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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티 Sep 05. 2024

어느 무명 작가의 젊은 날들

폴 오스터의 <빵 굽는 타자기>

어떤 작가는 장소로 사람들과 연결된다.


1980년대 뉴욕 브루클린에 이름난 작가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 예술가의 도시로 첫 손에 꼽히는 그곳은 당시 미국의 흔한 빈민가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토록 볼품없던 빈민가가 어떻게 예술가들의 성지이자 요람이 되었을까.


그곳에 폴 오스터가 산다. 독자들은 책에 나오는 그 마을에서 지내고 싶어졌다. 그의 소설이 탄생한, 혹은 배경이 된 장소를 내 발로 밟아보고 싶었다. 그 동네 사람들이 이웃이면 좋을 것이다. 올해 4월 폴 오스터가 타계했을 때 뉴욕타임스에 메일을 보낸 한 시인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주변의 모든 부모님의 책장에는 폴 오스터의 책이 있었고 10대 시절 나와 친구들은 그의 책을 열정적으로 읽었다.' 


뉴욕에 아무 연고도 없는 나 역시도 그의 뉴욕 3부작 시리즈 소설에 반해버렸고, 그의 원작 소설로 만들어진 영화 <스모크>를 몇 번이고 돌려보는 팬이 되었지만, '폴 오스터'라는 광산이 이쯤에서 끝날 리가 없다. 진짜 보석은 더 깊은 곳에 숨겨져 있다. 그의 목소리가 생생한 에세이. 특히 <빵 굽는 타자기>에는 작가들이 가장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경험담이 담겨있다. 


바로, 돈문제이다. 

이 세상 모든 작가들의 숙제인 밥벌이의 괴로움. 과연 어떻게 글을 쓰면서 생계를 이어갈 것인가. 혹은 전업작가가 될 때까지 어떻게 버틸까에 대한 고통과 고민, 괴로움 그 피곤함. 폴 오스터는 그렇게 돈에 허덕이던 과거를 '내가 산산이 부서져버린 시절'이라고 표현했다. 태생적으로 돈이 되지 않는 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고단함이란 걸출한 작가에게도 예외가 없다. 그런 비린 내 나는 현실 따위를 굳이 꼭 써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는 했다. <빵 굽는 타자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 나는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를 겪었다.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글 쓰는 일은 수렁에 빠졌으며, 특히 돈 문제에 짓눌려 허덕였다. 이따금 돈이 떨어지거나 어쩌다 한번 허리띠를 졸라맨 정도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노상 쩔쩔맸고, 거의 숨 막힐 지경이었다. 영혼까지 더럽히는 이 궁핍 때문에 나는 끝없는 공황상태에 빠져있었다.


그는 알았다. 문제의 근원은 그가 작가가 되려 한 것에 있다. 이 모든 것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으며 스스로가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은 대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세상 모든 고난을 짊어진 성자인 척할 틈이 없었다. 이럴 때 우리를 지탱해 주는 것은, 유머일지 모른다. 그는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나아갔고, 유머는 한결 그 문제를 가볍게 바라보게 도와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힘들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1. 극단적 소비 생활에서 얻은 것들


폴은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대공황기를 지나온 세대였지만 그 상처를 견디는 방식은 젼혀 달랐다. 아버지는 '인색했고' 어머니는 광적인 쇼핑을 즐기는 '헤픈' 사람이었다. (꼭 이 문제가 아니어도 부모님의 전혀 다른 성향은 결혼의 미스터리다. 자라면서 이렇게 다른 부모님이 어떻게 만나셨을까 궁금할 때가 있었다.) 두 세계관은 부딪혔고 가정 불화의 원천이었다. 그 사이에서 나름의 줄타기를 하는 과정들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사실 어머니한테 이끌려 흥청망청 사대는 것도 즐거웠지만, 아버지와 함께 싼 물건을 찾아다니는 재미도 그에 못지않았다. 나는 두 분께 똑같이 충성을 바쳤고, 어느 쪽 진영에 가담할 것인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적어도 재미와 흥분이라는 점에서는 어머니의 방식이 매력적이었지만, 아버지의 고집스러운 태도에도 나를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전혀 개의치 않는 듯이 보이는 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부아가 치밀 때도 있었지만, 귀중한 가르침을 얻을 수도 있었다. 결국 나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스스로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관심을 기울인 것 같다....
나는 정말이지 <그 부모에 그 아들>이었고, 부모님의 세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원칙에 한 번도 의문을 품은 적이 없었다. 이 세상은 돈이 말한다. 돈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돈의 주장에 따르면, 인생의 언어를 배울 수 있다.

 

돈에 대해 이렇게 솔직하게 표현한 소설가가 있었을까. 하지만 인정하기 좋든 싫든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돈을 살피면 인생의 언어를 배울 수 있다. 어릴 적부터 폴은 동네를 돌아다니며 낙엽을 치우거나 청소 같은 일일을 구해서 알바를 했다. 그의 표현이 재미있다. 

'일거리가 있는 곳에는 내가 있었다.' 


2. '분별 있는' 결정과 잡일 사이


작가들의 글쓰기와 '생계를 위한 일' 사이의 이중생활은 어제오늘 얘기도 아니다. 가방 끈이 좀 길다면, 대학에서 문예창작과에 한 자리 얻어 강의를 하는 길이 있다. 교직은 흔한 해결책일 수 있다. 그 한 자리를 얻으려고 작가와 시인들이 벌이는 끊임없는 쟁탈전은 늘 치열하다. '누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폴과 함께 공부한 문학청년들은 모두 장래에 대해 분별 있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친구들은 그렇게 분별 있게 행동했는데, 왜 나는 그렇게 무모했던 것일까?'


