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독후감인 척 QWER 입덕기 시즌 2 #1
살다 보면 가끔 무언가에 꽂혀서 세상 모든 일이 그것과 연관되어 보일 때가 있다. 예를 들어 헤드폰을 하나 사기로 마음먹으면 마치 나 빼고 모두가 헤드폰을 쓰는 것처럼 헤드폰 쓴 사람들이 유독 눈에 띈다. 또, 헬스를 시작하고 나면 몸 좋은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보여 싫어도 일상적으로 운동 자극을 받으며 살게 된다. 주식을 시작하면 경제 기사가 더 눈에 들어오고, 일상 속에서도 경제와 관련된 맥락을 발견하게 된다. (다 포기하고 손주한테 물려줄 결심을 하게 되기 전까지는...)
나한테 그 '무언가'는 4월 중순부터 QWER이었다. 조금이라도 밝은 멜로디의 노래가 들려오면 <고민중독>처럼 들렸고, 성장 서사가 있는 이야기를 보면 자연스럽게 '성장형 걸밴드'인 QWER을 떠올렸다. QWER과 전혀 상관없는 책을 읽을 때도, 결국 기승전 QWER이 되고 말았다. 바로 며칠 전에 쓴 김이나 작사가의 <보통의 언어들>에 대한 독후감도 감상의 절반 가까이가 QWER에 대한 내용이 되었다. 진성 바위게(QWER의 팬덤명)라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이번에 읽은 오바라 가즈히로의 <프로세스 이코노미>라는 책 역시 읽으면서 QWER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히 '연상된' 수준이 아니었다. 김계란이 QWER을 기획할 때 이 책을 바이블로 삼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QWER의 기획은 책에서 말하는 '프로세스 이코노미'에 딱 들어맞았다.
그래서 결국 이 글은 독후감을 빙자해서 QWER에 대해 쓰는 글이다. 9월 23일(월) QWER의 미니 2집 <Algorithm's Blossom> 컴백을 앞두고 돌아온, 한 바위게의 QWER 입덕기 시즌 2인 셈이다.
'프로세스 이코노미'는 완성품을 판매하는 전통적인 '아웃풋 이코노미'에서 벗어나, 제작 과정 자체를 공유하고 판매하는 개념을 말한다. 이미 상향 평준화된 시장에서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 '더 나은' 완성품을 만드는데 집중하기보다는, '기존과 다른' 의미와 가치를 내세우고 이에 공감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키우는 방식을 제안한다. 물론 그렇다고 항상 과정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결국은 스토리와 철학이 담긴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바위게들은 단박에 알겠지만, '프로세스 이코노미'는 '성장형 아이돌 QWER'의 발걸음과 너무나 닮아 있다. QWER은 '더 나은' 완성형 아이돌이 아닌 성장형 아이돌을 지향하며, 여러 면에서 아이돌 씬에도 밴드 씬에도 낯선 '기존과 다른' 존재다. 그러면서 QWER만의 스토리와 철학이 있기 때문에 이 점에 공감하고 매력을 느낀 팬들은 인구 구성도 소통 방식도 일반 아이돌과는 다른 독특한 커뮤니티인 바위게라는 팬덤을 형성했다.
이런 '프로세스 이코노미'를 완성하는 QWER의 가장 큰 매력은 '서사'다. 이들은 책에서 말하는 아래와 같은 '시그니처 스토리'가 있고, 그게 아주 자연스럽게 전달이 된다.
시그니처 스토리는 '억지로 전달'해서는 안 되고 '자연스럽게 전달'되어야 한다. 듣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브랜드와 함께 걷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하는 이야기와 서사를 언어화해야 한다. 이로써 고객들은 기꺼이 모험에 함께할 동료가 되어준다. (후략)
프로세스를 공유하면 처음에 느꼈던 '공감'이라는 감정이 더욱 강해져 '열광'이라는 단계로 나아간다. 브랜드를 향한 '애착'은 이 브랜드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이어져 세상에 하나뿐인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 또 팬들의 수동적인 '신뢰'는 능동적인 '응원'으로 발전한다. (80 p)
QWER에 입덕하는 바위게라면 필수로 시청하는 게 <최애의 아이들> 시리즈다. 여기에는 QWER이라는 그룹이 기획된 배경부터 멤버들 한 명 한 명이 모여 한 팀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나온다. 뚱땅거리며 어설프게 합주하는 모습부터 시작해 데뷔하기까지의 전 과정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중간중간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멤버 4명의 캐릭터가 유머러스하게 표현되기도 하고, 실제 다큐 형식으로 멤버들의 고민과 진심을 담아내기도 한다. 한번 정주행 하고 나면 이들의 팬이 될 수밖에 없는, QWER의 성장 과정이 압축된 한 편의 대서사시다. 이렇게 '시그니처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전달'되기 때문에 시리즈를 보고 난 팬들은 QWER과의 모험에 기꺼이 함께할 마음을 갖게 된다.
