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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인생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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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느무느 May 21. 2023

아웃렛에서 신상을 사게 되는 난제

최근에 쇼핑을 할 일이 있었습니다. 아기 옷을 좀 샀어요. 제 딸들이 돌이 되도록 아기 옷을 제 돈 주고 산 적은 거의 없었는데요, 지금까지는 선물 받거나 물려받은 옷으로도 충분했거든요. 상의 하의 세트로 된 외출복도 다섯 벌이나 있었고요. 그러다 아기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고 외출복 다섯 벌을 월화수목금 돌려 입었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어린이집에서 찍어준 사진을 쭉 보는데 아기가 한 달 동안 다섯 번만 등원한 것 같더라고요. 게다가 이제 슬슬 더워지고 있어서 다음 주부터는 안 두꺼운 옷 세 벌로 돌려 입어야 할 지경이었습니다. 


아기 옷에 무심했던 것 같아 조금 머쓱해진 저는 아웃렛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쌍둥이를 키우고 있는데요, 뭐가 되었든 아기 물건을 사려하면 돈이 두 배로 들어요. 하나를 사서 쓰다 물려줄 수도 없거든요. 아기용품에 비용이 많이 든다는 사실을 평소에 주시하고 있어서 그런지 이제껏 새것을 제 값 주고 사기보다는 중고나 할인된 제품 위주로 구입했어요. 실속을 좀 더 챙긴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아웃렛으로 가게 된 것이지요. 




아웃렛과 럭셔리 브랜드

사실 저렴한 물건을 찾으려면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게 더 효율적일 수도 있어요. 특정 브랜드의 상설할인매장을 알아볼 수도 있고요. 그래도 아웃렛을 가게 되는 건 아무래도 럭셔리 브랜드 매장의 존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웃렛에서는 평소 부담스러워 발걸음이 향하지 않던 매장에서도 가격표를 눈치 보지 않고 들쳐 볼 수 있고 심지어 옷을 입어 볼 심리적 여유도 생기지요. 아웃렛에 있는 럭셔리 브랜드들이 백화점에서는 명품 매장이 즐비한 층에 가야 만날 수 있는 브랜드인 것을 떠올려보세요. 그런 브랜드들이 권위를 약간 내려놓고 아웃렛에 입점함으로써 나도 럭셔리 브랜드를 구입하는 경제 행위의 주체가 되는 경험을 하는 거예요.


또한 이런 브랜드들의 존재는 우리에게 어떤 기대 심리를 갖게 합니다. 명품을 취급하는 이곳에서는 꽤 괜찮은 물건을 건질 수 있을 것 같은 기대요. 내가 사려는 것은 명품이 아닌데 무슨 상관이냐고요? 아무리 저렴한 물건을 찾으러 아웃렛에 간다고 해도, 그 아웃렛이 정말 싼 ‘떨이’만 모아 놓은 것 같다면 가고 싶은 마음이 들까요? 우리는 사실 ‘저렴하지만 좋은’ 물건을 사러 가는 거 거든요. 아웃렛 입장에서는 다양한 제품을 구비해 놓음으로써 좋은 물건을 취급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을 거예요.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아웃렛이 가까워지면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럭셔리 브랜드들의 이름이 크게 보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방식이지요. 우리는 무의식 중에 브랜드명을 훑으며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이유에서였을까요. 아웃렛에 막 도착했을 때에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시간이 남으면 럭셔리 브랜드를 슬쩍 구경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도 했던 것 같아요. 할인해도 비싸서 살 일은 없겠지만, 혹시 혹시 혹시나 운이 좋으면 파격적인 세일 상품을 만나 ‘득템’ 하는 행운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예정에 없던 지출이 뜻밖의 행운으로 둔갑하는 곳이 바로 아웃렛이에요. 어떻게 둔갑하냐면요, 50만 원짜리 제품을 60% 할인해서 20만 원에 샀다면, 20만 원을 썼다는 것보다 30만 원을 아꼈다는 것에 집중하면 됩니다. 이 얄팍한 속임수에 넘어갈 넉넉한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 즐거운 아웃렛 쇼핑을 위해 제가 드리는 첫 번째 팁입니다. 


이월 상품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두 번째 쇼핑 팁을 드릴게요. 아웃렛에서는 기능성 의류를 구입할 때 제일 만족도가 높습니다. 운동화나 운동복 같은 경우에는 유행에 상관없이 기능에만 충실하면 되기 때문에 이월 상품을 구입하기에 부담이 없지요. 속옷도 내 체형에 잘 맞는 것을 고르면 장땡이기 때문에 아웃렛에서 사기 좋은 제품이에요. 제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체득한 지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번에도 만족스러운 쇼핑을 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23년 SS 신상을 집으로 데려왔어요. 네, 지금 무슨 생각하시는지 압니다. ‘아웃렛까지 가서 무슨 신상을 사 오냐’ 하고 의문이 생기셨겠죠. 하지만 이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어요.


