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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N Jan 27. 2019

엄마의 치맛바람에 존경을

아이의 경험 확장 이면에 존재하는 것

엄마의 치맛바람에 존경을

아이의 경험 확장 이면에 존재하는 것



새삼 낯 뜨거운 일이지만 한 가정의 첫아이로써 지금까지 받아온 혜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가 겪는 모든 것은 나에게 처음인 것이 당연하지만, 엄마에게도 엄마가 되는 것이 처음이니까.

처음들엔 좀 더 각별하고 신중하고 치열하며 예측 불가능한 특징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유별난 엄마였지"

거실에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엄마의 멘트이다.

또 엄마의 자기 자랑 대회가 개최되었구나 하며 웃어넘기곤 했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대사는 열중하지 않은 사람에겐 주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타인들이 나에게 하는 칭찬 중 가장 의외라고 생각하는 것이

"너는 갖고 있는 자원이 많다"이다.

빈털터리에 제 밥벌이나 하면 다행인 나에게 가지고 있는 자원이 많다니?

물론 금전적인 부분을 두고 하는 소리는 아니고 리소스, 원하는 목적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재료를 말한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가공하는 것을 좋아한다.

주야장천 사방팔방의 것이 관심사요 읽을거리 볼거리이다. 항상 레퍼런스를 달고 산다.


안다는 건 정말 즐겁고 놀라운 일이라고 설파하고 싶다.

내 의견일 뿐이지만 배움이라는 건 동전 뒤집기처럼 쉬운 일이 아닐까.

궁극적으로 딱 2가지 변수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과 아는 것.

배움에는 3.3% 원천징수 같은 것이 없다. 오롯이 내 것이 된다는 점이 가장 맘에 든다.

(내 머리가 엄청나게 좋다고 자랑하려는 속셈이 아니다. 그렇게 좋았으면 카이스트에 가 있겠지.)


이렇게 잡다한 걸 두 손 가득히이고 지고 다니는 게 온전히 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성향 뒤에는 엄마의 유별난 육아 열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엄마는 어려서부터 내가 새로운 경험 속에 놓이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시했다.

타고나길 울보에 겁이 많고 내성적인 아이라 사람을 피하고 모르는 장소를 무서워했는데(지금도 여전하다.)

엄마는 혼자서는 좀처럼 행동하지 않는 나를 데리고 온갖 곳으로 현장실습을 떠났다.


덕분에 나는 전설이 된 픽사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인 토이스토리를 극장에서 보는

영광을 얻은 네 살짜리 꼬맹이가 되었고,

백화점 문화센터 과학실험 클래스의 우등생이 되었으며,

색채의 마술사 샤갈과 빛의 화가 모네를 좋아하게 됐다.

형편이 그리 좋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바이올린, 피아노, 컴퓨터, 재즈댄스, 미술학원에 한꺼번에 다녔다.

어렸던 나로서는 견디기 힘들었던 스파르타식 교육열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지금의 내가 딛고 서있는 모든 것의 기반은 엄마의 열혈 기동력인 것이다.


덕분에 나는 다양한 환경들에 노출될 수 있었고,

보다 많이 느끼고 보다 많이 생각하는 아이로 자랄 수 있었다.

길거리에 나서면 눈에 들어오는 간판이나 자판기 등 모든 것들에 검지 손가락을 들며

"엄마 저거 미야?(뭐야?)"라고 물어보는 통에 설명하느라 애를 먹은 적이 많았다고 한다. 

귀찮을 만도 했었을 텐데, 세상을 눈높이에 맞게 차근차근 설명해 주던 엄마의 말투가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쉬는 날 아이를 데리고 전시를 관람하러 간다는 것은 노동이며 인내력 테스트다. 상상해보자.

전시장까지 가기 위해 깨우고 씻기고 입히고 먹이며 코스를 알아보는 일련의 뒤치다꺼리는 단순히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의 영역이 아니고 실제의 행동이 수반되어야 하는 일이다.

생각을 실천함에 따르는 변수란 머릿속의 동그라미를 종이에 그리는 것과 같다. 생각처럼 안된다는 말이다.

찡찡거리는 아이를 데리고 전시장에 당도하니 사람이 터지도록 많다거나 휴관일이라거나.

흥미를 유도할 수 있을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멀리까지 나왔는데 전시 내용이 영 실속이 없다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볼 수 있었던 것,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것들은

모두 엄마의 치맛바람 덕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치맛바람이라는 단어가 버젓이 통용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과유불급이라고들 하지만 아무나 일으킬 수 있는 바람은 확실히 아님에.

너무나도 당연히 누리고 있었기에 '엄마는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냐'

라며 성내곤 했던 배은망덕한 과거의 나를 반성한다.


되갚을 길이 없는 엄마들의 치맛바람에 존경과 찬사를.

모든 어머니들이 그런 것도 아니고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것도 당연한 게 없음을.





LEN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인스타그램: lotus_hee_illust

메일: choyeonhee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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