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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듀이 Dec 29. 2020

올해만 세 번째 회사

연차 쌓였다고 방황하지 말라는 법 있나요


얼마 전, 우연히 건강보험 자격 취득/상실 내역을 보고는 동공이 흠칫 쪼그라들었다. 올해만 하더라도, [A 직장가입자 - 지역가입자 - B 직장가입자 - 지역가입자 - C 직장가입자]라니. 하놔 이게 뭐람. 그 사이사이에 녹아든 고민과 눈물은 보이지도, 기억도 나지 않고, 세상 이렇게 서류가 지저분해도 되나 싶어서 나도 모르게 헤유- 하고 탄식을 내뿜었다. 


 예,, 사춘기 맞아요,,,
다들 인생에 여러 번 겪는다는 그거...

꼬박 6년을 꽉 채우고 7년 차에 접어든 회사를 퇴사할까 말까, 할까 말까, 해 말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브런치에 드문드문 퇴사 일기를 남긴 것이 올해 초 아주 추운 겨울날들이었다. 어느덧 다시 겨울이 찾아왔고 나는 올해에만 두 번의 퇴사를 하고 세 번째 회사를 만나게 되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중학생 때 겪어 지나가는 사춘기를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야 맞이했던 느린 나라서, '일하는 사람' 으로서의 사춘기도 이렇게나 늦게 맞이하는 걸까. 산 따라 구름 따라 흘러가는 게 인생이라지만, 올해는 밖으로는 코로나, 안으로는 어떻게 살 지에 대한 고민으로 참 정신없던 날들이었다. 


커뮤니케이션과 경영을 전공했다.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꿈은 뒤로하고, 일단 가장 먼저 오퍼를 준 로펌에 입사했다. 퇴사하고는 잠시 다이어트 코치와 요가 강사로 일하다, 갓 태어난 스타트업에서 주인 없는 일들을 마구잡이로 내 일주머니에 담았다. 그러다 보니 줄줄줄 치렁치렁 질질질.... 헤지고 터져버린 주머니에서 다 깨져버린 멘탈과 함께 뒤섞인 다양한 일들이 호도도독 떨어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좋아하는 일을 많이 하면서
돈은 더 많이 벌 거야!

밥을 벌어먹고 산 지는 꽤 되어가는데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어떤 일을 잘하는 사람인지, 그 일은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거듭 자문할수록 답을 찾지 못해서 슬퍼졌다. 열심히 바쁘게 살아왔는데, 왠지 그렇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져.. 하다, 아니 난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 맞는데? 하고 주먹을 꽉 쥐었다. 인생은 길고 할 일은 많다 이거야,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라는 말을 덕담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잖아, 난. 응, 그렇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고 긍정하고 믿고 다져가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이 사춘기를 어느 정도 통과했다는 느낌이 든다.


두려움을 내려놓고, 좋아하는 일 혹은 점점 좋아지는 일을 찾자, 그게 몇 번의 시도가 되더라도, 계속. 이라고 결심하고 다시 세 번째 회사로 들어왔다. 이 곳에서는 그간의 사회생활이 내게 남겨준 경험을 양분 삼아 그동안 꿈꿔온 '좋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일한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과 부대껴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어쩌면 제격일지 모른다. 동료들이 더 잘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일, 서로가 서로의 성장을 복돋는 문화를 차곡차곡 쌓는 일, 철학과 액션이 얼라인되는 구성을 고민하는 일. 이렇게 다시, 커뮤니케이션과 경영이라는 시발점으로 돌아왔다. 잠시 접어뒀는지도 모를, 내 일을 통해 세상에 보다 더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으로 변화해가리라는 목표를 곱게 펴본다.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무엇으로 내 삶을 채워야 할까, 내 어떤 역량으로 회사가 기대하는 바를 채울 수 있을까에 대한 계속된 고민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왔다. 어쩌면 또 다른 일터를 찾아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 과정이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님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강요된 고속 성장은 기필코 탈이 나게 마련이다. 이제는 내 속도대로 움직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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