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란 반복해서(re-) 찾는다(search)라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 만약 어느 바닷가 모래사장에 다이아몬드가 숨겨져 있다면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물론 방법은 간단하다. 다이아몬드가 나올 때까지 바닷가 모래사장의 모래를 파내면 된다. 즉 리-서치하면 된다. 그런데 리서치를 하는 과정에서 일단 모래를 한주먹 파냈는데 그 자리에서 다이아몬드가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팠던 모래를 그 자리에 다시 덮어야 할까, 아니면 팠던 모래를 다른 곳으로 치워두어야 할까? 당연히 팠던 모래를 다른 곳에 치워두고 팠던 자리는 그대로 흔적을 남겨두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연구현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팠던 자리를 아무도 모르게 덮어버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고 나서 다른 곳을 또 파기 시작한다. 이와 같이 진행하다 보니 자신이 팠던 자리를 다른 사람이 또 파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이전에 팠던 자리를 자기가 또 파고 있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것일까? 팠던 자리에서 다이아몬드가 나오지 않은 것을 '실패'라고 부른다. 다이아몬드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 팠던 자리를 모든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면 그 팠던 자리는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가진다. 왜냐하면 그 자리는 어느 누구도 더 이상 다시 팔 이유가 없음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실패의 자산화'이다.
"나는 실패하지 않는다. 다만 만 가지 틀린 방식을 발견했을 뿐이다."라는 에디슨의 말처럼 실패를 불성공으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실패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그 실패는 감추어질 수밖에 없고, 감추어진 실패들은 동료 연구원들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도 다이아몬드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글로벌 표준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지식체계(A Guide to the Project Management Body of Knowledge)에서는 이 문제를 조직 프로세스 자산(Organizational Process Assets, OPA)으로 해결하고 있다. OPA란 프로젝트 수행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계획서, 가이드라인, 절차서뿐만 아니라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쌓아온 노하우, 경험, 데이터베이스, 성공사례, 실패사례, 교훈(lessons learned), 이력정보(historical information) 등을 포함한 모든 지적 자산을 의미한다.
지식정보가 자산이 되기 위해서는 아카이브(archive)되어야 한다. 아카이브란 책들을 아무렇게나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책에 라벨을 붙여 도서관의 책장에 비치한다는 뜻이 있다. 지식정보가 아카이브 되면 다수에게 공유가 가능하고, 이와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문화와 인프라가 갖추어질 경우 모래사장에서 다이아몬드를 더 효율적으로 찾아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작금에 회자되고 있는 공유 사회가 지향하고 있는 이상적인 방향일 것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 선진국에서도 많은 연구결과들이 제대로 아카이브 되지 않아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에 동일한 실험이 30% 이상 중복 수행되고 있으며, 30% 중복 실험 중 99%가 이미 실패한 실험의 반복이라고 보고된 바 있다. 실패를 인정하는 선진국의 경우가 이 정도 수치인데, 실패한 사실을 드러낼 수 없는 우리의 연구 생태계에서는 그 수치가 얼마나 클지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최근 들어 연구 수행 과정에서 기록되는 정보를 온라인상에 축적하여 관리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전자 연구노트(Electronic Lab Notebook, ELN)가 국내외에서 개발되어 보급되고 있으나, 아직 공유와 검색이 용이하지 않은 기초 단계이며, 대부분 영리 기업에 의하여 전자 연구노트 시스템이 개발 보급되고 있기 때문에 연구지식정보의 공유 범위가 제한적인 실정이다. R&D 체계의 퀄리티를 한 단계 격상시키기 위해서는 연구지식정보 공유체제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