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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영 Jan 06. 2021

Olly: 음악에는 과거의 추억이 담겨있다

일상에서 모아진 음악 스트리밍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

사진, 메모, 서류, 음성 녹음 또는 문자 메시지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모인 일상의 정보는 그 당시에는 소소하고 재미없어 보일지라도 훗날 돌아본다면 과거에 일어났던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디지털화된 서비스가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될수록, 일상에서의 활동을 통해 생성되고 저장(Lifelogging)되는 아주 많은 양의 데이터가 생긴다. 네이버 지도나 구글맵 또는 페이스북의 위치 태그처럼 날짜별로 세세한 위치 데이터가 축적되기도 하고, 건강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유저들은 매일매일의 수면 패턴 및 운동 기록이 서버에 저장되는가 하면,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이 네이버 클라우드 또는 애플의 iCloud에 차곡차곡 쌓여 좋은 추억거리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는 마치 읽지 않은 이메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메일함처럼 그 방대한 양에 압도되어 들여다보는 것조차도 외면해버릴 때도 있었을 것이다. 데이터를 의미 있게 포장하여 사용자에게 "선물"해주는 서비스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사용자가 알게 모르게 쌓이는 데이터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 측이 사용자의 이용 패턴을 분석해서 마케팅에 활용하는 등 거의 대부분 서비스 제공자의 입장에서 독점적으로 쓰여왔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이 묻어있는 거대한 양의 데이터를 어떻게 하면 의미 있게 활용할 수 있을까?


이번 글에서는 위의 질문에서 영감을 얻어, 음악이라는 방향에서 접근한 연구를 소개하려고 한다.




음악은 우리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누군가는 음악을 통해 치유를 받기도 하고, 누군가는 음악 안에 다른 사람을 위한 메시지를 담아 전달하기도 한다. 굳이 의미를 담지 않더라도, 우울한 날 신나는 기분 전환을 위해서 또는 행복한 날에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마법을 선사해주는 것이 음악이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현재 우리가 음악을 접하고 소비하는 방식은 크게 달라졌다. 고전적인 축음기, LP를 거쳐 카세트 플레이어, CD의 시대를 지나 현재 우리는 형체가 없는 디지털 데이터의 형식으로 음악을 소장한다. 더 나아가, 음악을 굳이 소장하고 있지 않더라도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수백만 곡을 터치 몇 번으로 바로 들어볼 수 있다.


해외의 한 데이터 분석업체가 진행한 2015년의 조사에서, 2015년 상반기에만 YouTube, Spotify, SoundCloud 등 유명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종합한 총 스트리밍 횟수가 약 1조(one trillion) 번 이상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 무려 5년 전에, 단 6개월 만에 몇 개의 플랫폼에서만 천문학적인 수의 음악이 재생되었다. 전체 사용자를 바탕으로 낸 통계이고, 이용 횟수가 많은 것은 당연하므로 숫자가 과장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음악을 소장하지 않고 이용하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 시점부터 현재 이 글을 읽고 있는 시점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음악을 들었을까? 아마 못해도 수만 번, 음악을 자주 들으시는 분들은 수십만 번쯤 되지 않을까?


디지털 음악 스트리밍을 이용하면 여러 가지 흔적이 남는다. 같은 곡을 듣더라도, 언제 이 곡이 재생되었고, 재생된 위치, 가수 정보, 앨범 등 여러 가지 메타데이터(Metadata)[1]가 어딘가에 저장된다. 스트리밍 플랫폼에 따라 그 정보가 사용자의 개인 계정에 저장될 수도 있고, 사용자가 볼 수 없더라도 어딘가의 데이터센터에 저장되는가 하면, 재생 기록을 하나씩 전부 기록하여 통계를 내주는 Last.fm이라는 서비스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 글에서 소개할 프로젝트에서, Last.fm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Last.fm이라는 서비스는 2002년에 영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Last.fm 계정에 여러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연동하면, 음악이 스트리밍 될 때마다 어떤 곡이 언제 재생되었는지 정확한 시간 정보(timestamp)와 함께 제목, 가수, 앨범 등의 메타데이터를 기록한다. 그리고 쌓인 데이터를 분석하여 아래와 같은 여러 가지 통계를 보여준다.