아동복 매장을 한 바퀴 훑고 나자 예상과 달리 제 마음은 무거워졌어요. 저는 오늘 꼭 아기 옷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마음에 드는 옷이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거든요. 집에서 입을 실내복을 고르는 거면 옷 스타일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겠지만 어린이집에 입고 갈 옷이라 조금 까다로웠어요. 새 옷이 집에 있는 외출복과도 호환이 되어야 하는데 브랜드마다 옷 스타일이 꽤 달랐고요. 아시다시피 저는 아웃렛 초짜가 아닙니다. 아웃렛에서 무엇을 사면 좋을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제가 입을 옷이라면 X축은 가격, Y축은 나의 선호도로 된 사분면을 머릿속에 그리고 그 위에 여성복 브랜드를 배치시켜 예산에 맞는 최적의 매장만 방문할 수 있었겠지만, 아기 옷 브랜드로는 어떤 지도도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아기 옷 브랜드가 낯선 저는 마네킹의 스타일이 마음에 드는 매장으로 들어섰습니다. 매장 입구에 서있는 마네킹만 보면 아웃렛은 백화점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죠. 마네킹의 옷에서는 이월상품이라는 느낌이 거의 나지 않잖아요. 그런데 매장에서 옷을 둘러보면 당황스럽습니다. 매장 행거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나와요. 마네킹은 분명 뜨거운 5월 햇살에 잘 어울리는 화사한 옷을 입고 있는데 행거에는 여름용 민소매 티셔츠부터, 가을에 입을 법한 청자켓, 트렌치코트, 겨울용 정장 투피스까지 다 걸려있습니다. (네, 아가 옷도 이렇게 다양하답니다.) 대충 가을에 입을 간절기 옷을 봄에도 입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요? 소재는 얼추 맞을지 몰라도 색감이라는 게 있어요. 똑같은 청바지라도 하얗게 워싱된 청바지를 가을 겨울에 입진 않잖아요. 그건 엄연히 봄 여름옷이에요. 혹시 여러분께서 연청색 데님을 겨울에도 입으셨다면 제 말씀을 기억해 놓으시면 좋겠네요. 쇼핑 팁은 아니지만 코디 팁도 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아는 옷과의 조우

제가 필사적으로 옷을 찾는 와중에 남편이 어떤 옷을 들고 저를 불렀습니다. “이거 우리 집에 있는 옷이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데. 약간 김이 빠집니다. 여러분도 아웃렛에서 아는 옷을 만난 경험이 있겠지요? 여기서 아는 옷이란 기억에 남을 만큼 독특했던 지인의 옷일 수도 있고, 내가 지난 시즌에 사려고 눈여겨봤던 옷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아웃렛에서 만난 ‘아는 옷’이 내가 이미 가진 옷이라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특히 내가 산지 몇 년 된 옷이라면 씁쓸하기까지 하지요. 이 옷이 오래된 만큼 다른 옷들도 오래되었을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아웃렛 쇼핑에는 환상이 존재합니다. 이월상품이라고 해도 매장에 갓 들어온 따끈따끈한 상품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이요. 못해도 지난해에 나온 제품이어야 하죠. 몇 해 묵은 옷은 가격이 저렴해도 그리 반갑지는 않습니다. 옷의 디테일에서 지나간 유행이 언뜻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요. 다행히 오래된 흔적이 크게 보이지 않는 옷이라면 이게 실제 몇 년도에 나온 제품인지 모르는 편이 나아요. 특히 할인 가격이 쓰인 견출지가 겹겹이 붙어있는 경우에는 더욱이요. 하지만 이 와중에 내가 몇 년 전에 산 옷이 섞여 있다면 나의 ‘실제 출시 연도를 모를 권리’는 박탈당합니다. 저는 제 옷을 아웃렛에서 본다고 불쾌하거나 아쉬운 마음은 별로 없어요. 다만 그 옷이 나무의 나이테처럼 과거의 한 시점을 연상시키고 있다는 것이 유감인 것이지요.


다행히 남편이 가리킨 옷은 바로 지난해에 아가들이 입었던 옷이었습니다. (제 아가들이 작년에 태어났으니 어쩌면 당연한 거네요.) 아가들이 막 100일 넘었을 때 입었던 옷을 보니 갓난아이 시절이 생각나 잠깐 감격스럽기까지 했습니다. 평소와는 달리, 아는 옷을 만난 것이 조금 반가웠어요. 작년 옷의 재고가 남아 서울 근교의 아웃렛으로 입고되고 마침 내가 방문한 날 행거에 딱 걸려있다니. 대단한 인연처럼 느껴집니다. 살 것도 아니면서 가격표를 한 번 들추어 보았습니다. 할인된 가격은 당근마켓에 내놓을 때 참고 하면 될 것 같아요. 중고 거래를 손쉽게 할 수 있게 된 요즈음, 아웃렛에서 이월상품의 시세를 참고하면 중고물품을 사고팔 때 도움이 될 겁니다. 제가 드리는 세 번째 팁입니다.  


