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탱하는 힘
청소를 하다 보면 불현듯 고민하던 문제들의 해결책이 떠오르곤 한다.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만 같던 문제들이 갑자기 너무나 쉽게 느껴진다. 불안하고 더디게만 흘러가던 시간들이 짧게만 느껴진다. 청소는 실제로도 더러워진 공간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복잡하던 마음과 머릿속을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대청소를 했다. 먼지를 쓸고 닦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분리수거를 하고, 가구의 위치도 바꿔보았다. 그러다 보니 7시간이 훌쩍 지났다. 마음이 괴로울 때는 단순하게 몸을 움직이는 게 최고다.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들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복잡했던 머릿속도 차곡차곡 정리되는 것 같았다.
누군가 잘 가꿔놓은 정돈된 공간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서 늘 그런 공간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런 공간을 만든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이 즐거웠다. 누군가의 시간과 애정이 깃든 공간들을 경험하면서 일상을 버텨낼 에너지를 얻곤 했다.
그런데 정작 내가 일하는 곳 다음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인 내 집을 열심히 가꾸지 못했다. 집은 늘 어질러져 있었다. 그래서 집에서는 한 없이 무기력해지고, 늘 피곤함이 가시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더더욱 자꾸만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던 것 같다. 집에는 늘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청소 거리)이 산재해 있었고, 제때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어느 순간에는 내가 문제들에 압도당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최근에 친구와의 대화에서 잊고 있던 무언가를 되찾았다. 그녀는 외출보다는 집에 머무르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집에 있는 것이 너무 좋고, 집에만 있어도 너무 바쁘다고 했다. 외출해서 이곳저곳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그 말이 바로 공감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물었다. 집에 대체 무엇을 하길래 바쁘냐고. 그랬더니 친구는 집에서 매일 이곳저곳 쓸고 닦고, 가구도 옮기고, 밥도 해 먹다 보면 시간이 금방 흘러간다는 것이다. 그때 친구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집에서 하는 일들을 생각하며 활짝 웃던 친구의 표정을.
그때 나는 새삼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나의 일상을 소홀히 하고 있었는지를. 대청소는 분기마다 한 번씩 하는 정도였고, 스스로를 위해 직접 요리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가구를 옮기는 일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를 지탱하는 작고 소소한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몰랐다. 늘 자극적이고, 새롭고, 특별한 경험들만 쫓아다녔다. 그렇게 매번 익숙하지 않은 것만 찾아다니다 보니, 어느 것 하나, 어느 곳 하나, 마음 붙일 곳이 없었던 것 같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온전히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내 집이어야 하는데, 내가 집을 보살피지 않으니, 집은 나에게 당연히 위로가 되어줄 수 없었던 것 같다.
청소가 주는 기쁨, 일상이 주는 기쁨을 잊지 않고 싶어서 이렇게 기록을 남겨본다. 매일 열심히 쓸고 닦는다고 뭐가 달라질까?라고 의심하던 나의 생각이 오만했음을 반성한다. 생각보다 일상이 주는 힘은 크고 단단했다. 귀찮다고 늘 미루어두었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조금씩 일상을 되찾아 와야겠다. 앞으로 내가 다시 뛰쳐 들어야 할 세상은 너무 험난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