 Last.fm의 대시보드에서는 최근에 스트리밍으로 들었던 음악을 가장 최근 곡부터 차례로 보여준다.


 Last.fm의 연간 통계.


사용자의 음악 패턴을 분석하여 다양한  통계 그래프를 보여준다.


스트리밍을 통해 축적된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해야 청취자에게 의미 있는 경험을 안겨줄 수 있을까?




The above figure originally appears in Odom et al., 2019, on page 1.

Olly는 과거에 들었던 음악을 다시 재생해주는 음악 플레이어이다. 연구용으로 제작된 프로토타입이지만 참가자에게 오롯이 경험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세세한 디자인을 포함해서 만들어진 디자인 및 사용자 인터렉션까지 프로토타입의 퀄리티를 제품(product)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 이러한 고품질의 연구용 프로젝트는 research prototype이 아닌, "Research Product"라고 부른다 (Odom et al., 2016).


The above figures originally appear in Odom et al., 2019, on page 7.

Last.fm을 오랜 기간 사용해서 쌓인 데이터가 충분히 많고, 직접 방문하여 Olly를 설치할 수 있고, 매 달 방문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는 거리를 고려하여 3명의 참가자가 선발되었다. 참가자들은 각자 최소 10년 이상 last.fm을 통하여 스트리밍 데이터를 모아 왔으며 적게는 약 8만 건의 스트리밍 기록, 많게는 약 16만 건의 스트리밍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각 참가자의 last.fm 계정에 있는 스트리밍 데이터를 기반으로 3대의 Olly를 제작하여 참가자의 집에 설치하였다. 이로써 참가자는 10년이 넘는 본인의 기록이 담겨있는 맞춤형 오디오를 가지게 되었다.


The above figures originally appear in Odom et al., 2019, on page 4.

Olly가 작동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Olly가 수면 상태일 때는, 장식품처럼 집에 두고 생활하다가, 가끔씩 Olly가 깨어나서 중앙의 나무판이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하면 Olly를 손으로 살짝 잡고 나무판을 돌려서 음악을 재생시키면 된다. Olly에 스피커가 내장된 것은 아니며, Olly에 연결된 외부 스피커가 음악을 재생하게 된다. 단 한 곡의 음악이 재생된 후, Olly는 다시 수면 상태로 돌아간다.

** Olly의 자세한 작동법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참조해주시길 바란다.


어떤 음악이 재생될지는 무작위로 정해지기 때문에 알 수 없지만, 중앙의 나무판이 돌아가는 속도가 재생될 음악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에 따라 달라지므로 Olly가 재생하려는 음악이 얼마나 오래전에 들었던 음악인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최근에 재생되었던 음악이라면 나무판의 회전 속도가 비교적 빠르고, 아주 오래전에 재생되었던 음악이라면 나무판의 회전 속도가 꽤 느리다.


