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리티 Sep 09. 2024

거리에서 '케플러' 코드를 만나면

고단했던 프라하의 궁정 수학자, 요하네스 케플러

거리는 종종 눈치게임을 품고 있다.


발길이 뜸한 어느 골목 모퉁이, 작은 글자가 보인다. 간판 자리 맨 밑보일 말듯 써있다. 

'kepler 00'.


카페는 아니고, 작업실인가 했는데 작은 출판사였다. 수줍은 소녀의 고백처럼 겨우 보이는 글씨. 플래카드를 내 걸 정도로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숨길 수가 없다. 누군가 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일종의 눈치 게임. 

'케플러를 아시나요, 혹은 좋아하세요?' 

행성의 운동 법칙을 발견해낸 과학자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이다.


철학자 칼 포퍼는 자연과학을 태동시킨 세 명의 지식인 -동시대인 갈릴레오와 케플러, 그리고 뒤를 이은 뉴턴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케플러를 꼽았다. 대개는 근대 과학의 아버지, 뉴턴을 떠올리지 않을까? 그때부터 였다. 케플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오늘날 미신은 과학의 반댓말 혹은 과학으로 타파해야할 어떤 것처럼 여겨지지만, 인류 역사상 그토록 위대한 과학자들이 어느 정도는 '미신'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갈릴레오는 자연적 원운동을 믿었고, 성서의 깊은 연구자이기도 했던 뉴턴도 역사를 저술하면서는 미신의 원칙에 따랐으며, 케플러도 점성술에 엮여서 갈릴레오를 비롯한 많은 동료들에게 비난받았다.  

하지만 그 중에서 미신의 독단적 행태에 저항한 것은 케플러가 유일했다. (점성술은 당시 봉급받는 천문학자의 의무이기도 했는데, 케플러는 점성술을 '훌륭한 천문학의 어리석은 어린 딸'이라고 표현했다.) 칼 포퍼는 '자기비판적 점성술사'였다는 표현을 썼는데, 케플러는 별자리가 말해주는 운명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설파했다. 이러한 자기비판적 성향은 그의 연구에서도 드러났다.


케플러는 세 명 중 가장 호감 가는 성격에 열린 마음, 겸손한 태도까지 갗추었습니다...
세 사람 가운데 케플러만이 유일하게 연구를 완성했으며, 또 유일하게 모든 연구 과정을 정직하고 양심적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케플러는 자신에게 지적 영감을 준 코페르니쿠스의 대범한 아이디어들이 탈레스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타르코스, 프롤레마이오스에 이르는 고대 그리스 사상가들에게서 기원했음을 간파한 유일한 인물입니다. 
갈릴레오와 뉴턴과 달리 케플러가 자신의 실수들(뼈를 깎는 어려움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는 실수들)을 직시하고 그로부터 뭔가를 배울 수 있었던 건 바로 그의 겸손함 덕분이었습니다.

-칼 포퍼,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중에서


시행착오를 인정한다는 것.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이거나 인생을 걸고 매진해온 어떤 결과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를 인정하기가 쉬운 일일까. 엎기엔 너무나 아까운 것이기에 대개는 그 잘못을 덮거나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가 더 쉽다. 하지만 깨끗이 실수였음을 인정하고 극복함으로써 케플러의 3법칙을 완성했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시행착오 끝에 도달한 것이다.


1604년 케플러는 화성의 공전궤도가 원형이 아니라 타원형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행성들은 태양을 한 초점으로 타원궤도를 가진다는 케플러 제 1법칙이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와 코페르니쿠스 체계에 존재하던 수십개의 원이 모두 사라지게 하는데 2000년 가까이 걸렸고, 인류는 드디어 오늘날 우리가 아는 행성의 실제 궤도를 그리게 된 것이다.


케플러가 진리를 발견한 기쁨을 누리는 순간도 잠시, 그는 또 하나의 문제를 떠안게 된다. 

궤도가 왜 하필 타원형이란 말인가? 찌그러진 듯한 그 모양은 아름답지 않고 불완전하다. 게다가 부등속 운동을 하는 행성이라니 이 또한 아름답지 못하다. 진리는 아름답게 떨어지는 어떤 것이 아니었나.

케플러 자신도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을 뿐더러, 동시대 지성들인 갈릴레오와 데카르트조차도 이 타원궤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렇게 강렬한 반대에 부딪힌다면 물러서야 할까. 이제껏 케플러가 극복해온 시행착오들의 또다른 연장선일 뿐일까. 여기서 케플러는 직관을 밀고 나간다. 그 질문을 고민하다가 그는 케플러 2법칙을 발견한다.


