확보해가지 않았나. 유튜브니 인스타그램이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도 좋은 세상이지 않나? 그게 수익을 내기도 하고 말이다. 게다가 꼭 돈으로 환산되어야만 가치가 있는 걸까? 남편 덕에 외식 안 하고도 다채로운 요리를 맛보는 우리 가족의 삶의 질은? 재미는?
사실은 백종원의 열정과 남편의 열정은 그다지 차이가 없는 건 아닐까? 난 지금의 눈에 보이는 결과 만으로 남편을 평가하고 있는 건 아닐까.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