하지만 음악을 언제나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는 Olly가 깨어나서 나무판이 회전하며 음악을 재생할 준비가 되어있는 순간을 포착하여 직접 음악을 재생시켜야 하는데, Olly는 1주일에 약 8번 정도밖에 활성화되지 않는다. 만약 활성화되어있는 Olly를 일정 시간 안에 재생하지 않으면, Olly는 다시 수면에 들어가게 된다. Olly가 깨어나는 시간도 역시 무작위로 정해지기 때문에, Olly가 한밤중에 또는 외출 중에 깨어나서 음악을 재생할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면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Jim, Suzie 그리고 Tom (참가자의 신상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 은 총 15개월 동안 Olly와 함께 생활하였다. 처음 두 달 정도는 모든 참가자가 공통적으로 기대감과 실망감을 동시에 느꼈다. Olly가 깨어나서 나무판이 돌아가는 순간을 목격한 참가자는, 잠시 숨을 고르고 Olly가 들려주는 노래에 집중하였다. 반면에, Jim은 실험 참가 첫 주에 단 한 번도 Olly가 깨어있는 것을 마주하지 못하였다. Olly가 정말 작동하는 것인지 의문을 가진 나머지 스티커나 메모지를 붙여서 표시를 해두고 나무판이 회전하였는지 관찰하거나, 수시로 Olly의 나무판을 확인하며 조급해했다. Jim과 비슷하게 Sizue도 내적인 갈등을 겪으며 Olly가 음악을 재생하는 기능에 대한 통제권을 갖지 못해 답답해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통제권을 주도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Olly는 깨어났을 때 단 한 곡만을 재생하기에 참가자들이 평소에 음악을 소비하는 습관과는 많이 달랐다. 하지만 이러한 특성 때문에 참가자들은 Olly가 들려주는 단 한 곡의 음악에 집중하고, 그 음악을 언제 들었을까 추측하며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Olly는 제가 듣는 음악에 얼마나 많은 기억이 담겨있는지 깨닫게 했어요. Olly는 마치 "중개인"(middle-man)처럼 제게 간접적인 과거의 기억을 음악을 통해 들려줘요. 하지만 해석은 제가 해야 하죠. 음악을 들으며 과거의 한 지점 또는 장소를 떠올려가게 만들어요. ... 지금껏 쌓여왔던 last.fm의 데이터가 훨씬 더 값지고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 Jim
"Olly가 재생하는 음악은 어제 들었던 곡일 수도 있고, 10년 전에 들었던 곡일 수도 있잖아요. Olly가 가져오는 곡은 대부분 과거의 어떤 한순간을 떠올리게 했어요. 몇 년 전에 로드트립에서 들었던 곡도 있었고, 제가 힘들었던 시기에 많이 들었던 곡도 있었어요. 마치 바람이 스쳐 지나가듯이, 과거에서 날아온 기억이 현재의 저를 잠깐 스치고 가는 느낌을 받아요. 그러면 저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춰요." - Tom


때로는, Olly를 통해 아주 특별한 기억을 가진 음악이 재생될 때도 있었다.

"저희 어머니의 기일 즈음에 Olly에서 The Temtations의 Heard it through the grapevine이란 곡의 일렉트로닉 버전이 나왔어요. 순간 멍해졌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었어요. 어머니는 일렉트로닉 음악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The Temptations는 정말 좋아하셨어요. 가만히 앉아서 음악을 감상했죠. 솔직히 축복받은 기분이었어요. 음악을 듣는 동안 어머니가 제게 어떤 존재이셨고 저의 인생에서 저를 어떻게 변화시키셨는지 생각하게 됐어요. 그리고, 꽤나 시적인 표현이지만, 그 모든 순간이 음악 안에 있었죠. 그 여운은 음악이 끝나고 나서도 꽤나 오래 남았어요." - Suzie
"어느 날, Olly에서 나온 음악은 제가 약 5년 전에 호주에 있을 때 들었던 음악이었어요. 바로 알아챘죠. 그 당시에 호주에서 제 아내를 만났고, 마음이 맞는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어요.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어요. ... 음악이 끝나고 나서야 그 친구들과 연락을 하지 않은지 꽤 오래됐다는 것을 깨달았고, 오랜만에 안부를 묻게 됐죠. 덕분에 지금까지도 꾸준히 연락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 Jim


특정한 음악에 관련된 기억은 항상 좋지만은 않았다. 헤어진 옛 연인을 떠올리게 하는 곡도 있었고, 힘들었던 시기에 들었던 곡도 있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본인이 음악을 듣는 매 순간이 last.fm에 기록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Olly로 인해 떠오른, 조금은 아픈 기억조차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였다.




15개월이 지난 후 마지막 인터뷰에서, Suzie는 Olly와 함께 생활하면서 음악과 과거가 얽혀있는, 또 그것을 풀고 해석하는 경험을 하면서, 음악에는 사진이나 글에서는 느낄 수 없는 더욱 복합적인 감정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음악은 어떤 면에서 덜 직접적이고 더 추상적이에요. 음악은 아주 깊은 감정까지 불러일으키니까요. 음악의 특성상 하나의 곡에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또 시간이 지나면서 음악에 담긴 감정이 변하기도 해요. 사진이나 편지와는 다른 느낌인 게, 사진이나 편지를 통해 느끼는 감정은 '시간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음악에 비해서 훨씬 구체적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느껴지는 감정이 크게 변화하지 않는 것 같아요." - Suzie