보이지 않는 신의 수학적 조화가 있을 것이라는 케플러의 신념은 이 정도 난관에 좌절될 수 없었다. 그리고 케플러는 다행히 그것도 찾아냈다....행성의 가속과 감속에 수학적 규칙성이 있을지 모른다! 케플러는 이 생각을 끝까지 진행시켰다...행성과 태양을 연결시킨 직선은 동일 시간에 동일 면적을 휩쓸고 지나갔다!...지구도, 화성도, 나아가 여섯 행성 모두가 이 가정을 철저히 따르고 있었다. 케플러는 안도했다. 비록 타원궤도였지만 그 역시 그 타원궤도는 철저히 수학적규칙성을 머금은 채 움직이고 있었다. 신이 수학적으로 우주를 창조했음은 분명했다.   

- 남영, <태양을 멈춘 사람들> 중에서


당대 사람들에게 너무 낯설었던 타원궤도의 불완전성을 파고든 끝에 그 안에서 다시 수학적 규칙을 발견했다. 낯선 불규칙 속에서 찾아낸 새로운 방식의 규칙성이었다. 

케플러의 화성궤도 계산 기록은 무지막지한 수작업이었다. 미적분도 계산기도 없던 시절, 깨알같은 숫자들로 종이는 뺵빽이 채워졌다. 행성 궤도의 타원부채꼴을 무수히 작은 삼각형으로 나누어 그 합을 계산하는 끔찍하게 지루하고도 복잡한 작업의 연속인 나날들. 세상의 위대한 일들은 이루 말로다 할 수 없는 지루한 과정을 통과해낸 결과일 때가 많다. 이렇게 발견하고도 책으로 나오기까지는 또 9년이 걸렸다. 그렇다면 케플러는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었을까.


케플러는 프라하의 궁정 수학자로 임명되었지만 적자 재정을 핑계로 급여 연체가 잦았고, 그에게 자료와 도구를 제공한 협력자 튀코의 사람들과도 신경전을 벌여야했다. 주기적으로 원치도 않는 점성술로 황제의 기분을 맞춰줘야 했고, 기타 임무도 수행해야 했다. 시대의 지식인들은 그의 이론을 계속 물고 늘어졌다. 가정사 역시 평탄치 않았는데, 아버지는 폭력적인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약물 제조에 몰두하여 후에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며 동생은 간질 환자였다. 아내는 프라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우울증이 심해져 후에 죽음에 이르며, 자식을 여럿 잃게 된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연구에 몰두한 끝에 케플러의 1,2법칙 이후 10년이 지난후, 50세가 되었을 때 케플러 3법칙을 완성하게 된다. 

그 후에도 여전히 종교 정치 분쟁 속에 자신의 신앙을 돈으로 바꾸지 않았기에 늘 투쟁해야 했고 밀린 급여를 받으려고 길을 떠나야 했고, 주어진 잡일들에 시달리다가 결국 객사했다. 


바깥에서 그처럼 강렬한 폭풍이 휘몰아쳐오는데 어떻게 케플러는 그 혼돈 속을 뚫고 나갈 수 있었을까. 

칼 포퍼가 그토록 케플러를 높이 평가한 것은, 시행착오를 다루는 태도와 직관에 대한 믿음이었다.


직관없이는 그 어떤 진일보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직관이 틀린 것으로 드러난다고 해도요. 우리에겐 직관과 아이디어, 가능하면 서로 상반되는 아이디어들이 필요합니다. 또한 그 아이디어들이 어떻게 하면 비판받고 개선되고 엄중하게 검증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도 필요하고요.  그 아이디어들이 논박당하는 그날까지 (아니 그 이후로도 쭉), 우리는 진위가 되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계속 연구해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최고로 뛰어난 아이디어도 의심을 품을 여지가 있게 마련이니까요. 

-칼 포퍼,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중에서


길을 걷다가 뜻밖에 마주친 이름, 케플러를 보면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직관으로 나아가는 용기.

틀렸을 때 인정하고 배울 수 있는 태도.

그리고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여전히 세상에 살아있는 '케플러' 코드이다.


Solutions - Sounds of Universe

https://www.youtube.com/watch?v=a4Jk3FjFyLw





이전 14화 어느 무명 작가의 젊은 날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