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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듀이 Mar 07. 2020

퇴사 후,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맺는 힘을 생각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신남에 대해

퇴근할 때까지는 하루가 시작된 것이 아니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싹 다 내 것이라니

하루를 온전히 내 것으로 쓴다는 것은 회사를 다닐 때는 잘 몰랐던 즐거움 중 하나다. 찢을 듯 울어대는 알람을 끄고 겨우 일어나 정신없이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고 회사에 도착해 쏟아지는 이메일을 스쿼시 선수마냥 쳐내다 보면(헉헉), 어느덧 빌딩 밖 차들이 켜켜이 쌓인 테헤란로에는 땅거미가 졌다.

나의 진짜 하루는 그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이를 기쁘게 맞을 틈도 없이, 허겁지겁 회사를 빠져나와 친구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꽐라가 되어 하루를 마감하거나,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아무런 에너지도 남지 않은 채 프라이팬 위에 펼쳐진 계란마냥 침대 위에 널브러지며 나의 하루는 엔딩을 맺었다.

퇴사와 함께 자연스레 회사에 저당 잡혔던 나의 시간들을 차츰 회수할 수 있었다. 정신없이 지나쳤던 시간들을 다시금 찬찬히 뜯어보고, 또 가득 채워보았다.

새벽에 극세사 이불 커버에 얼굴을 맘껏 부비며 일어나 따뜻한 차 한 잔으로 몸을 데우는 여유, 내가 원하는 시간에 보고 싶었던 사람을 찾아가 대화할 수 있는 자유로움, 24시간의 비중을 운동과 일, 취미, 휴식으로 분배할 수 있는 융통성... 매일 동일하게 내게 주어지는 시간을, 매번 다른 버전으로 재구성해서 채워나가는 기쁨은 실로 굉장했다. 내 하루가 온전히 내 것이라는 낯섦, 그리고 만족감.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은 마치 영원하다는 듯 나를 기다려주는 것 같았다.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 강한 기쁨만큼이나 묵직한 아쉬움이 늘 가슴 한편에 자리했다. 왜 회사에서의 시간은 무참히 버려두고 ‘괴로운 시간’이라며 덮어놓았던 건지, 이렇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한껏 밝아지고 희망이 차오르는 마음인데, 왜 진작 내 마음을 챙기지 않았는지, 왜 더 다양한 방법으로 나와 대화해보지 못했는지, 하는 후회였다. 그러니까, 타고난 우유부단함과 결단력 부족으로 진작 해방되지 못한 마음에 대한 일종의 미안함이었다.


나를 가장 잘 위로해줄 수 있는 건, 바로 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크게 다르지 않은데, 회사라는 틀 하나 없다고 이렇게 백지장 뒤집듯 마음의 온도가 차이 날 수 있는 걸까, 스스로의 변덕이 너무나 우습게 느껴졌다. 마음먹기, 마음 살피기, 마음 챙기기가 이렇게 하루를 달라지게 할 수 있는 걸까- 하는 놀라움을 계속해서 덧대어 갔다. 나 자신은 스스로가 자주 들여다볼수록 강해진다는 것을, 그래야 회사든 가족이든 돈이든... 어떤 외적 요인에도 흔들리지 않고 뿌리가 굵어지고 마음이 안정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시간들이었다. 삶의 바쁨에 치여 스스로를 내버려 두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겠다고 다짐한 나날들이었다.

‘살아가는 자’로서의 마음을 다지는 것이 이렇게 어렵고도 쉽다. 하루에 나 자신을 위한 잠깐의 여유도 가질 수 없어 어렵고, 그 마음을 마주하고 나면 좋은 생각을 채우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아서, 감히 쉽다고 말할 수 있다.

하루가 하나의 따옴표라면 여는 따옴표와 닫는 따옴표를 어떤 방식으로 찍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 내 마음에 공을 들일수록 하루의 오프닝이 경쾌했고, 그 클로징이 무엇보다 만족스럽고 감사했다. 이런 방법을 배워가는 시간이 내 인생에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이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강인함, 그것만 있다면 내가 지구의 어떤 면적을 차지하든 꽤 버틸만한, 아니 꽤 즐거운 삶이 아닐까. 그러니까 내게, 퇴사는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던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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