Jim은 우리의 일상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온 데이터가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자신과 함께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언급했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가는 것처럼 소유하고 있는 데이터나 파일도 똑같이 나이가 들어가며 바래져가는 것을 볼 수 없어요. 시간의 흐름은 데이터와는 무관하니까요. 사진도 언젠가는 빛이 바래고, 책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노랗게 색이 변하잖아요. Last.fm에 모인 제 데이터는 시간이 갈수록 커지기만 해요. 그게 다죠. Olly는 멈춰있는 디지털 데이터에 '시간'을 불어넣어줬어요. 제가 소유한 데이터를 훨씬 더 명확하게 볼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얻는 경험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었어요. ...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제가 평생 동안 즐길 취미예요. 그런 점에서 Olly를 통해 얻은 경험은 정말 특별했어요. 디지털 데이터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빛바랜 노란색 페이지를 느끼게 해 주었으니까요." - Jim


마지막으로, Tom은 Olly를 '기술'로 받아들이는 것에 회의감을 느낀다고 언급하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Olly에 대한 애착이 매우 커져갔다고 말했다.

"이런 '기술'은 한 번도 본적도, 겪은 적도 없어요. Olly는 '기술'과 가보(heirloom) 사이의 미묘한 경계에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받아들이기에 Olly는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물건이에요. Olly는 뚜렷한 목적이 있고,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그 목적은 변하지 않을 것을 알아요. 만약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 해도 Olly를 버리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분명히." - Tom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 처음 새로운 기술을 마주할 때, 사람들은 그 참신함에서 나오는 기대감과 흥분감을 느끼며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하지만 참신함이 사라지며 예상했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경우에는 긴장감과 갈등이 떠오른다. 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기술은 사람들의 삶에 받아들여지거나 도태되어 사라진다. 받아들여졌을 경우에는, 사용하는 사람이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 긴장감과 갈등을 극복하고 점차 더 나은 경험을 느끼게 된다 (Gaver et al., 2006).


Olly와 함께 생활한 참가자의 패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모든 참가자가 Olly에게 강한 애착을 갖게 되었다. 연구팀은 15개월의 인터뷰를 종합하여 Olly라는 새로운 기술이 긍정적이게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된 요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다.



1. Anticipation & Pre-interaction: "예측"에 관한 디자인

기술과의 상호작용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경험이 일어나기 직전에 긴장감이 쌓여가는 순간실제로 기술과 상호작용을 하며 겪는 경험을 느끼는 순간이다. 대부분의 디자인은 후자의 "경험"에 집중하지만, Olly는 음악을 듣는 "경험"보다는 바로 전 단계인 pre-interaction에 집중했다. Olly가 활성화되는 기간을 적절하게 조정하여 Olly가 깨어나는 순간을 포착할 때의 긴장감을 만들고, 음악이 재생되기 전, 나무판이 돌아가는 속도를 시각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어떤 경험을 마주할 지에 대한 작은 실마리를 제공하며 사용자를 기대하게 한다. 실제로 사용자가 Olly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경험을 하는 두 번째 단계에서, Olly는 그저 무작위의 음악을 재생할 뿐이었다.


이것은 사용자가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하지 않더라도, 일시적인 "표현"을 통해 특정한 경험을 선사해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용자가 겪을 경험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실제 경험을 기다리는 순간을 즐겁게 느끼는 등의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다.



2. 동반 성장(co-evolution)을 통한 장기적인 관계로의 발전

Olly가 last.fm에서 제공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사용자가 음악을 스트리밍하는 행위를 지속할수록 last.fm에는 더 많은 데이터가 쌓이고, 그로 인해 Olly도 함께 점차 더 많은 데이터를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Olly는 시간이 지나며 사용자와 함께 성장하고, 또 함께 나이가 들어가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Olly는 튼튼하고 오래가는 마호가니 원목과 알루미늄으로 제작되었다.


일시적으로 작동하는 프로토타입이 아닌, 튼튼한 재질로 만들어졌다는 특징이, 사용자와 함께 성장한다는 컨셉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Olly를 단순한 테크놀로지가 아닌, 소유자와 오랜 시간을 함께할 수 있는 "동반자"의 특성을 갖게 하였다. 또한, Olly가 스스로의 페이스로 작동하는 것을 사용자가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일상에 천천히 녹아들어 가게 된 점도 장기적인 애착을 갖게 한 중요한 요인이었다.



