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듀이 Aug 28. 2021

당신, 탁월한 리더와 일하고 있나요

탁월한 리더는 무엇이 다른가를 읽고서



'리더'라는 말속에는 '최소 두 사람'이라는 함의가 숨어있다. 조직을 이끌어 나간다는 것은 필시 follower가 있는 것을 전제로 함은 물론, 최소 두 사람의 관계가 형성됨을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리더십이 관계에만 집중한 나머지 전략을 놓쳤다는 학문적 풍토의 흐름을 아쉬워한 김성준 교수의 탄식은 어찌 보면 당연한 종착지가 되는 수순이다. 


잉태와 동시에 어미와 한 몸으로서의 일체적 관계를 맺는 인간은, 출생을 기점으로 부모와 가장 첫 번째이자 상대적 관계를 맞이하며, 이후 가족, 친구, 사제 등 숱한 관계를 맺고 또 끊어내며 성장한다. 덕분에, 거시적으로 보자면 리더는 그저 '한낱 스치는 인연 중 하나'로 가정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나와 리더와의 관계는 태초에 부모와 맺은 관계와 형태적으로 유사하므로 그렇게만 치부해버리기는 어렵다. (개념적으로는) 나의 성장을 함께 도모하며, 나와 밀접하고, 매우 큰 영향을 미치지만, 나의 의지만으로는 끊어내기 어려운 일종의 강제적 관계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리더-팔로워의 관계는 우리의 뼛속까지 깊게, 또 익숙하게 베여있다. 고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회사 새내기조차 리더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을 정도로, 누구나 한 마디씩 툭하니 던질 수 있는 각자의 '리더론'이 탄생하는 것이다. 누구나 말할 수 있지만 서로 간에 100% 일치할 리 없는, '리더의 당위성에 대한 한마디'가 난무하는 이유가 된다.


리더가 된다는 것은 서로와의 관계를 가지고 무한히 계속되는 농경작 실험을 반복한다는 것에 가깝다. 당연히 각 리더가 가진 토양과 기질에 따라 자라나는 싹과 열매의 맛과 모양은 달라질 테고, 내 리더가 내놓는 열매가 별로 내 취향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안 맞아서 끝' 인가? 그럼 딱 내 스타일인 탁월한 리더는 하늘이 내리는 것인가?


그렇게 바란다면 더욱이 탁월한 리더를 찾기 어렵다. 괜찮은 리더를 만나는 행운이 단지 리더에게만 달려있는 것은 아니다. 선의가 있다면 리더와 나는 함께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할 수 있다. 물론 날 때부터 인간말종인 인간이 나의 리더라면 최대한 벗어나는 게 답일지도 모르지만. 


누구에게나 첫 사수, 첫 팀장, 첫 부서장의 경험이 있다. 리더도 리더가 되기 싫었을 수 있다. 리더도 비오고 차 막히면 출근하기 싫다. 리더도 스스로 리더를 어떻게 하는건지 잘 모른다. 게다가 팀원 각각의 '리더론'이 다르기에 몇 권의 책으로는 따라가는데 한계가 있다. 즉, 내 리더가 만인이 인정하는 '탁월한 리더'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리더와 나 사이에 선의와 호의만 있다면, 몇 번의 농기를 지나면서 수확하는 열매의 모습도 작황의 좋고 나쁨도, 또 그에 대한 나의 취향도 점차 성장하고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


탁월한 리더는 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를 탁월하게 만드는 것에는 동료들의 몫이 8할이다. 

작가의 이전글 슬픔에 대한 회복탄력성 상승시키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