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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듀이 Sep 25. 2021

인간은 꼭 성장해야 하나요?

이기적 직원들이 만드는 최고의 회사를 읽고



빳빳이 다린 블라우스에 정장치마 그리고 앞 코가 막혀있는 구두. 또각또각. 어색한 걸음을 이끌고 첫 출근이란 것을 했다. 구성원의 영혼까지 뿌리내린 딱딱한 위계질서, 암묵적으로 지켜야 하는 무수한 룰들, 엘리베이터를 탔으면서 본인이 근무하는 층 버튼조차 누르지 않는 꼰대들. (당신의 얼굴을, 게다가 당신이 어느 층에 근무하는지를, 제가 대체 어떻게 알아요?, 아니, 당신은 나를 아시나요?)


스며듦이란 정말 소스라치게 놀라웠다. 처음 겪는 조직 고개를 갸웃대던 병아리는 사라지고, 어느덧 후배에게  블랙진은 안되는지(청바지라서!),  민소매는 안되는지(심한 노출이라서!!),  일면식도 없는 어른들에게 내가 먼저 인사를 해야 하는지(신입이라는 이유로!!!) 설명하는 n년차 닭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속에선 잔뜩   의문이 드문드문 고개를 들었지만, '남거나 떠나거나'   하나뿐인 선택지를 마주하자면  그저 눈을 감는 방법을 택했다.


어느 날 돌아보니 나는 회사에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삶의 모든 재미는 회사 밖에 있었고, 얼굴로는 미소를 속으로는 욕설을 내비쳤으며, 회사에서 벗어나 내 시간을 1분이라도 더 확보하고자 점심을 자주 걸렀다. 입사 후 나는 1cm라도 자랐을까 의문스러웠다.


소중한 자신을 갉아먹지는 말자는 생각에 퇴사  역할 조직으로 적을 옮긴  2, 나는 그동안 HR 관련된 업무들을 하며 일을 대하는 진정한 마음 배웠다. 돌아보면 업무에 애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해진.. 새삼 놀라운 변화다. 가급적 관성에 따르지 않고 어떻게 하면  , 명쾌하게, 효과적으로 업무를 해낼지 고민의 끈에 집착한다.  일을 이렇게 다루는 것이 정말 옳은 방법인지, 최선인지, 한번 ,    진정한 마음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마주하는 일들은  스스로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보완해나가는 과정이며,  나은 회사를 만들고자 하는 고민들엔 그동안 생각했던 다양한 방법론을 접목할  있게 된다.


손안에 쥐게 되는 것이 많으니 당연히 그만큼 책임이 따른다. 업무 설계와 진행, 그리고 실수에 대한 수습, 보완, 개선책까지도 내 몫이다. 가끔은 과분한 무게에 잠을 설치기도 하지만, 결국은 내가 해낼 것임을, 좋은 결론을 낼 것임을 믿는다. 근거 없는 믿음이지만 그래도 한 가지, 좋은 결과를 장담하는 이유를 꼽자면, 진정한 마음으로 임했을 때의 실수는 전방위적인 수습이 필요할지언정, 인간에게 상처를 남기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끝없는 성장 추구형 인간으로서, 이런 모습으로 역할 조직에 적응한 내 자화상이 좋고 만족스러운 편이다. 성장할 수 있는 한, 이 바닥에서 더 굴러보고 싶다.


다만, 역시 역할 조직이 답인가? 하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위계 조직이 지배하던 한국사회에 실리콘밸리의 문화와 역할 조직과 같은 개념이 들어오면서 자꾸 의문스러워지는 , 그들이 ‘성장 무조건 적인 전제로 보는  같아서다. 나야 성장 추구형 인간이기 때문에  변화에 꽤나 만족한지만, 성장에 그리 열을 쏟지 않으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떤 조직이 맞는가? 인간이 성장하고자 하는 것은 본능이 아니며(성장이  자아의 실현인가? 하는 질문도 함께), 드라이브가 될만한 보람찬 일을 (당연히) 영영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고, 업에 대한 만족도를 측정하는 기준은 모두 다르다. 사실 결국 인간 개개인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를 일관된 룰로 묶으면 부작용이 빼죽댈밖에.


그렇다면, 이젠 어떻게 이렇게나 다양한 사람들을 조직 안으로 품을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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