3. 일시적인 데이터 (temporal data)를 기반으로 한 디자인

Olly는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 사용자에게 제공되는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고 일시적이다. 수만 건의 스트리밍 정보 중 단 한 개의 데이터(= 음악)만을 제공하며, 사용자가 그 데이터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나무판의 회전 속도로 표현된, 아주 모호한 힌트 하나밖에 없다. 그마저도 사용자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Olly가 깨어났던 짧은 시간을 포착하지 못한다면 사용자에게 전달하려던 데이터는 사라진다. 하지만 제한된 정보로 인해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사용자로 하여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serendipity)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이처럼 빅 데이터를 디자인한다고 하여 항상 모든 데이터를 포함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데이터의 종류 (e.g., 음악, 동영상, 사진, 텍스트, 녹음파일, 소셜 미디어, 위치 데이터 등)에 따라 각 데이터의 특징을 다양하게 활용하면 제공되는 일시적인 데이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Olly는 "느림 (Slowness)"이라는 디자인 전략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효율성과 "빠름"을 핵심 요소로 삼는 대부분의 기술은 시간을 절약시키려 하지만, 다르게 표현하면 시간을 "삭제"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기술은 대체로 그만큼 빠르게 소비되며 교체되고 도태되는 반면, 일상에 천천히 녹아들며 사용자를 돌아보게 하는 기술은 사용자와 장기적인 관계를 만들어간다 (Hallnäs & Redström, 2001).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경험을 하고 때로는 의미 있는 기억을 추억하려고 기록을 남긴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남긴 기록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담긴 것을 돌아보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오랜 기간 쌓인 일상의 기록은 마치 거대한 애물단지와도 같게 느껴질 수도 있다.


Olly 프로젝트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활용하여 우리의 삶에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좋은 예시이다. Jim이 표현한 것처럼, Olly는 의미 없는 데이터 더미에 시간과 숨을 불어넣어 주었다. 더 나아가서, Olly는 추상적인 데이터라 할지라도 그것이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누군가에게는 평생 기억될 특별한 경험을,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접하며 그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께)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데이터가 가진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각주:

[1]  메타데이터(Metadata)란, 데이터의 데이터(data about data)이다. 데이터를 설명하기 위해 구조화된 데이터이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에서 사진 한 장을 찍었을 때, "사진"자체는 실체가 없고 정보화되어 있으므로 이미 데이터이다. 하지만 이 사진(데이터)을 추가적으로 설명하는 데이터(e.g., 사진이 찍힌 시간, 위치, 태그 된 사람들, 사진의 크기 및 해상도,...)를 메타데이터라고 부른다.




참고문헌:

Gaver, W., Bowers, J., Boucher, A., Law, A., Pennington, S., & Villar, N. (2006, June). The history tablecloth: illuminating domestic activity. In Proceedings of the 6th conference on Designing Interactive systems (pp. 199-208).


Hallnäs, L., & Redström, J. (2001). Slow technology–designing for reflection. Personal and ubiquitous computing, 5(3), 201-212.


Odom, W., Wakkary, R., Hol, J., Naus, B., Verburg, P., Amram, T., & Chen, A. Y. S. (2019, May). Investigating slowness as a frame to design longer-term experiences with personal data: A field study of olly. In Proceedings of the 2019 CHI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 (pp. 1-16).


Odom, W., Wakkary, R., Lim, Y. K., Desjardins, A., Hengeveld, B., & Banks, R. (2016, May). From research prototype to research product. In Proceedings of the 2016 CHI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 (pp. 2549-2561).




이미지 출처:

http://clipart-library.com/clipart/pT7rk5j8c.htm


https://pixabay.com/illustrations/computer-process-technology-digital-3406108/


http://www.mtv.com/news/2690168/facebook-year-in-review-2015/


https://u.osu.edu/uofye/2016/04/14/self-reflection-through-self-expression/


https://www.techrepublic.com/article/data-streaming-the-best-use-cases-and-why-they-work/


http://ignation.ca/2018/12/19/advent-is-an-anticipation/


https://www.dreamstime.com/royalty-free-stock-image-close-up-hand-woman-typing-smart-phone-image37653576


https://pixabay.com/photos/pocket-watch-time-of-sand-time-3156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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