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제 상담을 하다 보면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똑같은 걸 묻는다. "이거 효과 있어?" "이거 어디에 좋아?" "나 여기 좀 안 좋은데 이거 먹으면 괜찮아 지나?" 너무 들어서 귀에 굳은살이 박일 정도가 됐다. 아무래도 오랜 기간 영양제 = 약이라는 공식에 현혹되다 보니 생긴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 같다. 오늘은 영양제, 그중에서도 종합비타민의 효과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종합비타민을 보면 여러 가지 기능이 적혀있다. 대충 시각 적응, 세포 보호, 에너지 대사, 혈액 응고, 철 운반, 뼈 형성 등 함유된 영양소가 늘어날수록 기능도 늘어난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많은 종합비타민의 기능을 보고 있자면, 한 알만 먹어도 갑자기 활력이 솟아날 것 같고 막 건강해져서 감기도 걸리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실제로 종합비타민을 먹고 체감할 정도로 효과를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 그럴까?
종합비타민은 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약이 아니기 때문에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수많은 기능이 있음에도 정작 체감할 수 있는 건 달라진 소변 색깔뿐인 이유가 이것이다. 당연히 소비자 입장에선 궁금할 수밖에 없다. '그럼 제품에 적힌 저 많은 기능들은 다 뭐야?' 이건 좀 복잡한 사정이 있다.
종합비타민에 적힌 기능의 실체를 설명하려면 식품의약안전처를 언급해야 한다. 식약처는 먹거리에 관한 거의 모든 걸 총괄하는 부서라고 생각하면 쉽다. 여기서 먹거리란 단순히 라면, 피자, 치킨 같은 것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영양제, 의약품 등 사람이 정상적으로 먹을 수 있는 모든 걸 의미한다.
종합비타민의 각 기능들은 식약처에서 검증을 통해 비교적 확실하다고 판단되는 내용만 추린 것이다. 검증은 보통 논문, 실험 등 연구 결과를 반영하는데, 이후 시장의 의견을 일부 참고하여 수정되기도 한다. 종합비타민 뿐만 아니라 건강기능식품 딱지가 붙은 모든 영양제는 식약처가 허가한 성분과 이에 따른 기능만 명시하는 게 원칙이다.
종합비타민의 경우 보통 기능성 성분엔 '~에 필요' 또는 '~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이라고 표기한다. 여기엔 맹점이 있는데, 특정 영양소, 예를 들어 아연이 정상적인 면역기능에 필요하다는 설명이 곧 아연이 면역기능을 향상시켜준다는 말과 같지 않다는 점이다. 더불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은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연구 결과들을 쭈욱 보니까 뭐 이러이러한 증상에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정도의 뉘앙스가 바로 '~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의 뜻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겠다. A라는 사람이 면역력이 떨어졌다고 치자. 이걸 본인이 느끼긴 쉽지 않지만 아무튼 A는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다. 그리고 아연은 정상적인 면역기능에 필요하다. '보통 사람들은 A에게 아연을 먹이면 면역력이 높아질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다. A가 평소에 잠을 잘 못 잤을 수도 있고, 매일 격무에 시달리거나 술을 많이 마시거나 지병이 있거나 뭐 기타 등등 상당히 많은 요소들이 단독으로 또는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A의 면역력을 떨어뜨린다. 따라서 아연이 A의 면역력을 올려줄 수 있는 경우는 단지 A의 면역력 하락 원인이 아연 부족 때문일 경우로 한정된다.
결국 종합비타민에 적혀있는 수많은 기능들은 당신이 갖고 있는 증상이 특정 영양소 부족으로 인해 생겼을 때 유효한 것들이다. 당신이 종합비타민을 계속 먹어도 그 효과를 체감하기 힘든 이유이다.
당신은 아마 이렇게 생각하겠지. '뭐야? 그럼 종합비타민이나 영양제를 먹을 필요가 없네?' 그렇다. 당신은 영양제를 굳이 먹지 않아도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 우리가 필요한 대부분의 영양소들은 음식으로 충분히 섭취 가능하고, 좀 모자라도 딱히 불편하지 않다. 여기서 문제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음식으로 충분히 섭취 가능하다는 전제가 틀렸다는 것이고, 둘은 식습관이 올바르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1. 우리는 음식으로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할 수 없다
한국영약학회는 '한국인 영양섭취 기준(2005)'에서 야채를 하루에 6~8회 정도 섭취하는 게 이상적이라고 말한다. 무게로 따지면 350g 정도인데, 말이 350g 이지 깻잎 350장, 오이 4개, 당근 3개에 해당하는 양이다. 하루 이틀은 먹어도 매일 이 정도 양의 야채를 먹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 골고루 먹어야 하는데 누가 밥 먹으면서 매번 영양까지 하나씩 따져가며 먹을까(물론 있긴 있다). 그냥 대충 먹고 싶은 거 먹지. 비슷한 이유로 음식을 통해 필요한 영양소를 섭취하는 건 이론상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2. 편식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전 아무거나 다 잘 먹어요"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음식에 호불호가 없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까? 싫어하는 건 딱히 없을지라도 분명 더 좋아하는 음식이 있을 거고 결국 사람의 식탁이란 취향대로 차려지게 마련이다. 요즘처럼 1인 가구와 배달음식이 대중화된 시대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기왕 먹을 거 맛있게 먹고 싶지, 영양 따져가면서 배달 시켜 먹는 사람이 어디 있나. 이렇게 철저하게 관리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높아지는 대한민국의 비만율을 주제로 통계자료가 나오지도 않았다. 당연히 우리는 놓치는 영양소가 있다.
결국 종합비타민을 챙겨 먹어야 하는 이유는 효과 때문이 아니라 영양학적으로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따져야 할 건 해당 성분이 몸속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가 아니다. 어차피 설명해 줘도 머리 아프다며 듣지 않을 것 아닌가. 종합비타민을 고를 땐 필수 13가지 비타민이 전부 들어있는지를 가장 먼저 봐야 하고 미네랄이 너무 많이 함유되어 있진 않은지 체크해야 한다.
미네랄은 몸에서 매우 소량으로 필요하다. 하나하나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미네랄마다 단독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고 복잡한 상호작용 과정을 거친다. 어떤 건 서로 흡수율을 높이는 반면 어떤 건 다른 미네랄의 작용을 감소시킨다거나 흡수가 덜 되게 막는다거나... 아무튼 미네랄은 당신의 생각처럼 많은 양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종합비타민엔 여러 종류의 미네랄이 들어가 있다. 음식으로 섭취하는 미네랄과 영양제로 섭취하는 미네랄을 합치면 어떤 미네랄은 당연히 권장량을 초과하게 된다.
미네랄 초과 섭취는 비타민 초과 섭취보다 신체 이상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특정 미네랄을 오랜 기간 높은 함량으로 섭취하는 건 다소 말리고 싶은 행동이다. 딱 비타민만 들어있는 종합비타민이 있다면 좋겠지만 찾기가 매우 어려우므로 미네랄이 최대한 덜 들어간 제품을 선택하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