쇼핑 종결자, 신상

행거의 옷을 아무리 스캔해도 괜찮은 옷이 없었어요. 옷이 빽빽하게 걸려있어서 하나씩 들춰보려면 꽤나 분주했지만 혹시 괜찮은 옷을 놓칠까 싶어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봤는 데도요. 그때 바로 옆에 다른 행거가 얌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신상 행거’ 예요. ‘신상 행거’에는 당연하게도 이번 시즌에 나온 신상이 걸려있습니다. 통상 이런 종류의 행거에는 걸린 옷의 수도 훨씬 적어서 옷들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띄엄띄엄 걸려있어요. 슬쩍 흘겨보아도 그 세련된 디자인이 잘 보이죠. 빠르게 옷을 헤집어가며 꺼내 보지 않아도 되고 옷을 찬찬히 살펴보게 됩니다. 옷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괜찮아요. 지금 계절에 입기 딱 좋은 소재, 두께, 색감이고 프린트된 패턴도 촌스럽지 않거든요. 누가 봐도 예쁜 옷입니다. 매장 앞의 마네킹이 입은 것과 비슷한 분위기의 그런 옷이요.


전 신상 행거에서 마침내 마음에 드는 옷을 만났습니다. 당장 입을 수 있는 옷을 보니, 이 옷이 사람이라면 참 친절한 마음씨를 가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도 알아요. 신상 행거를 아웃렛 매장에 놓은 것은 업체의 상술이겠지요. 하지만 전 제가 업체의 상술에 넘어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상 행거는 이번 쇼핑 임무로부터 저를 해방시킨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기 옷을 온라인에서 몇 번 사봤는데요, 이 사이트 저 사이트 찾아보는 것도 에너지 소모가 컸어요. 이월상품을 조금이라도 더 싸게 파는 쇼핑몰을 찾아서 회원가입만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인터넷을 뒤지다 이미 지쳐버렸죠. 아웃렛에서도 사계절이 혼탁하게 섞여 있는 행거가 저에게 시련을 주었고요. 그 와중에 예쁜 신상을 만나니 냅다 쇼핑을 종결하고 싶어졌습니다.


설마 ‘아웃렛에서 신상 사 오는 사람의 쇼핑 팁을 어떻게 믿냐’ 하고 저를 의심쩍게 보시는 건 아니시겠죠? 자,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마음에 덜 드는 옷이 할인해서 5만 원이에요. 그런데 옆에 있는 완벽한 옷이 8만 원이에요. 덜 완벽한 옷을 골라도 5만 원이나 쓰게 되는걸요? 5만 원을 그런 곳에 쓰고 싶나요? 5만 원 주고 산 옷에 손이 가질 않아서 집에 와서도 계속 8만 원짜리 옷이 눈에 밟힌다면 차라리 3만 원을 더 지불하고 마음에 쏙 드는 옷을 가져오는 게 낫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에 덜 드는 옷이라고 공짜가 아니라는 겁니다. 전 상술에 넘어간 것이 아니라 경제 행위의 주체로서 8만 원짜리 옷을 선택한 거예요. 하필 아웃렛에서 이런 선택을 내리게 되긴 했지만, 어쨌든 주체적으로요.    




소비란 물건을 마주한 순간의 즉각적인 사고만으로 행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며칠 전 친구와의 대화, 몇 년 전 본 영화 속 이미지, 혹은 과거의 트라우마에서도 영향을 받는 심리 작용의 결과예요. 갑자기 제가 신상 행거 앞에서 폭주해서 수십만 원어치 옷을 사버린 것처럼, 인과가 명백하게 납득이 되지 않을 때도 많고요. 이건 어리석은 게 아니에요. 최저가를 찾아 헤매더라도 막상 지출한 금액은 터무니없을 수도 있는 거예요. 최저가의 상품이 해결해 주지 못하는 고민을 어떤 고가의 제품이 해소시켜 준다면, 이게 진정한 최저가 아닐까요? 최선(善)가라고 표현하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웃렛에 온 고객에게 까지 신상을 들이미는 게 좀 치사하다는 생각은 듭니다. 신상은 다른 신상과 경쟁을 해야지 아웃렛에 와서 철 지난 옷들하고 붙을 건 아니죠. 뭐 어쩌겠습니까. 이미 사서 왔는걸요. 쇼핑은 사려는 물건이 진짜 필요한 시기가 도래하면 종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1시간 뒤에 토익 시험을 봐야 하면 컴퓨터 사인펜을 사는 일은 1시간 안에 완료됩니다. 결국 시간 싸움이에요. 저에겐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쇼핑을 빠르게 종결시켜 줄 수 있는 제품을 사 오게 된 거죠. 후회해도 늦었어요. 게다가 택도 뜯고 빨래도 해놔서 환불도 안 돼요. 사실 한번 빨아 보니 디자인은 이쁜데 바느질이 좀 약한 것 같긴 해요. 


마지막 쇼핑 팁을 드리고 글을 마치겠습니다. 신상 살 것 같으면 그냥 백화점 가세요. 저는 더 이쁜 신상들 보고 배 아플까 봐 당분간 백화점은 못 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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