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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듀이 May 28. 2020

코로나 시대의 백수는 어쩌다 스타트업

인생 나에게 왜이러나 몰라


백수는 여행도 좋아. 백수 픽 "월요일도 괜찮아" @유람위드북스, 제주.




코로나 시대의 백수

거대하고 딱딱하며 그 크기에 비해 지나치게 답답한 회사를 나온 지 한 달. 요가를 하며 마음을 추스리고 지친 에너지를 채웠으며, 온라인 다이어트 코치와 간간히 요가강사 생활로 하루하루를 채워갔다. 


잠시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코로나가 지속되고 신천지를 매개로 폭발적으로 확산되면서, 면접에 합격한 요가수업은 줄줄이 폐강되고, 수련하러 다녔던 요가원마저 긴 시간 휴식기에 들어갔다. 코로나와는 무관하게 반년쯤 쉴 마음을 굳힌 상태였음에도 나날이 가중되는 프리랜서의 어려움을 전면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익명의 요가강사 오픈채팅방에는 당장 월세를 포함한 생계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불안이 쌓여가고, 개중에는 수업을 이어가는 요가원이나 피트니스센터도 있었으나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맞게 돈으로 환산된 요가 강사의 가치는 점점 하락하고 있었다. 


나는 프리랜서, 엄마는 특수고용직. 우리 모녀는 매일같이 메세지와 전화로 서로의 불안과 행정의 공백에 대해 궁시렁궁시렁 떠들곤 했다. 매우 슬프게도 서로 비슷한 처지인게 매우 불행하면서도 누구보다 깊은 위로가 되었다.



어쩌다 스타트업

퇴사 직전, 회사 동료의 부탁으로 그의 지인에게 이력서를 한번 전달했던 적이 있었다. 2주가 지나도록 상대쪽에서는 연락이 없었고, 지칠대로 지친 내 머릿 속에서 그 기억은 별다른 감흥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날, 코로나의 확산과 함께 그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회사를 설립하느라 연락이 늦었다며 한번 미팅을 했으면 좋겠다고. 


웃음이 났다. 지치고 힘들어서 연봉을 포함한 근무조건을 낮춰서라도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겠다고 주말을 반납해가며 포트폴리오를 꾸미고 서류를 접수하고 면접을 보기를 여러번, 그 때마다 정말 갖가지 사정으로 이직의 기회가 닿지 않았는데, 이제와서 연락이라니. 참 타이밍이란 신묘하고 너무할 정도로 짓궂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허탈히도 웃었다.


아직 회사 디톡스가 더 필요한데, 그냥 거절하는게 좋을까하다 그래도 미팅은 해보자는 생각으로 대표와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2주 뒤 나는 그 회사에 새로 출근을 했다. 옮기고 싶었던 산업군 중 한 곳일 뿐만 아니라 근무조건도 전 회사 대비 좋아졌고, 동료들도 젊고 똑똑했다.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당분간 이런 조건을 다시 잡기는 어렵겠다는 불안감도 한몫했다. 물론 출근 후 맞이한 신생 스타트업의 대중없고 과다한 업무와 불안정성은 감내해야 할 부분이지만, 3개월차인 지금까지는 그마저도 재미있게 즐기고 있다.


돌아보면, 퇴사 직전에는 무조건 이직이 결정되어야만 퇴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약간의 완벽주의와 상당한 조급주의 속에 사는 각박한 현실속의 나에게 그 외의 다른 옵션은 없어보였다. 그래서 더 절망적이었고 그만큼 더 우울했었다. 이직의 타이밍은 소진되어가는 나의 에너지를 기다려주기에는 너무도 멀리 있었다. 그 아득함은 잔인했지만 그 절망 덕분에 퇴사를 결심할 수 있기도 했다.


그런데 퇴사하고 보니 우연찮게 한 달안에 이직을 하게 되었다. 하 거참.. 인생 너무 모르겠다. 밀당도 정도껏 해야되는거 아닌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일희일비없이 그저 하루를 묵묵히 살아가는 꾸준한 삶의 경이로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인생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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