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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듀이 Mar 26. 2020

버틸까? 나갈까? 퇴사 후 드는 생각들

퇴사에는 타이밍이 없다


정산할 돈은 남겨두자





"올해는 진짜 퇴사할 거야"

"유튜브 할 거야"

"인스타로 흥하면 돈 좀 되나"


장난스레 가졌던 생각들도 시간이 지나며 차츰 진지해졌다. 6년이 넘어 7년 차에 접어드는 회사생활 동안 내게도 여러 기회가 찾아왔었다. 이직, 사내 부서이동, 요가 강사라는 새로운 활로... 그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남은 답지라고는 '퇴사' 단 한 가지뿐이었던 순간까지. 그리고 나는 매 선택의 순간마다 회사에 남겠다는 결정을 내렸었다.


스스로가 능동적인 인간인 줄 알았는데, 이럴 때면 영락없이 진득한 피동성의 일인자가 된 것처럼, 회사에서 하루 종일 괴로움에 시달리면서도 마지막의 마지막이 올 때까지 섣불리 퇴사라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매달 고정적인 수입, 경제활동을 하는 사회 구성원, 혹은 제 밥 벌이는 스스로 하는 자식... 그런 것들이 아니더라도, 당장 내일 하루가 blank 상태로 비어버리면 나는 무엇으로 그 시간을 채워야만 하나,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친구들이 '그만 존버해라'며 놀려대도 겁쟁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선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내 선을 그어서 보여주는 용기

지나고 보니 이런 나의 '버티기'가 마냥 미련하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사내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사람들과 함께하는 을 연습했던 점이 특히 그렇다.


개중에서도 취향, 가치관,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이 나와 확연히 맞지 않는 사람과 하루 종일 붙어 있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었지만, 적당한 선을 모르고 내 영역까지 밀고 들어오는 사람에게 부드럽게 내 선을 그어 보여주는 방법, 무례한 사람에게 분명한 표현과 미소로 경고 사인을 보내는 방법, 그리고 퇴근 후에는 불쾌한 사람들을 내 머릿속에서 밀어내는 방법을 배우고 연습했다. (사실 지금도 열심히 배우고 있다)


반대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먼저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다. 호랑이 상사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하는 것, 회사라는 조직이 처음인 후배를 더 따뜻한 온도로 품어주는 것, 힘들어 보이는 동료에게 커피 한 잔,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


사람 바이 사람, 취향 바이 취향. 그 모든 다양함에 대한 인정과 존중을 기반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며, 일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체감했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것은 많은 이들의 협업이라 그 안에는 다양한 업무 스타일이 녹아들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프로젝트 완성이 내 목표라면,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업무 방식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소통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매번 늦는 사람에게는, due date를 좀 더 앞당겨 말하는 정도의 거짓말은 일상이 되었지만.)


그러다 보면, 그들의 업무방식, 나아가 그 사람 자체를 관찰하게 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괴롭기 때문에 지극히 날 위한 연습이다. 이 과정에서 가끔은 정말 이해 안 되는 '그 사람'의 행동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이런 수련 과정(?)은 회사 밖의 인간관계에서도 주변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무뎌지지 마요

지난 시간을 통으로 넓~게 보았을 때는 버티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분명 있지만, 잘게 잘게 쪼개어 단면을 보자면 진작 나왔어야 하는 이유들로 가득하다.


경력을 쌓기 어려운 단순 업무의 반복, 유리 천정이 극명한 직장, 개인의 성장에는 관심이 없을뿐더러 소속원을 비용으로 인식하는 경영진의 마인드, 술과 희롱이 난무하는 회식자리, 뿌리 깊게 박혀있는 기수문화, 상처 입고 회사를 떠나는 내 소중한 사람들까지.


아무리 '사회생활이 다 그렇지'라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인식하는 깨어있음과, '이제 점점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라며 무뎌지지 않는 것이다. 내 판단이라는 칼을 무뎌지지 않게 단련하는 것, 생각하는 것, 그리고 연습하는 것. 잃지 말아야 할 것은 내 자존감과 평화를 지키는 그 칼이다.


퇴사의 타이밍을 놓고 정말 오랜 고민을 했고, 더 이상 단 하루도 버틸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 퇴사를 하게 되었지만, 지나서 보니 언제 퇴사했어도 결코 후회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퇴사에는 타이밍이 없다. 

내 판단은 무조건 옳고 나는 행복하게 살 권리와 의무가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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