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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비 Jan 27. 2021

외국인 남편과 결혼해서 허탈할 때

  내 남편은 일본인이다.

  결혼한 지 4년 남짓, 뭐 그럭저럭 살고 있다. 남들과 비슷한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고, 비슷한 문제로 분통 터지고, 그러다가도 화해하기도 하고, 때로는(아주 가끔) 신혼 분위기로 돌아가기도 한다.

  외국인과 결혼했다는 걸 실감할 일이 일상생활에서 그다지 많지는 않다.


  가끔 있긴 한데, 대개는 이럴 때다.

・싸우다가 열 받아서 한국말이 나왔는데 상대방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을 때

・어렸을 때 유행했던 가요나 가수 이야기를 할 때

   (H.O.T에 대해 말하려면 한국 아이돌의 계보부터 설명해야 한다.)

・명절 선물로 부모님께 '현찰'을 드리고자 할 때

   (현찰을 드리는 게 전혀 실례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부모님은 기뻐한다는 사실을 이해시켜야 할 때)


  하지만, 내가 외국인 남편과 결혼했음을 가장 실감했을 때는, 외국인 남편과 결혼해서 가장 허탈했을 때는, 백종원 레시피로 제육볶음을 만들었을 때다.




  매운 게 당겨서 제육볶음 생각이 났다. 인터넷을 뒤져서 백종원 아저씨 레시피를 찾았다. 하라는 대로 따라 했더니, 정말 내가 만들었지만, 소주 생각이 간절해지는 먹음직스러운 제육볶음이 완성되었다. 만들면서 한 젓가락씩 집어먹다가 정말이지 눈물이 나올 뻔했다. 아, 이렇게 맛있어도 되는 건가? 소주 마시고 싶다.


  이 감동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서, 남편을 불렀다.

  자랑스럽게 접시를 내밀었다. 어때? 소주 당기지?


  남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응, 맛있네.'였다.  아무 감흥 없는 '응, 맛있네.'

  아, 이 맛을 왜 모를까!(모르는 게 당연하다만)

  이 맛이 불러오는 풍경, 정서, 감정, 기분...!

  남편과 나눈 건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으로 양념된 돼지고기 덩어리뿐이었다.




  우리 집의 요리 당번은 주로 남편이지만, 한국요리가 생각날 땐 가끔씩 닭볶음탕이나 파전, 김밥, 김치찌개 등을 만들곤 한다. 맛도 맛이지만,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자취생이 오랜만에 집밥 먹는 기분이랄까.

  

  "아, 이거지, 이거 " 대신에 "이게 말이야, 먼저 파 기름은 내고, 그다음에 고기를 강불에 볶는 거야, 그리고 여기가 포인트인데 이 시점에서 설탕을 넣는 거지.",  "제육볶음은 말이야, 집밥으로도 많이 먹고, 아, 그래, 점심식사로도 많이 팔기도 하고..."하고 설명해야 하는 게 가끔 아쉽달까. 그게 바로 농담 반 진담 반 내가 외국인 남편과 결혼해서 허탈함을 느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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