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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듀이 Oct 09. 2020

뫼비우술의 띠

과음과 숙취의 반복을 거듭하면서


뭐니뭐니해도 최애는 참이슬



그러니까 이 생각은 장기하의 첫 에세이 [상관없는거 아닌가]의 한 에피소드에서 시작되었다.


소주를 취하려는 목적이 아닌 '맛'을 즐기고자 먹는다는 그는, 아마도 소주 맛이 나는 무알콜 음료가 나온다면 그를 사 먹을 의향이 있다는 생각을 적었다. (이후에 다시 또 아닌가? 하는 생각을 남기기도 했지만)


- 아니요, 저는 무조건 취하고 싶습니다. 취할 때까지의 그 과정을 늘 반복하고 싶어요.


행복했던 순간은 영상이 아닌 한 장의 그림이 되어 머릿속에 남는다. 이 그림을 인덱스 삼아 고스란히 저장되는 것은 그 날의 음악, 온도, 조광, 이야기, 그때의 마음을 아우른다. 무료한 날이면 침대에 덩그러니 누워 그런 기억의 장면들을 거듭 꺼내어 되뇌는 것을 좋아한다. 그중 제일은 단연코 술과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며 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던 기억들이다.

그러니까 왜 취하고 싶냐면, 붉은 기운이 살짝 올라 약간 상기된 볼을 하고는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각자의 이야기를 치열하게 나누었던 순간들이 꿈같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 내 마음은 두둥실 두둥실 몽근해 진다.


귀여운 사람들이 술을 먹으면 귀여움이 배로 농축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 그 귀여움 사이에 박혀있다 보면, 다른 차원의 세계에 정착한 느낌이 든다. 세상에나, 이런 정당한 마약이 또 있을까. 아무 장벽 없이 각자의 이야기 목소리 높여 꺼내어 올려둘 수 있는 곳이 술잔 앞이 아니면 또 어딜까.

한 컷으로 남은 술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달큰한 침이 고이고 패인 보조개는 더욱 깊어진다. 그러다 보면 냉큼 카톡창을 열어 다음 순간을 당장에라도 기약하고 싶어 진다. 어느덧 나는 사람들 사이에 다시, 소주병 사이에 다시, 기 막힌 안주들 사이에 다시 앉아있다.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나는, 절대 출구를 찾고 싶지 않은 뫼비우술의 띠를 한 없이 유영하는 중이다.


오늘은 누구랑 또 한 잔 기울여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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