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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듀이 Mar 18. 2020

퇴사 전에 이 생각을 좀 더 했다면

조금은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물어봐주는 동료 사랑합니다




우리는 어디로 출근해서
어디로 퇴근하는 걸까?

매일 특정한 공간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 하루의 절반 가까이를 소비하고는 해가 지면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가는 곳. 졸음을 뚫고 출근해서 쓸데없는 일로 내리 지지고 볶다 화해의 결론을 도출하는 곳. 회사는 형체라기보다는 허상의 공간에 가깝다. 회사를 떠올리면 되려 기억 속 장면들, 주변의 공간, 주변의 사람이 남는다. 어쩌면 내 기억 속 그것들이 회사의 가장 중요한 점일지 모른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맡았던 업무들은 내게 남지 않을지언정 사람만은 곁에 남아서 위로가 되어주었다. 물론 존재만으로도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도 종종 있었지만,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고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동료들과도 마치 연애를 하는 것처럼, 감정 관계가 좋았다 나빠지기도 하고, 내 치부를 다 까발리며 이를 맹렬히 드러낸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 또한 지나고 보면 웃긴 추억으로 내게 남았다.


고등학교, 대학교, 인턴 그리고 즉시 취업까지. 매일매일을 숨 막히는 벼락치기처럼 살아온 내가 입사 후 처음으로 얻게 된 (단기적) 목적 상실이라는 여유로움은 매우 귀중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그만큼 회사생활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는데, 목적은 승진이나 연봉 상승이라기보다는, 지긋지긋한 취업시장에서 내 숨통을 틔워준 이 고마운 회사(사실 날 선택한 팀장님)에 하루빨리 적응하고자 함이었다.


회사와 일을 적군으로 둔
정예군처럼

우연히~ 같은 팀에서 만난 학교 선배는 '우연히'계의 약과라면, 매일 만나서 한 시간씩 수다를 떨어도 부족한 동료들이 있었던 건 필시 매우 귀중한 우연이자 내 복이었다. 몇몇 선후배가 알음알음 추천한 자리에 면접을 보기도 했고(아니 저랑 일해보신 적도 없으면서 일 잘한다고 추천을 해주시다니요?), 열댓 명이 우르르 강원도로 MT를 떠나기도 했다. 외세가 쳐들어오면 내부의 결속력이 더욱 강해지는 것처럼, 우리는 회사와 일을 적군으로 둔 정예군으로 뭉쳐 사방팔방을 함께하며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


퇴사 전 마지막 부서에서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위경련, 탈모, 체중감소를 포함해 각종 질병에 시달릴 때도, 이 '사람들' 덕분에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더니, 참말로 그런가 봐, 이런 웃긴 생각들을 하며 곁에 머물러주는 이들에 대한 감사함에 많은 힘을 얻었다.


사실 회사는 일인 줄만 알았는데 떠나고 보니 회사는 사람이었다. 이 회사가 내 인생을 망치러 온 히데코 아가씨처럼 느껴져도, 내 곁에 남는 것은 사람뿐이니 좀 더 버틸만해진다. 급변하는 경제 상황, 그에 따라 매년 바뀌는 기업의 성장 방향, 이를 둘러싼 세계정세 등은 예측할 수도, 내가 영향을 미칠 수도 없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사람과의 관계는 내가 최선을 다해볼 수 있는 부분이라는 점이 알지 모를 위안을 준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상대를 한번 더 생각하고 배려하는 것, 같은 말을 내뱉더라도 그의 입장에서 되내어보는 것. 어쩌면 사회생활은 나와 다른 인간에 대한 수련과정이라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 생각을 더 자주 되내었더라면 마음을 더 잘 보듬어가며 일할 수 있었을 텐데. 

물론 그래도 퇴사는 했겠지만.

헤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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