하지만 거의 1년 전에 끝난 <최애의 아이들>이 프로세스 공유의 마지막이었다면 팬덤이 유지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커뮤니티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꾸준한 프로세스 공유, 즉 계속해서 새로운 떡밥이 필요하다.
데뷔 앨범 당시에는 떡밥이 많이 없었다고 한다. 데뷔 쇼케이스 이후로 공연은 '롤드컵 전야제'와 'AGF', 그리고 컨텐츠로만 접한 'Kstyle PARTY' 뿐이었고, 지금과 비교했을 때는 외부 컨텐츠 출연도 많지 않았다. 물론 그 사이에 '시요이 키우기' 같은 자컨(자체 컨텐츠)을 많이 만들어준 덕에 늦게 입덕한 나 같은 사람은 배불리 즐길 수 있게 되었지만, '밴드'인데 즐길 수 있는 '무대'가 없다는 건 확실히 아쉬움이 컸을 것이다.
지금은 모두가 알다시피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QWER은 '컴백'이라는 단어가 민망할 정도의 엄청난 활동량과 소통으로 끊임없이 자신들의 프로세스를 공유하고 있다. 6월 중순에 <마니또> 앨범 활동을 공식 종료하고 오는 9월 23일(월) 컴백이지만, 그 사이 약 3달간 진행한 무대만 20번이 넘는다. 주에 한두 번 자컨 혹은 외부 컨텐츠가 올라오고, 멤버들은 매일 같이 다양한 채널에서 일상과 연습의 순간들을 소통하며 알려준다. 최근에는 엄청난 명반으로 예상되는 미니 2집의 앨범 예약 구매에 이어 WHO.A.U 콜라보 의류까지 나와 바위게들의 통장 또한 기꺼이 텅장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의 바위게들은 떡밥이 넘쳐 따라가기가 벅찰 정도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매일 성장하는 QWER을 보며 '열광'하고 '유일무이'한 존재로 느끼고, '응원'하는 프로세스 이코노미 그 자체를 경험하고 있다.
물론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것은, 데뷔 앨범과 <마니또> 사이의 어려웠던 시기에도 포기하지 않은 QWER과 바위게가 있어준 덕분이다. 뒤늦게 이 프로세스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얼마나 어두웠을지 상상밖에 할 수 없는 시기를 견뎌준 QWER과 선배 바위게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 덕분에 지금의 QWER이 있고, 그래서 소속사 포함 멤버들과 팬덤 모두 지금의 성장에 한껏 더 뿌듯해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팀으로서의 성장도, 개개인의 성장도, 그리고 팬덤의 성장마저 서사인 게 QWER이다.
QWER은 처음부터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핸드싱크나 하는 게 밴드가 맞냐'는 게 대표적인 시선이었다. 이런 색안경, 편견에 대한 QWER의 답변은 데뷔 초부터 한결 같이 정면돌파였다. 핸드싱크 논란에 대해서는 50번이 넘는 공연, 특히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의 무대를 통해 증명해 냈고 지금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이제 남은 또 하나의 증명은 'QWER이 아이돌이 맞냐'에 대한 시선이다.
사실 모든 부정적인 시선에 대해 증명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밴드 정체성 관련해서도 핸드싱크 논란이 걷히니 바로 작사/작곡 능력에 대한 공격이 들어온다. 어느 날 그것까지 증명해내고 나면, 태생이 기획 밴드라는 것을 발목 잡을 사람들이 분명 나올 것이다. 어느 정도 시점에는 Haters gonna hate 하고 넘겨야지, 끊임없이 창의적으로 날아드는 모든 변수와 공격에 일일이 반박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렇게 온라인상 일부 사람들이 왈가왈부 하는 와중에도 QWER은 유명 브랜드들과 협업을 이어나가고 있고, 대학 축제/페스티벌/아이돌 무대 할 것 없이 다양한 자리에서 QWER을 앞다퉈 부르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이번 컴백 앨범에는 이미 내로라하는 K팝 아티스트들이 여럿 참여하기도 했다.
애초에 장르를 새로 개척한 이들을 억지로 기존의 장르 구분에 끼워 맞추려는 게 무리일지도 모른다. 태생이 남다른 만큼 밴드도 될 수 있고, 아이돌도 될 수 있고, 인플루언서도 될 수 있다. 협업하는 광고 분야도 게임, 음료, 의류, 섬(?)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새로운 과정을 보여주고 있고, 팬들과 함께 처음 보는 결과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렇게 QWER은 새로운 프로세스 이코노미를 형성해가고 있다.
