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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재숨 Oct 25. 2019

역경을 헤치고 별을 향하여

 애드 아스트라 Ad Astra (2019)



' Per ardua ad astra '

역경을 헤치고 별을 향하여

- 라틴어 속담





4일간의 페스티벌이 끝난 후, 나는 어안이 벙벙하고 얼이 빠져 있었다. 잠들지 못하고 밤을 지새웠지만 생각보다 피곤하지 않았다. 긴장은 풀리지 않았고 여전히 각성되어 있었다.


무작정 영화관에 가고 싶었다. 역동적이었던 페스티벌과는 정반대로 정적인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어서 빨리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집에 가고 싶단 생각은 없었다. 실은 내 안에선 아직 페스티벌이 끝나지 않았고,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애드 아스트라는 광고로도 접해본 적 없던 금방 개봉한 영화였다. 브래드피트와 디카프리오가 함께 나오는 ‘원스어폰어타임인 할리우드’가 동시 상영 중이었지만, 그날의 그 분위기는 애드 아스트라의 포스터에게 매료되었다. 같은 브래드피트가 아니었다.


그렇게 들어간 평일 오후의 영화관에는 예상했던 대로 나를 포함해 4명 정도의 관객이 있었고, 나는 맨 뒤편 중앙에서 마치 영화관을 대관한 듯한 기분을 가득 느끼며 영화를 관람했다.




[ Movie MEMO ]


자기 파괴적


무덤덤하다


I should feel something


Are u with us?


모든 지적 생명체를 언제쯤 다 찾게 될까?


탐험 비행이 때론 탈출이 될 수 있다는 것


How do u feel?


내가 당신일까요?


그는 없는 것만 찾았고, 문 앞에 있는 건 보지 못했다.



[ Movie Diary ]

우주가 배경인, 지금과 그리 멀지만은 않은 미래의 이야기에서 영화의 시작은 주인공의 자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주인공은 나지막한 내레이션으로 자신을 풀어나간다. 우주비행사인 주인공은 어떠한 상태와 환경에서도 침착하고 안정적이어야 했기에 심리검사를 수시로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로 인해 타인을 의식해 온 말과 행동. 우주비행사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그는 언제나 '척'해야 했다. 행복한 척, 괜찮은 척, 긴장하지 않은 척, 자연스러운 척. 자신의 깊숙한 곳에서의 모습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온갖 타의적인 안정감으로 채워져 있다.


예상치 못한 공감으로 시작했던 영화. 여름부터 유난히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았고 그런 나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집중하지 못하는 것인지, 마음 한 구석이 아픈 건지. 내가 나를 모르겠으니 더 답이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온전히 내 자신일 수 없어서 나는 있어도 없었고, 웃어도 웃는 게 아니었다. 요즘 경험하고 있는 부분은 사회에 섞여 협업을 하는 과정에서 나를 잃지 않고 온전한 모습으로 '일'을 해나갈 수 있는 건 정말 쉽지 않다는 거다. 일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는 한 명의 업무 처리자로서 몫을 해내면 되는 것인데, 그 업무에서 자아를 분리시키는 것이 어려웠다. 일주일에 다섯 번, 하루의 절반을 일 하는 인간에게, 자아와 일을 분리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니면 단지 나라는 사람이 그게 어려운 걸까?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일과 능동적인 태도로 임하는 일은 현저히 차이가 난다. 지금껏 진심에서 시작된 일로 내가 나를 뛰어넘는 경험을 해왔고 그것이 곧 사는 이유였다. 일터에서 무너지는 경험이 있었다면 내 의지로 바꿀 수 없는 것들 속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접어두고 주어진 일을 해나가야 했던 것, 그건 업무에서 ‘나’라는 자아를 분리하지 못했기에 따르는 불만족스러움과 괴로움이었다. 내게 일은 꿈의 일부였으며, 돈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가치였기에 이해관계와 선택의 기준은 언제나 '가치와 보람'이었다. 오래전부터 하고자 했고 꿈꿔왔던 일에서도 만나는 수많은 역경들.


우주비행사라는 꿈을 이뤄온 주인공에게도 '시험'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는 일을 계속하기 위한 조건으로 언제나 자아와 일을 분리하는 훈련을 해왔다.


 '그는 없는 것만 찾았고, 문 앞에 있는 건 보지 못했다.'

자신이 던진 질문의 답을 우주 한가운데에서 찾고 있는 아버지를 만났을 때 던진 대사이다. 결국 '정해진 답'은 지구 밖에도 없으며, 오히려 내 안에 '나만의 답'이 있다.


한 과정의 끝자락에서, 나는 결코 퇴근을 원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나라는 사람은 퇴근 후의 시간과 성취감만으로는 일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일을 하는 시간도 곧 삶이다. 그러니 꼭 음악이나 예술이 아니더라도 내 삶이 될 수 있는, 삶이 되어도 스스로 괜찮을 일을 하고 싶다. 진심이 담긴 일을 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일이 되지 않고 삶이 되는 것. 진심을 담기 위해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 내게 보람이란 혼자만의 만족을 넘어 다른 사람들과 공간 또는 사회에 더 나은 방향으로 '기여'를 할 때이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영감을 받고 새로운 것을 느끼거나 잊었던 소중한 것을 상기할 때 나는 꽤 행복했다.


크고 작은 선택에서 비롯되어 마련된 지금의 환경이 모두 '중간'지점에 있다. 청춘은 결론이 아닌 과정이다. 지금의 모든 것이 종착지가 아님에 감사하다. 과정에 있음이 너무나 분명해서 그것이 때때로 힘이 된다.

과정에서 체험한 것들을 통해 나는 또 어떤 선택을 하여 어떤 환경을 만들어나갈까?


과정은 결국 미완성이다. 미래의 나는 미래의 내가 알겠고, 지금의 나는 미완성 속에서 내 안에서 시작된 선택들로 살아가고 싶다.





삶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가까운 사람들과 의지하며 살면 되죠.

그들의 짐을 나누고

그들은 내 짐을 나누면서.

나는 살아갈 거고

사랑할 겁니다.

_Ad Astra의 마지막 내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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