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픽스의 창 밖 너머로
창틀을 액자 삼아 완연한 가을이 군더더기 없이 담겨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생동하는 명화가 아주 잘 보이는 창 앞 테이블에 앉아있다. 귓가에는 다정한 멜로디가 맴돈다. 음 아무래도 이건 쳇 베이커 같아- 라는 생각을 하며 음악 검색을 해보니I get along without you very well, 역시나 알아들을 수밖에 없는 이 목소리. 크으 취한다 취해~~
지금은 수요일 오후 1시.
일주일을 반으로 접으면 딱 지금 이 즈음이다.
스태픽스의 문간을 스쳐 들어오는 바람은 팔에 살짝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시원하고, 그 한기를 창밖의 포근한 햇빛이 자연스레 품어주니 참 아늑하다. 찬란히 나부끼는 은행잎과 그 뒤로 무던히 유영하는 구름들이 보이고, 내 마음은 맬랑맬랑 도곤도곤해질 밖에.역시, 급작스레 연차를 내버리고 스태픽스로 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서촌으로 떠나는 하루짜리 가을여행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맘, 그렇게 나는 이 곳으로 밀려왔다.
사실 나는 요즘 가을앓이를 제법 오래 하고 있다. 몸 어딘가에 구멍이 슝슝 난 것처럼, 여기저기서 힘이 줄줄 샌다. 온몸으로 가을을 타는 중이다.이 병에 스스로 내린 처방은 가을이 가득한 곳을 찾아 한껏 이 계절을 내 몸에 흠뻑 채워버리는 것, 그러니까 이 가을을 질리도록 바라보는 극도의 사치를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멍 때리며 가을을 바라보다 보니, 이 계절이 흘러갈 수밖에 없는 것이, 두 번은 상영되지 않는 이 시간의 영화가 아쉬워 온몸이 달다.
이렇게 리프레쉬하면 다시 회사로 갈 힘이 생긴다거나 일상이 새롭게 보인다던데, 나는 뭐, 여전히 회사는 가급적 안 가고 싶고, 너무 급속도로 변하는 세상을 따라가는 게 버겁다.
내일도 내 일상은 그대로일 것이며, 여전히 인간의 삶은 고단하다고 생각한다.사실 개중에서도 제멋대로 변하는 내 속이 참 꼴 보기 싫은데, 이 오락가락한 감정을 차분히 바라보다 보면, 그게 또 그대로 온전한 인간의 마음인가 싶다.
성자도 아니거늘 어찌 마음까지 컨트롤하겠나,
가을이 오면 가을을 타듯, 겨울이 오면 겨울을 타고, 봄과 여름에도 그렇게. 내 방식으로 각 계절을 파도마냥 타버리면 그만이다. 너무 애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생각하니, 이렇게 가을이 지나가도 썩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 변덕을 어찌할까.
창 밖 가득한 가을 오후의 볕이 참 온화하다. 올해 가을은 스태픽스에서 이렇게 흘려보낸다. 주변에는 책과 음악 가구 카메라 사진이 둘러 쌓여있고, 저 멀리 전축과 턴테이블도(그러나 음악은 아이패드에서), 옹이 짙은 이 테이블도 너무 마음에 든다.
계절을, 사람을, 추억을, 한 때를 흘려보낼 수 있는 나만의 장소를 갖는다는 것은, 작지만 든든한 안식이 된다. 위안이 된다. 도피처가 된다.
이왕 이렇게 생각하는 거, 몇 군데 더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