컬럼비아대를 다녔으니 원한다면 친구들처럼 '분별 있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학교는 그만하면 충분히 다녔다고 생각했고 너무 평온하게 지내기를 원치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일의 대부분은 육체노동이었다. 웨이터, 공사장, 접시닦이... 등 공통점을 찾자면 머리 쓸 일이 별로 없었다는 것. 

궁금해진다. 글쓰기 외의 다른 일을 할 때 흔히 따라오는 그 불안에 시달리지는 않았을까.


일 자체는 단조로웠을지 모르나, 나한테는 양쪽 다 만족스러웠다. 주위에는 별의별 성격을 가진 사람이 많았고, 놀라운 일도 많았고, 수용할만한 새로운 생각도 많았는데, 어떻게 일이 힘들고 지겹다고 투덜거릴 수 있겠는가.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돈도 중요했지만,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일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일을 하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배우고, 세상에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 


폴의 관심은 오직 자신이 누구인지를 배우는 일에 있었다. 세상에 나가서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궂은일을 하면서도 원고를 써서 계속 출판사에 보냈다. 번번이 거절되었고, 그는 스스로를 야망은 있지만 재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3. 월급 받던  첫 일에 대하여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고 외국에 나가 생활을 하면서 그는 번역을 맡기도 했지만, 충분한 돈은 아니었다. 절망적인 처지에서 과거의 전철을 밟지 말자고 몇 번씩 다짐을 하곤 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방식을 버리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다가 정기적으로 봉급을 받은 일자리를 만난다. 어느 모로 보나 썩 괜찮은 일자리였다.

소설과 평론을 쓰는 작가이며 미술품 수집광이자 출판사를 경영하는 아서 코헨이라는 사람에게 채용된 것이다. 온통 책과 자료들, 귀중품들로 빽빽한 그의 사무실 <엑스 리브리스>에서 도서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 폴의 주 업무였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박물관이나 아방가르드에 바쳐진 작은 성전에서 일하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희귀본들을 내 손을 만지고 인류의 지성의 기록들 사이 페이지를 넘기는 그 일의 흥분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존 레논이 만 레이의 사진집을 보고 싶다며 찾아올 정도의 명소이기도 했다. 아서는 그에게 무척 잘해주었다. 하지만 그와의 관계에서 폴은 본질적인 차이를 인식하고 결국 그 일도 그만둔다.


이런 사실은 아서가 사장이고 나는 시간당 몇 달러짜리 고용인에 불과한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아서는 이익을 얻는 데에서 즐거움을 얻었고, 사업을 경영하여 성공시키기 위한 노력을 즐겼다 그는 세상 물정에 밝은 사람일 뿐만 아니라, 아이디어의 세계 속에서 그 세계를 살고 있는 진정한 지성인이기도 했지만, 교활한 장사꾼이라는 사실을 결코 감출 수 없었다. 정신생활과 이윤추구는 분명 양립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나 자신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한테는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정신생활과 이윤추구를 얼마든지 양립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없었다. 세계를 구태여 두 진영으로 나눌 필요도 없었다. 실제로 그들은 두 진영에서 동시에 살 수도 있었다.


나의 세계에서 불가능한 일들이 때로 다른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너무 당연한 것 같지만 이런 경험들에 충격을 받는 일이 종종 있다. 스스로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거나 아쉬워할 때도 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 선택이 내가 나인 이유일 수 있으니까.

폴 오스터도 그런 충격을 받았다는 것에 위로를 얻는다. 안정과 편안함을 선택하지 않았기에 그토록 생생하고 흥미로운 인물들을 책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4. 스스로 입증하고 싶었던 삶


그렇게 여러 일들과 원고 거절의 반복된 나날 들 속에 어느 날, 딱 한번 만난 적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받는다. 출판사를 차리려 하니 있는 원고가 있으면 달라고 해서 보냈는데 마음에 들어 한다. 그리고 출판된다. 

일이 너무 순조롭게 처리되어서 기쁜 한 편으로 그는 불안했다고 적었다. 혹시 함정이 있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여기서 한번 더 막판 스파트를 내서, 페이퍼백 출판을 위해 여러 출판사들에게 더 거절할 기회를 준다. 그런 끝에 채택되어서 드디어 거절 메일의 종지부를 찍게 된다. 

고된 세월이었지만 폴 오스터는 자신을 작가로 만들어주는 삶을 타협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직관적인 선택은 고되고 험난한 현실이 되었지만, 그것이야 말로 폴오스터가 폴오스터가 된 이유이다.


나는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잡문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결국 그것 때문에 인생의 낙오자가 되었지만, 거기에는 어떤 낭만적인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가령 나 자신을 아웃사이더로 선언하고, 훌륭한 인생에 대한 일반 통념에 휩쓸리지 않고 혼자 힘으로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은 욕구 같은 것. 내 입장을 고수하고 물러서지 않으면, 아니 그렇게 해야만 내 인생은 훌륭해질 터였다. 예술은 신성한 것이고, 예술의 부름에 따르는 것은 예술이 요구하는 어떤 희생도 치르는 것, 목적의 순수성을 끝까지 지키는 것을 뜻했다.


한 시대의 막을 내려주는 것 같은 죽음이 있다. 올해 폴 오스터의 부고 소식이 그렇다. 나는 최근에 읽었던 그의 산문집을 떠올렸고, 그가 그렇게 부지런히 원고를 남긴 덕분에 아직 열지 않은 페이지들이 남겨진 것에 감사한다. 

아직도 브루클린 어느 골목 모퉁이를 돌면, 담배가게로 향하는 폴 오스터가 서있을 것만 같다.


Tom Waits - Innocent when you dream (영화 Smoke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IEIJxddLD3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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