그래도 'QWER이 무슨 아이돌이야'는 시선에 대해 한번쯤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밴드와 아이돌 씬 각각에서 계속해서 화제성을 보고 QWER을 부른다고 해도, 스스로가 어떻게 정의 내리는지에 대해서는 대중들이 궁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지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쪽은, 순수한 의문이기보다는 QWER이 아직 증명하지 못하고 남은 빈틈을 물고 늘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격에 공격으로 대응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대중을 상대하는 직업은, 안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도 평가의 대상이 된다. 아무리 무지성 비난이라고 해도, 안티와 똑같은 수준에서 맞서 싸우면 결국 가장 손해를 보는 건 공격을 당한 피해자인 공인이다. 'QWER은 가짜 아이돌이다!'라는 비난에 대해 '니들 따위 없어도 돼'라고 하고픈 마음이 들더라도 그렇게 표현해서는 안 된다.
생산자나 크리에이터들이 비판에 내몰리다가 급한 마음에 안티들을 공격하기 시작하고 점점 소수에게만 지지받는 상황에 이르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결국 눈에 보이는 결과를 내지 못한 채 '아는 사람만 알아주면 된다'는 식의 마음으로 프로세스를 공유하고 자극적인 내용에만 목적을 두곤 한다. 처음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180 p)
'우리 바위게들만 있어도 돼!'하고 무시하기에도 바위게는 아직 너무 두줌단이다. (어서 합류합시다!) 이렇듯 부정적인 시선에 대해 역공할 수도 없고 무시할 수도 없다. 애초에 그건 QWER의 방식이 아니다. QWER은 이런 시선에 대해 항상 제3의 길인 정면돌파를 선택한다. 꾸준한 연습과 무대로 자신들의 라이브 역량을 증명해 왔듯이, <가짜 아이돌>이라는 선공개곡을 통해 사랑을 주고받는 직업인 아이돌에 임하는 QWER만의 자세를 보여준다.
9월 2일(월)에 선공개된 QWER의 <가짜 아이돌>. 가사 한 줄 한 줄, 뮤비 한 장면 한 장면이 다 좋지만 지금 와서 노래 자체를 리뷰하기에는 너무 뒷북이다. 그래서 '가짜 아이돌' 논란에 대한 QWER의 정면돌파를 응축한 아래 가사만 살펴보며 오늘의 글을 마치고자 한다.
어쩌나 시끄러운 우리들
가짜라고 놀려대도
기필코 너에게 진심을 전할게
지켜봐 줘 우린 너의 I-IDOL
위 가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노래는 ‘QWER은 가짜 아이돌’이라고 외치는 안티팬들을 향하고 있다. 나를 드러내는 당당함이라는 측면에서 데뷔곡인 <Discord>와도 언뜻 닮아 있지만 결이 조금 다르다. 'Discord'는 낯선 존재인 QWER이 받아들여지기 위해 자신들을 소개하는 느낌이었다면, '가짜 아이돌'은 선언에 가깝다. 'Discord'는 '이것도 나야 나야 나' 하며 자신 있는 모습을 보이다 끝내 '내가 너의 최애라고 말해'하며 수줍은 모습을 보이는, 약간은 센 척하는 유리멘탈 느낌이었다. 그에 반해 가짜 아이돌은 '하나 둘 세상을 뒤집자', '우릴 막아설 순 없어'하며 진짜 강해져서 돌아온 기존쎄의 바이브다.
바위게로서는 이런 당당함이 정말 반갑다. 데뷔부터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좋아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실제로 QWER은 자신들을 충분히 증명해 냈다. 점점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노력은 더 하면 더 했지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충분히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가져도 될 존재들이다. 밴드뿐만 아니라 아이돌로서도,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와 의미가 있는 하나의 브랜드다.
안티들에게 날을 세우지도 않고, 밉지 않게 '기필코 너에게 진심을 전할게' 하며 삐뚤어진 마음마저 돌리려고 하는 게 QWER의 스타일이다. 공격하지 않고, 무시하지 않고, '열정, 노력, 성장'을 바탕으로 만든 무대로 보여주는 게 QWER의 프로세스다. 결국은 '가짜 아이돌'을 '가진짜 아이돌'로 바꾸고, 'FAKE IDOL'을 'FATE IDOL'로 바꿀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방금 한 말은 한 명의 바위게로서의 희망사항이기도 하지만, QWER 멤버들의 목표이기도 하다. <프로세스 이코노미>라는 책에서 QWER을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 아직 조금 더 남아 있다. 특히나 멤버들이 시작부터 지금까지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달려오고 있기 때문에 QWER이라는 새로운 프로세스 이코노미가 이렇게나 성공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 이어서 소개해보려고 한다.
우선은, 조금 전에 막 나온 따끈따끈한 <내 이름 맑음>의 첫 번째 티저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하자. 반주 없이 들리는 시요밍의 목소리, 히나의 소년 만화 여주인공 같은 미소를 보라. 아니, 이걸 보고 도대체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