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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 Aug 08. 2018

직장생활

갑자기, 생각지 못하게 일을 하게 되었다. 9시까지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그런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성실하게 생활해야 하는 종류의 일이었다. 돈은 없었지만 이렇게 본격적인 일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그래도 어쨌거나 스스로에게 좋은 방향이 아닐까 해서 일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현재 5개월째가 되었다. 처음엔 아침에 일어나는 것 자체, 아니 밤에 다음 날을 위해 일찍 잠드는 것부터가 어려웠다. 적응이 되고 나니 점점 여유 있게 출근하고 하루를 버티는 감도 생겼지만 여전히 끔찍하게 지루하다. 말단 중에 말단이고 기한이 정해져 있는 직원이라서 인지, 내 마인드가 글러먹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직장생활의 하루는 잡은 물고기를 물에 넣었다 뺐다 하는 식의 인내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과 비슷해 보인다. 시계를 보며 ‘퇴근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매 순간 계산하고 있는 내가 싫다. 


결재 시스템이 싫다. 평소에 잘 쓰지 않는 행정용어부터 시작해서 지켜야 하는 형식, 딱딱한 표현, 첨부문서 저장 시 결재자가 보기 좋게 첫 페이지에 커서를 두고 저장하는 디테일 같은 것이나 결재 문서함을 평소에 잘 살펴서 부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해야 하는 것도 어려웠다. 나는 그릇이 작은 인간이라는 걸, 직관적인 것을 선호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지만, 깨달으면 뭐하나 할 수 있는 건 그런 나 자신을 누르고 적응하는 방법뿐인데. 그리고 사실 하다보면 내가 올리는 결재문서 종류는 몇 안 된다. 그러나 결재 문서를 작성할 때마다 가슴이 갑갑했다. 이 네모나면서도 각진 척하지 않는 굴림체의 세상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모두들 이 시스템을 잘 활용하고 있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게 좀 불편하고 슬프기도 했다. 


할 일이 없는 시간이 끔찍했다. 나 빼고 모두들 열심히 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주어진 일 끝났다고 인터넷 쇼핑을 하거나 트위터를 하며 놀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할 일이 없어 놀더라도 적당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소심하고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내 옆자리 대리님은 언제나 파워 열일모드로 한 시도 쉬는 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바로 옆에서 대기모드라도 지키며 앉아 있어야할 것 같았다. 그게 괜히 ‘예의’같았다. 그래서 정적이고 티 나지 않는 딴짓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전자책리더기를 샀다. 정 일이 없으면 전자책리더기를 켜놓고 뭐라도 보는 척 하며 글을 따라 적어보거나 아니면 진짜로 책을 읽었다. 종이책보다는 딴짓하는 느낌이 덜 들기 때문에 선택한 방법이기도 하고, 당시에 전자책리더기에 꽂혀서 구입했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건 그리 중요한 얘기는 아니다. 어쨌거나 나는 일기를 쓴다든가 필사를 한다든가 하는 조용한 딴짓을 했다. 초반엔 사무실 정리를 하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자 그마저도 할 일이 없어져 버렸다. 할 일을 찾는 게 내 일이었고, 주어진 일 외에는 떠넘기지 않는 상식적이고 책임감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나는 근무시간의 틈을 메울 수 있는 다른 할 일은 찾지 못했다. 못 찾아서 좋기도 했지만 미치게 지겹기도 했다. 

그룹웨어 결재 문서함을 바탕화면처럼 띄워놓고 일기장에 ‘집에 가고 싶다....’같은 쓸모없는 말이나 끄적거리며 붙박이처럼 앉아있는 그 시간이 나를 갉아먹고 있다고 느꼈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나는 혼자 깎여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런 감정이 싫다. 수면 위는 평화로운데 물밑에서는 뭔가 잘못 되고 있는 스릴러 영화 도입부 같은 무언가. 얼굴은 아무렇지 않은 척, 열심히 하고 있는 척, 상당히 괜찮은 척 하고 있지만 사실은 명치가 오그라들고 다리를 잠깐도 가만 두지 못할 만큼 불안한 상태 말이다. 다른 사람들의 타자 소리와 클릭 소리가 ‘너는 역시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어쩌면 꼼꼼히 문서들을 확인하고 궁금한 것이나 도울 일이 없는지 물어보는 것도 좋겠지만 그러면 아마 지금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해내며 자존감에 가득 찬 상태일 수도 있겠지만, 문서를 확인하는 순간 그냥 다 어렵고 결코 도울 일 따위는 없어 보이는 게 현실이었다. 나는 말단의 말단 몇 달 뒷면 이 자리에 없을 사람이니까.


기간이 정해져 있다는 게 그렇게 중요해? 응, 중요하다. 중요하긴 한데 그렇게까지 내가 그 사실에 골몰해서 비관하고 우울해하는 사람이 되는 게 문제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근데, 그렇게 여겨지건 말건 중요한 건 중요한 거라고 생각한다. 젊고, 지금의 일을 경력으로 다른 더 조건이 좋은 일을 찾게 될지 모르니까? 그건 그때의 일이지 지금의 일이 아니다. 내가 언제 지금의 일을 경력 삼을 거라고 한 적이 있었나? 사람들은 현재를 미래의 자본 혹은 투자처럼 생각한다. 나는 지금 일했던 경험을 더 개발할 생각이 없다. 없어졌다. 안 맞는다는 걸 알았고 내게 주어진 일들에 감사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적성을 떠나 인력에게 기한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그 인력이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부서에서 아무리 내년도 사업 계획을 세운다 한들 나랑 무슨 상관인지 스스로 설득이 안 된다.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스쳐가는 사람이다. 스쳐가는 순간 동안 감당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이게 단순히 내가 감정적으로 비관적이고 우울해서 인가?


내가 우울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내가 못난 인간이란 것도 알고 있다. 나의 우울과 비관과 못남을 부정하려고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나를 위해 사는 방법을 찾고 있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에게 정리해주고 싶어서 글을 쓴다. 자신을 위해 꾸준히 하는 일들이 계속 늘어나길 바라며 글을 쓴다. 싫은 것들을 늘어놓고 내 생각이 맞지 않냐며 따져 묻는 재수 없는 내용을 적게 되더라도 나는 내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 나의 오늘이 나를 위한 오늘이었으면 좋겠다. 당장 실현할 수 없더라도 끊임없이 갈구하는 사람이고 싶다.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인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에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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